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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균의 폰꽁트] 그녀의 문자메시지는 지독히도 달콤했다???


 

나, 25세의 대학 3학년, 신체 건강한 것은 현역병으로 엎어지고 구르며 무사히 군대 생활을 마친 것으로 확실한 증명이 된 것이고 일류는 아니어도 어디 가서 학벌 나쁘다는 얘기는 안 듣는 괜찮은 대학교에 다니고, 나중에 부모님 덕은 쪼끔 볼 수 있을 정도의 중산층 가정의 알짜배기 차남, 인물은...

군대 가기 전에 여자한테 작업 걸어서 실패해 본 기억이 거의 없는 것으로 미루어 괜찮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성격은 원만하고 유머감각도 있는 편이지.

이런 내가, 어디 내놔도 그다지 빠질 것이 없는 내가 요즘 정체성의 상실감에 빠져서 우울증 증세까지 보일 정도로 망가져가고 있는 것 같아.

왕년의 내가 어떤 남자였냐 떠올려보면 참, 괜찮은 놈이었지. 확실한 애인은 부담스러워서 스스로 마다했을 정도의 여유 만만함으로 여자친구 두세 명은 언제나 확보된 상태로 영양가 있는 청춘시절을 보냈거든.

적당한 연애가 시시해지면 언제라도 여자친구를 바꿀 수 있는 능력 있는 놈이었다 이거야. 그랬던 내가 요즘은 애인은 고사하고 그 흔하다는 여자친구 하나 없이 세월을 죽이고 있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 왕년의 화려했던 내 시절을 아는 놈들은 내가 괜히 죽는 소리를 한다고 믿지도 않을 거야. 지금의 현실을 나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니까.

군대 제대 후 복학을 하고 보니까 내가 없는 사이에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났는지, 세상이 확 뒤집어버렸는지 나는 완전히 찬밥, 쉰 세대로 전락해 버린 거야. 어쩌다 마음에 드는 여자애가 있어서 예전의 실력을 발휘해서 작업을 걸었는데 어쩐 일인지 하나도 성사가 되지 않더라고.

“형, 얼굴이 왜 그래요? 뭐 고민 있어요?”

누가 어깨를 툭 치기에 보니까 후배 녀석이야. 나보다 3년 후밴데 형, 형 하면서 나를 따르는 귀여운 놈이지.

“야, 살맛 안 난다. 니가 보기에 내가 늙어 보이니? 아주 맛이 확 간 놈으로 보여?”

“에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

기분이 하도 저조해서 나는 녀석을 끌고 술을 마시러 갔어. 취기가 돌자 나는 선배 체면이 구겨지는 것도 참고 녀석에게 하소연을 했지.

“내가 어제 개망신을 당했잖니. 나, 옛날엔 잘 나가던 놈이었다. 이젠 아닌가봐. 어디 묘자리나 찾아봐야 하나. 어제 도서관에서 귀여운 애가 있기에 맘에 들더라고. 걔 전화번호 하나 따보려다가 아주 개망신을 당했다.”

“어떻게 했는데?”

“커피 하나 뽑아주면서 전화번호를 물었더니......”

그러자 녀석은 정말 데굴데굴 구르면서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거야.

“에이, 형, 요새 누가 그런 식으로 여자애 전화번호를 따? 형, 정말 맛이 갔구나. 안되겠다, 내가 형을 위해서 시범을 보여주지.”

녀석은 넓은 호프집을 잠시 둘러보더니 자신의 휴대폰을 내게 맡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나는 녀석의 짓거리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살펴봤지. 녀석은 창가 쪽 여자 두 명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가더니 참 예의바르게 말하는 거야.

“저 죄송하지만 휴대폰 좀 빌려주실래요? 제 휴대폰 밧데리가 다 돼서요, 급하게 연락을 할 데가 있는데 공중전화도 없고.”

여자 중 한명이 휴대폰을 빌려주더라고. 녀석은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것 같더니 이내 끊고는 돌려주었어. 그리고는 우리 테이블로 돌아왔지. 그게 다였어. 나는 좀 황당해서 녀석에게 빈정거렸어.

“인마, 시범을 보인다더니 그게 다야? 너 뭐하다 온 거냐?”

