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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덕의 다시보기]'나가수' 사태, 경직된 가치가 예능을 삼키다


[박재덕기자] 방송가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던 '나는 가수다' 20일 방송분을 케이블 채널을 통해 다시 봤다. 특히 파문의 순간들을 눈여겨 봤다.

김영희 PD가 7위를 발표했다. 그가 "아, 이건 좀 의외인데"라고 말하자 가수들과 개그맨들이 수군거렸고, 김PD는 국민가수의 이름을 불렀다. "김건모!"

순간 경연에 참가한 모든 가수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그 중 당사자인 김건모는 23일 기자회견장에서 "3초간 띵했다"고 말했듯 정말로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맏형 김건모였기에 그 충격을 간신히 떨쳐내려 노력하며 너스레를 떨었고, 박명수 등의 멘트도 뒤를 이었다. 이 때 이소라가 이 사실을 인정 못하겠다고 울먹이며 무대를 떠났고, 모두들 충격 속에 할 말을 잃고 우왕좌왕할 때 김PD가 긴급회의를 거쳐 가수들, 개그맨들이 동의한다면 재도전을 선택할 기회를 김건모에게 주겠다고 했다.

이소라는 인터뷰를 통해 "노래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라는 이유로 이해를 구했고, 윤도현, 박정현 등도 "첫경험이라 더 충격이었다. 어쩔 줄 몰랐다. 원상복구해야 할 것 같았다"며 첫번째 탈락자 발표를 들은 후의 충격을 설명했다.

김건모가 기자회견에서 "그 때 만약 재도전을 거부하고 집에 갔으면 녹화가 중단됐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당사자 김건모 뿐 아니라 그와 형제, 남매처럼 지냈던 후배가수들이 받았던 충격은 컸다.

이후 김건모는 "시간을 내서 온 청중평가단이 낸 결론이니 룰을 깨서 물의를 일으키기보다 빠지는 게 낫다"고 고민했으나 끝내 재도전 기회를 선택했다. 공연을 더 멋지게 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떠나기 위해서였다. 정엽은 "대인배"라고, 윤도현은 "우리 부탁으로 큰 결심했다. 용기를 낸 것이다"고, 백지영은 "우리가 기회를 준 게 아니라 자격이 있다"고 재도전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장기호 자문위원은 "탈락이란 게 경쟁을 통한 장치 역할이지, 더 중요한 건 가수들의 좋은 무대를 보여주는 것이다"며 재도전의 순기능을 인정했다. 윤일상, 남태정 등 자문위원도 동의했다.

하지만 방송 후 비난 후폭풍은 거셌다. 서바이벌이라는 시청자와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제작진은 잘못했다. 김범수가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 원해 만든 결과니 매도 함께 맞자.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을 지자"고 말했듯 제작진도, 그리고 가수들도 약속을 깨고 새 규정을 만든 데 대해 어느 정도의 비난을 예상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후 김건모 소속사 관계자와 김영희 PD가 정식으로 사과했지만 네티즌들의 분노는 가라앉기는커녕 이들 외에도 돌발 행동을 한 이소라, 재도전 제안을 한 김제동에게로 번졌다. 박명수는 김건모의 재도전 결정 후 그의 곁으로 가지 않았고 "2주 후에 건모형이 또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질문했다는 이유로 영웅이 됐고, 정엽은 의도치 않은 표정 캡처 사진 하나로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것으로 몰렸다.

급기야 23일에는 수장 김영희PD가 전격 교체됐다. 문화방송은 "녹화 현장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한 가운데 출연진과 제작진이 합의해서 규칙을 변경했다고 하더라도, '7위 득표자 탈락'은 시청자와의 약속이었다"면서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물어 김 피디를 교체한다"고 밝혔다.

또한 문화방송은 "한 번의 예외는 두 번, 세 번의 예외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인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김건모도 23일 밤 기자회견을 열어 "재도전을 받아들여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며 자진 하차했다. 이 날 국민가수는 "대한민국에 노래 잘 하는 가수가 얼마나 많은지 시청자들이 보시면서 행복하기 바란다. 프로그램이 잘 자리잡고 오래 가기 바란다. 하지만 지나치게 서바이벌 위주로는 가지 않기 바란다"고 애정어린 시선을 보냈다.

방송 후 네티즌들의 비난은 자유다. 신생 프로그램들은 방송 초반 이런 갖가지 논란들을 거치며 차츰 자리를 잡아나간다. 지금은 국민 예능이 된 KBS '해피선데이-1박2일'도 방송 초반 MBC '무한도전'을 따라했다는 등 여러 가지 논란과 오해에 시달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 '나는 가수다' 비난의 포화 속에서 아쉬웠던 건 기본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점과 노래에서만큼은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가수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간과되지는 않았나 하는 점이다. 27일 방송에서 아름다운 퇴장을 한 정엽이 말했듯 "음악은 따뜻한 것"이건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체적인 규칙의 변화는 종종 발견된다. '1박2일'의 예를 들면 강호동이 규칙을 어기고 장난스럽게 생떼를 쓴다거나 실제 어떤 게임의 승자가 마지막에 가서 누군가의 계략에 휘말려 어이없게 승리를 반납하기도 한다. 이는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다. 기본적으로 룰을 지키되 어느 순간 재미를 위해 룰을 비트는 것도 예능만의 묘미이자 즐거움이다.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봐도 패자부활전 등을 시행하거나 심사위원 재량에 따라 구제해 주는 등 허용된 범위 안에서 규칙을 변주하며 보는 재미를 더하고 패자를 위한 장치를 마련한다.

