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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균의 폰꽁트] 내 애인이 독도로 간 까닭은?


 

아무래도 그는 나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

그와 나는 사귄지 석 달쯤 된, 한창 뜨거운 연인이지. 물론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에게 단박에 이끌렸기 때문에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아주 높았지만 서로가 주저함이 없이 확인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

그와 내가 다섯 번쯤 만났을 때였을 거야.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10시쯤 헤어졌지.

그는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싶어 했지만 집안일 때문에 여의치가 않았어. 또 나 역시 그날은 이상하게 너무 피곤했던 터라 차를 타고 가다가 졸 것만 같았거든.

그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서 잠깐 조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었지만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코를 골면 어쩌나싶어서 염려가 되더라고. 그래서 그가 몹시 미안한 얼굴로 바래다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걸 아주 너그럽고 상냥하게 웃어주며 이해심이 많은 여자라는 좋은 인상을 단박에 심어주었지.

그의 염려스럽고 안타까운 눈길을 받으며 좌석버스에 오르자마자 나는 졸기 시작했어. 자면서 내 머리통이 사정 없이 전후좌우로 흔들리고, 몇 번이나 창문에 부딪히기도 한다는 걸 의식하고 있었지만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짧은 단잠에 빠져 든거지.

문제는 얼마나 정신 없이 잤던지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한참이나 지나서 결국 종점까지 가고 말았던 거야.

결국 종점에서 다시 집까지 되돌아오는데 대략 2시간이 걸렸어. 그사이 우리 집에서는 난리가 났더라고.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난리가 난거야. 내 휴대폰 배터리가 다 돼서 연락도 안 되는데다가 걱정이 되서 집으로 전화를 하니까 벌써 들어와 있어야 할 내가 없다니까 그는 거의 반쯤 돈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5분 간격으로 확인전화를 하고 있었어.

졸다가 종점까지 갔다는 말은 창피해서 죽어도 못하겠고 이상하게 길이 무지막지하게 막혔다고 둘러댔지.

다음날 그는 나에게 휴대폰을 하나 새로 사주었어.

“어저께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 넌 연락도 안되지, 집에 있어야 할 애가 안 들어왔다지……. 별의별 상상이 다 드는데 사람 도는 거 잠깐이겠더라. 피가 마른다는 게 뭔지 알겠어. 앞으로는 이걸로 해결해야지.”

“이게 뭔데?”

“애인 안심 휴대폰. 서로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려주는 위치추적 서비스거든. 이제는 네가 눈앞에 안보여도 어디 있는지 아니까 안심할 수 있어.”

“어머, 정말 신기하네. 근데 애인 안심? 우리 애인 사이야?”

그렇게 해서 우린 애인이 돼 버린 거야.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 나는 그가 내 애인이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어. 그의 집안이 건물을 몇 개 소유한 알부자에다 차남이고, 성격 좋고 학벌 좋고, 거기다 부드러운 인상에 키까지 커서 그를 노리는 애들이 꽤 많았거든.

모든 여자들이 한 번쯤은 꿈꾸었을 그를 애인으로 삼은 내가 더 괜찮은 여자겠지? 호호호…….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정말 확실해. 사실 서로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건 보통 연인사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잖아. 그런데 그 서비스를 자진해서 가입했다는 건 나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나의 영역에서 그냥 엎어져버리겠다는 항복의 표시 아니겠어?

정말 신기하기는 하더라. 몇 번 시험을 해보니까 그가 어디 있는지, 내가 어디 있는지 정확한 위치 파악이 되는 거야. 또 그의 말마따나 부득이하게 나를 바래다주지 못할 때 수시로 나의 위치가 그의 휴대폰에 뜨니까 안심을 하고 일을 할 수 있어서 좋고 말이야.

난 점점 그에게 빠져들었어. 그는 만날수록 괜찮은 남자야. 다정다감하고 유머 넘치고, 특히 그가 광장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나에게 손을 흔들 때면 거의 까무러치게 멋있어 보이는 거 있지.

“너 지금 학교에 있구나. 이따 1시간 후에 만나자.”