내말에 녀석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줬어. 여자의 전화번호가 떠있었지.

“이게 뭐?”

“방금 쟤 전화번호 땄잖아요. 쟤 휴대폰으로 내 휴대폰에 걸었거든. 당연히 쟤 번호가 내거에 뜨잖아. 다음엔 쟤한테 전화를 걸어 보는 거지. 일단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이런 식으로 전화번호를 딴 다음에 작업에 들어가는 거예요.”

아하, 나는 정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 확실히 내가 좀 고루했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무식하게 옛날의 방식이 먹혀들 거라고 생각했는지 몰라. 그래, 예전엔 여자의 전화번호를 하나 알아내려고 온갖 인맥을 동원하고 굽실대가며 그랬는데 요즘은 참, 확실하고 단순하게 세련된 방법으로 작업에 들어가는구나.

나는 녀석에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을 만큼 기뻤지.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낸 감격까지 느꼈다면 내가 너무 과장된 걸까? 세 살 먹은 꼬마한테도 배울게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얼마나 지당한 것인지……. 배울 건 배우고 또 배운 지식을 확실하게 사용하는 열려있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나는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기 위한 재기의 몸부림에 들어갔지.

녀석에게 배운 대로 나는 그런 식으로 해서 많은 여자들의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어. 그래서 천연덕스럽게 통화를 시도하고 만나기도 했어. 일단 길이 뚫리니까 예전의 실력이 되살아나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승률이 높아져만 갔어. 그래, 나는 맛이 간 것도 아니고 실력이 녹슨 것도 아니었어.

자신감이 생기니까 나이를 먹은 노련함까지 더해져서 과거에 비할 수 없는 화려한 이력이 더해지는 거야. 오, 예, 이래서 사람은 늙어서도 배움의 자세를 버리면 안되는 거야. 큭큭큭…….

그러다 얼마 전에 나는 정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괜찮은 여자를 하나 발견했어.

책 한권 사려고 서점에 갔었는데 예리한 내 눈에 단박에 포착된 여자가 있었어. 늘씬하게 빠진 몸매가 거의 슈퍼모델급이더라구. 거기다 지금까지 만난 여자애들과는 다른 성숙하고 지적인 이미지가 한마디로 끝내주는 여자였어.

그야말로 여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게 딱 내 취향이더라구. 기회를 노리다가 여자가 책을 고르고 있기에 날쌔게 달려갔지. 그리고 언제나 써먹는 각본대로 여자의 휴대폰을 빌려서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어. 그리고 여자의 번호는 내 손아귀에 떨어졌지.

다음날, 나는 심호흡을 하고 거사를 실행했지. 매혹의 그녀에게는 약간 신비주의 작전을 쓰기로 했어. 나는 전화를 거는 대신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 ‘어제 서점에서 휴대폰을 빌렸던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꿈꾸던 완벽한 이상형을 만났습니다. 제 인생 최대의 기쁨입니다.’

그리고는 그녀가 내 신원을 의심하지 않고 혹시라도 사이코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지 않도록 내 신상명세를 확실하게 밝혔어. 나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어. 높고 험한 산일수록 완벽하고 섬세한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야 정복할 수 있는 법이니까. 나는 매일 두 번씩 문자 메시지를 보냈어.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각오가 돼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드디어 그녀로부터 답신이 왔어. 그녀도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군.

‘정말인가요?’

오라, 걸렸구나, 나는 가슴이 짜릿짜릿해지는 것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문자를 보냈어.

‘당신이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내 인생은 당신 것입니다. 우리 만날까요?’

‘약속, 꼭 지키세요.’

약속장소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어. 건장하고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 서너 명이 나에게 다가오는 거야.

“니가 한은정이 만나러 나온 놈이지? 우리랑 가자.”

“무슨 말씀이세요?”

“그 여자가 우리한테 사채를 얻어 썼거든. 돈도 안 갚기에 그 여자 휴대폰을 압류했는데 니가 해결한다며?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한다고 했지? 너 그 여자 애인이야?”

너무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오는 판국에 사내들은 인상을 확 구기며 내 목덜미를 낚아채는 거야.

“니가 그 여자 대신 신체포기 각서 써라.”

나.... 나...... 돌아버리겠네.....

/장덕균 개그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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