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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배의 와일드카드] PK보다 게임 중독이 더 무섭다


 

며칠 동안 온라인게임에 매달리던 게이머들이 사망하는 사건은 요즘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인천의 PC방에서 며칠 동안 게임에만 매달린 회사원이 화장실에 숨져 있는 것을 동생이 발견한 사례도 있었고, 충북 청주시의 PC방에서 고교생이 게임을 하다 컴퓨터 앞에서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사망한 사건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사건이 있어도 사고 당시의 정황을 정확하게 조사하지도 공개하지도 않는 것이 관례인 것 같다. 온라인게임을 하다가 죽었다는 사실만을 단편적으로 알려줄 뿐이서 객관적으로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도 비슷한 말썽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위스콘신에 살았던 숀이라는 21살의 청년이 지난해 추수감사절 아침 자신의 방에서 총기 자살을 감행한 사건이다.

숀을 발견한 사람은 어머니 엘리자베스 울리였다. 그의 시신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고, 방에는 '에버퀘스트'란 온라인게임에 관한 메모들이 흩어져 있었다. 숀의 어머니는 이 메모들에서 숀을 자살로 몰고간 이유를 찾으려 했지만, 명확한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숀의 어머니는 무엇이 아들을 광기로 향하게 했는지 온라인게임 '에버퀘스트'의 서비스 업체인 소니온라인엔터테인먼트(SOE)에 문의를 했지만, SOE는 다른 게이머들의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숀의 어머니는 숀이 사고 직전 매일같이 에버퀘스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에버퀘스트가 아들의 자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이 일을 다른 게이머들에게 게임 중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계기로 삼으려 하고 있다.

그는 "SOE가 아들의 계정을 조사해 주기 바란다"며 "아들은 자살하기 1주일 전부터 계속해서 에버퀘스트에 접속해 있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에서 숀의 인생을 파탄시킬 일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아들을 자살로 몰고간 이유는 분명 에버퀘스트 속에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물론, 숀은 간질이라는 신체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온라인게임을 너무 하면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고, 실제로도 온라인게임 때문에 가끔씩 발작 증세를 일으키곤 했었다. 따라서, 간질 때문에 자살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숀이 자살하기 1주일 전쯤 총을 구입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다른 이유에서 계획적으로 자살을 준비했다는 것이 더 설득력있다. 숀의 어머니는 아들이 총을 구입한 사실을 자살이 벌어지기까진 알지 못했고, 그동안 아들의 행동에 이상한 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주립 대학 의존증 연구센터의 마이클 파라거(J. Michael Faragher) 박사는 "총기를 미리 구입했다는 사실을 볼 때 자살은 계획적으로 수행된 것"이라며 "총기 구입이란 계획이 있어 충동적인 이유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고, 간질 발작이 자살과 인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이유가 SOE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SOE가 사회적 책임감이 부족하지만 과실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만약 SOE가 게임 중독에 대해 경고를 했더라도 숀이 온라인게임을 빠진 자신을 억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라거 박사에 따르면 기분이나 감정에 변화를 미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잠재적으로 인간을 의존증에 빠지게 한다. 끝이 없이 진행되는 온라인게임도 예외는 아니다. 의존증은 타당한 정의를 기준으로 유해한 것과 사람의 행동이 제어 불능에 빠지는 것, 그리고 의존증 환자 자신이 현재 행위에 빠진 상태가 행위에 빠지기 이전의 상태보다 바람직한 감각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것 등 3개의 특성이 있다.

숀의 어머니에 따르면 숀이 에버퀘스트를 시작한 것은 2년 전으로, 지난 해부터는 완전히 게임에 빠졌다고 한다. 숀은 일까지 그만두고 게임에 몰입한 결과 독립 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의존증 환자를 위한 그룹에 입주했다.

그 곳에서 숀은 정신분열적 인격장해로 진단돼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얼마 후 그 곳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어머니의 반대를 무시하고 아파트를 빌려 쉼없이 온라인게임에 몰입했다.

당시 숀의 어머니는 아들이 빠져있는 온라인게임 의존증에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없어 너무 곤혹스러워했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증에 걸렸을 때 모임에 참가해 치유할 수 있는 것처럼 온라인게임 의존증 환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절박하다는 게 어머니의 생각이다.

숀이 자살한 이후로도 SOE는 숀의 어머니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 그래서 숀의 어머니는 아들이 에버퀘스트의 어느 서버에서 어떤 캐릭터로 참여하고 있었는지, 숀이 가입한 동맹이 무엇인지, 누가 친구였는지, 패스워드는 무엇인지조차 알 길이 없다.

최근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 같은 일이 벌어졌던 에버퀘스트에 '12세 이상 이용가' 등급을 매겼다. SOE와 에버퀘스트의 국내 서비스 업체인 엔씨소프트로서는 쌍수들고 고마워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아마도 표정 관리가 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온라인게임에 며칠씩 몰입하다가 사망하는 일은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일어난다. 온라인게임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지만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사회적 영향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는 미국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게이머들이 온라인게임에 중독돼 고통받을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박형배 칼럼니스트 elecbass@shinbi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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