“어머, 자기 아직 반밖에 못 갔네. 길이 많이 막혀? 피곤해서 어떡하지?”

서로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보이지 않을 때면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고 있다는 행복한 공유감에 우리는 재미있어서 수시로 휴대폰을 눌러댔지.

몰라, 몰라, 그 변태놈 때문에 내가 못살아…….난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이렇게 멋있는 남자를 어떤 여우같은 게 낚아채지는 않을까 유혹의 혓바닥을 날름대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났지. 그와 같이 있을 때 다른 여자들의 시선이 쏠릴 때면 한껏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가 내 눈앞에 없을 때면 견디기가 힘들어졌어. 그래서 수시로 그의 위치를 파악하곤 했지.

“압구정동에 있네. 거기는 뭐 하러 갔어?”

“친구 녀석이 옷 산다고 골라달라고 해서…….”

“금방 들어갈 거지?”

“응. 친구 녀석이 나보고 너한테 꽉 잡혔다고 놀린다.”

처음엔 나의 이런 태도를 너무 귀엽고 어린애 같다고 좋아하던 그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어.

“어머. 이 시간에 홍대 앞에는 왜 있는 거야?”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있어.”

“어딘데? 여자들 하고 있지?”

“남자들끼리 마시는 거야. 근데 너 안 바쁘니? 벌써 몇 번째야? 그만 전화해. 녀석들이 얘기 끊어진다고 불평이 대단해.”

그리고 차츰 그는 내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 거 같았어. 나는 그의 위치를 수시로 파악하는데 그는 내가 어디 있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궁금하지도 않은가봐.

혹시라도 그의 마음이 변한 게 아닐까 조바심을 치는 내게 언니가 충고랍시고 깐죽거리는 거 있지.

“얘, 그렇게 달달 볶으면 남자들이 금방 싫증내. 원래 남자들은 얽매이는 걸 싫어한단 말이야.”

“그래도 궁금한데 어떻게 해? 그는 달라. 내가 안그러면 자기한테 애정이 식은 줄 알거 아니야. 쓸쓸해할 수도 있고.”

“쯧쯧, 저렇게 뭘 모를까. 아마 걔도 지금쯤은 너하고 위치 알려주는 서비스 신청한거 무지 후회할거다. 지 발등을 찍었다고 원통해 할 걸?”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대자 그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하여간 아주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더군.

“야, 적당히 해. 너 그러니까 꼭 의부증 걸린 마누라 같아서 무서워.”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서로 비밀이 없어야 하는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아주 개인적인 부분은 지켜줘야 하는 거야. 네가 너무 그러니까 조금 부담스럽고 솔직히 짜증이 날 때도 있어. 내가 꼭 너한테 감시받는 기분이야.”

그리고 그는 우연인지 계획적인지 종종 휴대폰을 꺼놓거나 아니면 아예 들고 다니지 않는 눈치였어. 내가 캐물으면 정신이 없어서 집에 놓고 나왔다고 얼버무리고 말이야. 그쯤에서 내가 정신을 차리고 적당한 선을 그었어야 했는데…….

그한테 너무 빠진 나는 스스로도 도가 지나치다는걸 느끼면서도 마치 뭐에 홀린 사람처럼 정말 의부증에 걸린 여자처럼 행동했어. 그가 어디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것도 모자라 그가 친구들과 모인 장소를 기습적으로 쳐들어간 적도 있었거든. 혹시 나를 속이고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말이야.

친구들과 웃으며 떠들고 있다가 들이닥친 나를 보고는 아연실색해서 쳐다보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야. 아, 그때 그의 얼굴이 얼마나 초췌해 보이던지…….

그러던 바로 오늘 나는 거의 기절할 뻔 했어. 방금 그의 위치를 추적했더니 세상에…….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로 나오는 거 있지. 오라, 너 딱 걸렸어. 나는 즉각 전화를 걸었어.

“왜 독도에 가 있는 거야?”

그러자 그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어.

“네가 허구한 날 여자들이랑 술 마시냐고 닦달을 하니까……. 독도에 술집 없다는 건 너도 알지?”

/장덕균 개그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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