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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의 IT 경제학] IT수출과 종합상사


 

우리나라가 수출을 생존의 정책수단으로 잡은 지난 1960년대 이후 무역전선의 최선봉에 항상 대기업 종합상사 또는 물산이 서왔습니다. 그들은 경제개발 시기부터 직물, 의류, 가발 등의 경공업 제품을 주로 취급하면서 수출액수 쌓기의 일등공신으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80년대에도 이어져 해마다 연말이면 삼성과 현대그룹의 종합상사들은 누가 그해의 수출액수 1위이냐를 두고 치열한 숫자싸움을 벌였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한해를 마감하는 산업계 기사의 마무리는 ‘올해 수출 1위 ㅇㅇ상사’였던 것이 뇌리에 남는군요.

그러던 종합상사가 어째서 90년대 이후 IT분야에서는 제대로 뜨지 못했을까요. 상사맨은 한마디로 전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글자 그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장사하면 도가 튼 일급 상인입니다. 이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는 아이템 발굴의 탁월한 안목과 시각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인데 정보화 사회니 IT벤처니 하는 분위기에 어찌한 연유로 편승하지 못했을까요.

지난해부터 IT분야 기사검색을 해보면 IT종합상사라는 단어가 부쩍 눈에 띕니다. 개발하고 만들기만 했지 이를 제대로 해외에 팔지 못하는 우리의 벤처현실을 대변하듯 IT종합상사의 육성이 더욱 필요한 대안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IT상인의 육성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지요. 사업을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개발하고 만들기보다 더욱 힘들고 어려운 일이 파는 일입니다. 만들기만 하고 팔리지 않은 물건(소프트웨어 포함)은 곧 해당기업에게는 엄청난 경영 압박요소입니다.

해결책을 찾기 이전에 종합상사가 IT에 대해 왜 소홀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아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 필자는 벤처기업 경영을 맡고 있는 종합상사 출신 선배를 최근 만났습니다. 어차피 본인도 물건 팔기로 나선 입장이라 중요한 조언이 있을 것이라 본 것입니다.

“최근에 벤처기업의 영업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IT종합상사가 시대적인 화두입니다. 예전에 종합상사의 역할은 주로 무엇이었지요?”

“종합상사는 상인이야. 항상 시대적인 돈벌이감에 눈독을 들이지. 경공업시절에는 주로 옷감을 팔았어. 그러다가 에너지가 중요하게 되니 해외에서 석탄이나 기타 광물수입에 열을 올렸지. 그것이 중화학공업시절이지 아마.”

“90년대 들어 주로 무엇을 팔았나요?“

"종합상사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내수시장이 중요한 경제축이 되면서부터지. 점차 소매품 수입으로 눈을 돌린 거야. 물론 수출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점차 해외 플랜트수출이 뜨면서 금융과 연계된 장사가 주종이 된 게 아닐까.”

“금융이라면…”

“큰 돈이 들어가는 해외공장 수주에는 흔히 말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의 기법이 중요해.”

“90년대 들어 정보통신이 시대적 이슈인데 왜 종합상사가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까.”

“가장 큰 이유는 종합상사의 상인기질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뜸이 오래 드는 IT제품속성이 마음에 안들었다는 것 아닐까. 종합상사는 한마디로 3개월 이상 걸리는 아이템에는 관심을 가질 수 없어.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어디 그런가. 간단한 소프트웨어 하나 팔려고 해도 엄청난 공이 들어가지. 개발된 제품의 품질을 검사하고 오류가 있는지 디버깅하고 각종 명령문을 현지 언어로 만드는 작업이 보통 힘들고 시간걸리는 작업이 아니야. AS등 테크니컬한 지원도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러면 하드웨어는 어떤가요.”

“그것도 마찬가지야. 정보통신 제품은 항상 표준의 문제가 따라다녀. 정확한 기술동향의 예측이나 정보없이 덤볐다간 돈날리기 십상 아니겠어. 그래서 대기업 계열사의 전자업체들이 직접 수출에 나서게 됐고 종합상사는 자연히 뒤로 빠지게 된거야.”

“그것이 전부 다의 이유인가요.”

“다른 이유도 있지. 정보통신은 미래업종이야. 대한민국의 종합상사는 미래업종의 아이템을 가지고 장사해본 것에 익숙치 않아. 우리의 종합상사는 선진국이 손을 놓은 아이템을 가지고 승부를 내왔던거야. 가능하면 리스크가 적은 아이템을 고른 것이지. 그러나 IT는 바로 선진국의 가장 센 기업과 붙는 한판 승부의 장소지. 자연히 상인의 기질을 가지고 덤비기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했을꺼야.”

“상사맨에 대해 말을 듣고 싶은데요.”

“IT는 다른 일반 종합상사 아이템과는 전부 달라. 일반적인 아이템은 석탄이면 석탄, 섬유면 섬유 등의 제한된 영역의 싸움이지만 IT는 우리 생활 전반에서 활용되는 것인지라 다방면의 많은 공부와 노력을 해야 하지. IT에 익숙치 않은 상사맨으로는 그런 품을 들여 이 물건을 파느니 차라리 일반 아이템을 파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야. 결국 IT 제품의 해외수출은 해당 제품을 만든 제조업체의 몫이 된 거야.”

“종합상사들이 다른 회사의 제품을 취급하는 예가 별로 없었나요.”

“그것이 문제인데. 국내 종합상사들은 자체 계열사 제품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 문호를 개방해 다른 중소기업 제품도 취급해야 하는데 그것이 그룹문화상 결코 쉬운 것이 아니냐. 그리고 중소기업 제품에 대해서는 뿌리깊은 불신이 있어. 아무래도 중소기업 것이 완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지. 그럴 경우 해당 상사맨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것이 과연 쉬울까.”

“IT종합상사의 앞날에 대해 어떻게 보나요.”

“가능성이 있는 얘기지. 그러나 무척 큰 리스크를 져야 해. 우리나라의 IT수준은 다른 나라가 쫓아오기 힘들 정도로 앞서 있어. 한국인이 손재주가 좋은 모양이야. 별 희한한 제품은 다 만든다니깐. 일전에 우리에게 일상화된 제품을 가지고 미국에 가져갔는데 미국인은 정말 눈이 휘둥그래지던군.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혁신적인 제품은 소비자가 안사주면 그만이야. 특히 생활을 바꾸어야 하는 점도 있는데 그런 것이 쉽지 않아.”

“방법이 없을까요.”

“IT전문 마케터의 육성이 필요하지. 떨어지는 제품의 완성도를 보완해주고 현지 시장에 맞게 계속 baby-sitting을 해주어야 하지. 그리고 개발단계에서 개발자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해외 시장에 맞는지 예상 고객이 누구인지에 대한 사전조사를 해야 한다고 봐.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면 당연히 미국 현지 마케터와의 연결이 필수적이야. 그것이 아니라면 섣불리 개발에 손대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

점심시간에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두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진정 IT종합상사는 가능한지 스스로 되묻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만들기 보다 팔기 어려운 현실에서 진정 ‘IT분야 임상옥’은 언제 등장할까요.

/이민호 Marketing Enabler mino@bioz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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