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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R&D 주역 '연구조합' 다시 살린다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정부가 한 때 우리나라 기업 연구개발(R&D)의 주역이었던 '연구조합'을 다시 살리겠다고 나섰다. 20여년 동안 국가연구개발 정책의 전면에서 밀려나 있던 연구조합을 전세계적인 기술보호주의에 맞설 대안의 하나로 다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9일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운영위원회에서 '산업기술연구조합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과기정통부는 "민간주도 산학연관 협력의 구심점으로서 연구조합을 재활성화하고 민간 자생적 기술생태계의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관리·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영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47회 운영위원회' 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
주영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47회 운영위원회' 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

산업기술연구조합은 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협력체로 중요한 몫을 담당해 왔던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기업의 자체 연구역량이 커지면서 역할과 기능이 축소돼 국가 연구개발정책 체계 안에서 점차 잊혀져 온 것이 사실이다.

과기정통부가 나노융합산업연구조합을 통해 2020년에 수행한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1982년 이후 지금까지 총 153개의 연구조합이 설립됐지만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곳은 55개에 불과하다. 상근인력 없이 명맥만 유지하는 연구조합을 포함한 수치다. 해산이 확인된 조합은 25개, 법인등기는 남아 있으나 운영확인이 불가능한 곳이 73개 조합에 달한다. 전체의 3분의 2가 사라졌거나, 해산도 하지 못하고 방치돼 있는 셈이다. 과기정통부가 9일 발표한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50여개 연구조합에서 일하는 직원은 533명, 전체 예산은 986억원, 수행하고 있는 정부R&D 과제는 492억원 규모다.

반면 최근 새로 설립되는 연구조합의 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2017년과 2018년 각각 2개씩 설립된 신규 연구조합 수는 2019년 3개, 2020년 5개, 2021년 6개로 점차 늘고 있다.

과기정통부와 연구조합 관계자들에 따르면 연구조합이 쇠퇴한 것은 2000년대 이후 기업들의 협력연구 기피, 업종별 협회 활성화, 전문기관 강화 등에 따른 현상이다.. 2020년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연구조합 운영의 애로사항으로 한정적 조합운영 재원(1위), 조합 수행기능 활성화를 위한 유인책 부재(2위), 조합 고유목적 달성을 위한 수익사업 부재(3위) 등이 지적됐다.

이처럼 20여년간 정책 사각지대에서 방치돼 온 연구조합을 정부가 다시 활성화하겠다고 나선 배경에는 글로벌 기술보호주의 부활, 공급망 불안 등이 깔려 있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 컨셉인 '민간주도' 연구개발 정책과도 연결돼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연구조합 제도는 1970년대 후반 선진국의 기술보호주의를 극복하고 국내 기업들의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업 중심의 연구협력 촉진체계로 도입됐다. 지금이 그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고 공급망 디커플링이 점차 현실화되면서 '요소수 대란'처럼 첨단기술뿐 아니라 범용기술도 국내에 최소한의 기술·산업생태계를 확보할 필요성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협회는 업무영역이 포괄적이고, 전문기관은 관리해야 할 R&D과제가 늘어나 개별기업을 관리하기 어렵다. 연구조합은 전문기관과 기업 사이의 중간 관리조직으로서 개별기업 과제관리‧지원을 통해 기술사업화 체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를 위해 연구조합 관리·육성사업을 신설하고 연구조합연합회를 육성해 연구조합 관리 내실화 및 역량강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연구조합의 근거법으로 지난 1986년 제정된 '산업기술연구조합육성법'도 전면 개정할 방침이다.

정부지원이 많고 국내 산업규모도 큰 반도체·디스플레이 같은 분야는 연구조합이 대형사업 총괄주관으로 연구거점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고, 정부지원도 적고 산업규모도 작은 중소기업 중심 연구조합에는 과제기획비를 지원해 지역·중소기업간 협력을 돕고 공동 연구장비를 구축·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유형별 지원방안도 내놨다. 또한 탄소중립, 양자, 핵융합 등 정부지원은 많지만 아직 산업규모가 미미한 미래유망기술분야의 신규 연구조합 결성도 지원할 방침이다.

한 연구조합 관계자는 "개별 연구조합마다 상황이 워낙 달라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우선은 운영난을 겪고 있는 연구조합이 생존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조금 지원정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며 "다음 주에 열릴 연구조합연합회 총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있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상국 기자(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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