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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덕의 다시보기]이소라 '넘버원', 록으로 빚은 독배


[박재덕기자] 가수 이소라는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출연 이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방송 초반 역작 '바람이 분다'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는가 하면, '김건모 재도전' 사태로 불거진 일명 '태도 논란'으로 김건모, 김제동, 김영희PD와 함께 욕도 참 많이 먹었다. 얼마전 방송을 통해 자신이 취했던 태도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공식 사과했지만 왠지 모를 정서적 거리감이 여전히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가수는 노래로 말하는 법. 이소라는 8일 방송된 '나가수'에서 록 버전 '넘버원' 한 곡으로 시청자들의 변덕스런 마음을 감동과 찬사로 단번에 돌려놨다. '넘버원'이 보아를 '아시아의 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면, 이소라의 록 버전 '넘버원'은 이소라가 진정한 '아티스트'임을 증명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소라가 직접 쓴 가사처럼('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마치 바람 소리가 휘황하게 전해지는 듯한 시적인 곡 '바람이 분다'는 '넘버원'에 비하면 차라리 점잖고 여백이 있었던 곡이었다.

'넘버원'에서 이소라는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고 감정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최고조에서 더 높은 최고조로 끝없이 극을 향해 치달으며 지독하고 처절한 슬픔과 상처를 노래했다. 마치 쓸쓸한 고성(古城)에서 달빛 아래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상처 치유의 주술을 외는 것만 같았다. 듣는 이들은 마취 없이 수술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한 청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모습은 그런 청중의 속내를 그대로 투영했다.

그만큼 그가 전한 상처는 깊었고 처연했고 아렸다. 그게 그가 택한 새 노래의 코드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두 가지 분석해 볼만한 사실이 있다.

첫번째 이소라가 록과 함께 한 역사다. 이소라가 천착한 록, 이소라가 탐구한 록, 이소라가 곁에 두고 갈고닦은 록이라는 장르가 더할 수 없이 강렬한 무기가 돼 시청자들의 가슴을 찔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간 '나가수'에서의 선곡이 그의 말대로 '여자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발라드 위주였다면, '넘버원'은 록의 형식을 빌어 아픔을 간직한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해 내민 독배였다. 그 독배는 임재범이 내민 '빈잔'처럼 독보적이었고 찬란했다.

록은 이소라가 놓지 않고 추구해온 장르였기에 이토록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다. 이소라는 콘서트 때 늘 록을 곡 리스트에서 빼놓지 않는다. 오아시스의 '슈퍼소닉(Supersonic)'도, 퀸의 주옥 같은 명곡들도 그가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레퍼토리다.

명반으로 칭송받는 3집 앨범 '슬픔과 분노에 관한'(1998년)은 또 어떠한가. 록이 이소라 안에서 새롭게 빛난 수록곡 '커스(Curse)', '피해의식', '너의 일', '나의 일', 'praise'를 들어보라. 김태원, 신대철, 조규찬, 조규만 등이 작곡자로 참여한 이 록 넘버들은 이소라가 흠모한 록 세상을 엿보게 한다.

2008년 발표한 7집의 타이틀곡이었던 '8번 트랙(track8)' 역시 이한철이 작곡한 록 넘버다. '이소라표 록'이라 이름 붙일 만하다. 이소라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록과의 교감인 것이다.

두번째로 주목할 점은 작사가 이소라다운 가사 해석력, 혹은 전달력이다. 이소라의 록 버전 '넘버원'을 들은 시청자들 대다수가 이 곡의 가사가 놀라우리만치 슬프고 처연했단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그게 이소라의 힘이다. 수많은 수작들을 직접 작사한 베테랑 작사가답게 이소라는 '넘버원'의 가사를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했고 관통했고 전달해냈다.

'하지만 오늘 밤 날 찾지 말아줘 나의 슬픔 가려줘/ 구름 뒤에 너를 숨겨 빛을 닫아줘/ 그를 아는 이 길이 내 눈물 모르게/ 보름이 지나면 작아지는 슬픈 빛/ 날 대신해서 그의 길을 배웅해줄래.'

보아가 밝고 경쾌하게 부른 '넘버 원'이 이토록 아름답고 심오한 가사를 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 건 이소라의 경지에 오른 전달력과 표현력이었다.

그렇게 이소라의 '넘버원'은 '다크보아', '블랙보아', 아니 '심연보아'로 재탄생됐다. 이건 '바람이 분다'처럼 숱한 곡의 시적인 가사를 만들어냈던 '작사가 이소라'의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가공할 만한 전달력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일 새 미션 중간 점검 녹화에 이어 '나가수'는 바로 오늘(9일) 또 한 번의 숨막히는 경연을 펼친다. 순위는 중요치 않다. 우린 그저 우리에게 예술이 주는 행복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가수들이 건강하게 자신의 무대를 장식해주길 빈다. 일요일 프라임 타임에 이런 대가수들의 치열하고 혼이 깃든 무대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일주일은 요즘 '넘버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고성 앞 검은 망토를 두르고 달빛 아래 서서 우리의 상처를 도려냈던 이소라는 오늘 또 어떤 복장과 어떤 코드, 어떤 마법의 노래로 우리를 인도할까 궁금해진다. '바람이 분다'를 작곡했고, 이소라의 록 버전 '넘버원'을 편곡한 이승환과 한 번 더 호흡을 맞춘다고 하니 더욱 설렌다.

박재덕기자 avalo@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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