'나는 가수다' 재도전이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잘못했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후 관계자들이 공식사과하고 진의를 설명한 뒤 대안을 모색하는 정도로 수습됐을 일은 아니었을까. 그런 논란을 딛고 예능프로그램은 서서히 성숙하고 진화해가는 게 아닐까.

또한 이소라가 돌발 행동을 설명하며 말했듯 "노래하는 사람의 입장"을 배려해주는 열린 마음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노래로는 정말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는 막강 7명 가수들의 진검승부 끝에 첫 탈락자가 나왔는데 그게 어떻게 그리 쿨하게만 넘어갈 일이었을까.

혹은 청중으로서 '김건모가 펼치는 혼신의 무대를 다음주에 볼 수 있겠군' 정도로 넘기기엔 우리가 너무 경직돼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가 지나치게 엄숙한 심판자의 입장이 된 건 아닐까.

우리는 오히려 '너희들이 가수면 가수지, 왜 약속을 안 지켜' 하는 식으로 '가수에 대한 존중' 대신 '가수라는 데 대한 적개심'이 앞섰던 건 아닐까.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우리의 친구들을 심사하는 위치에 있는 대단한 가수들이 왜 자기들이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약속을 깨는 거지' 하는 마음으로 오히려 비난의 강도를 높였을 수도 있다.

김영희PD가 7위 발표 후 "김건모의 립스틱 이벤트가 잘 안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했지만, 김건모는 후에 "예능인데 너무들 진지하게 하는 것 같아 립스틱 이벤트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접근방식의 차이다.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 사회를 뚫고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네 팍팍한 인생이 김건모식 유머나 이벤트보다는 온몸을 불사르는 치열함을 가수들에게도, 제작진에게도 원했던 건 아닐까. 결과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바람대로 결국 김건모는 27일 방송분에서 최선의 무대로 명예를 회복했다.

앞으로는 가수의 무대에도, 서바이벌의 세부적인 운용에도 약간의 너그러운 마음을 갖기 바란다. 예능은 예능이다. 게다가 따뜻하고 감성적인 코드인 음악을 소재로 한 예능이지 않은가.

또한 MBC가 김PD의 공식 교체를 알린 보도자료의 표현을 보면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방송사에조차도 '나는 가수다'가 예능 프로그램을 뛰어넘는 그 무엇으로 지나치게 엄숙해져 있음을 느낀다.

"한 번의 예외는 두 번, 세 번의 예외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인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됐다."

과연 예능 프로그램 PD를 교체하며 어떻게 이런 엄숙한 논리를 들이댈 수 있을까. 그것도 불과 얼마전에는 시청률을 크게 올려놓은 공로를 인정하며 보너스까지 안겼던 PD에게 이런 근엄한 잣대를 들이대며 손을 놓으라니.

MBC는 이소라가 말한 '노래하는 사람의 입장'처럼 '방송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야 했다. 김PD가 과연 어떤 삼고초려의 과정을 거쳐 이 기라성 같은 가수들을 섭외했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또 그가 어떤 열정으로 바닥까지 누비며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했는지 존중했다면 어떻게 주의나 경고도 없이 바로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을까.

김건모는 23일 밤 기자회견을 마친 후 옆사람들에게 수 차례 농담을 했다. 그는 "너 지금 나 꼴찌했다고 무시하는 거지?"라며 자신의 아픔을 애써 농담으로 변환시켰다. 그의 그런 너스레가 오래 귀에 맴돌았다.

꼴찌의 충격 속에서 재도전 파문을 겪고 절치부심, 두번째 무대까지 마친 후 김PD 교체 소식에 끝내 자진하차를 결정한 쓰린 속내를 잠시 옆으로 제쳐두고 농담을 할 수 있는 그의 여유와 온기가 분노와 비난, 교체와 하차 파문 속에 잔뜩 경직된 채 급박하게 돌아갔던 우리의 1주일과 묘하게 대비됐다.

27일 우리는 '나는 가수다' 무대에 오른 7명 좋은 가수들의 감동의 무대를 155분간 펼쳐보였다. 모든 논란을 음악으로 털어낸 그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따뜻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가수다'가 음악의 힘으로 위기를 정면돌파해 가수들과 시청자들을 잇는 아름다운 축제의 장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박재덕기자 avalo@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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