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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배의 와일드카드] 장애인은 게임을 즐길 권리가 있다


 

온라인게임 등급제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웠던 올해초부터 문화부와 영상물등급위원회가 개최하는 세미나와 공청회에 가면 언제나 낯익은 학생을 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 이 학생을 봤을 때 발음이 좋지 않은 게임 중독자일거라는 편견을 가졌지만, 결국 그의 끊임없는 신음 소리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듣기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말을 걸고 나서야 그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학생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그는 종이에 주섬 주섬 글을 써서 "아~아~"하는 신음 소리를 내며 "온라인게임은 자기같은 장애인이 세상에 편견없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며 "온라인게임을 못하게 한다면 자기로선 세상을 잃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소수의 상황이었지만 너무 절실했기에 충격이었다.

그는 이어 "온라인게임이 폭력적이어서 나이를 기준으로 이용을 제한한다 하더라도 자기와 같은 어린 장애인들은 온라인게임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주문했다. 그가 가진 장애에 아무런 편견없는 온라인게임 세계가 그에겐 절실했던 것이다.

그의 주장은 장애인을 위한 온라인게임의 가능성과 앞으로 갈 일을 극명하게 알려 준다. 사실 이제까지 우리는 온라인게임을 장애가 없는 일반인만을 위해 개발하고, 또 그들만을 위해 규제해 왔다.

일반인에 비해 소수인 장애인들이 만들 수 있는 소비 시장이 작은 상황에서 이들이 정상인들과 똑같이 온라인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훨씬 많이 든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의 종류와 정도도 사람마다 너무나 달라서 더욱 어렵다.

당장 돈 벌기에 급급한 우리 온라인게임 산업의 현실에서 장애인을 위해 세세한 배려를 한다는 것은 사치이자 낭비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얻게 되는 정보통신의 혜택을 장애인들도 똑같이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속에 잠재해 있는 편견과 차별은 정보통신 시대가 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장애인들에게 정보사회는 차별의 격차만 벌여 놓은 암흑기일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장애인들을 위한 게임 시스템 개발을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가 서로 맡겠다고 싸우는 일이야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이 일이야 말로 인터넷 보급으로 돈을 번 선두 업체들과 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하는 일이 아닌가.

이렇게 우리 나라에선 기업과 정부 그리고 시민 어느 쪽도 관심이 없는 가운데 네덜란드의 학생 3명이 시각 장애자를 위한 PC게임인 '드라이브'를 개발해 귀감이 되고 있다.

이 게임은 전통적인 '차 경주'(Car Race) 풍으로 소리만 듣고 게임의 상황을 판단해 운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커서 키를 요리 조리 조작해 코스에 떨어져 있는 부스터란 아이템들을 모으면서 최고 속도로 달리면 짜릿한 귓맛에 푹 빠져버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소리의 입체감 때문인지 일반인용 차경주 게임에 결코 재미가 뒤지지 않는다.

이 게임을 개발한 주인공들은 Utrecht 예술 대학에서 음향학을 전공하고 있는 3명의 학생이다. 이들은 일반인들만을 위해 개발됐던 컴퓨터 게임의 묘미를 시각 장애자에게 조금이라도 알려주겠다는 생각에 처음 개발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일반일들을 위한 PC게임의 소스코드를 구해 개조하는 쉬운 개발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10세부터 14세 아이에게 적합하도록 목표 시장을 잡고 처음부터 새로운 발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갔다.

그래서 모니터 화면에 표시되는 것은 게임의 제목 밖에 없다. 매뉴얼을 구하지 못해 정확하지는 않지만 플레이어는 스피커나 헤드폰에서 표현되는 엔진 소리와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키보드를 눌러가면서 속도를 조절하면 된다. 방향키 중 <↑> 키가 속도를 높이는 엑설레이터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스페이스 키가 브레이크다. 게임 중 부스터가 나타나면 왼쪽키를 누르면 먹을 수 있다.

350Mhz 이상의 펜티엄2 PC의 시스템에 '윈도우즈 98'의 운영체제가 운영체제이면 무리없이 실행되는 이 게임은 drive.soundsupport.net에 접속하면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다. 파일 크기는 CD 음질일 경우 115MB이고, 낮은 음질일 경우 38MB다. 눈을 감고 이 게임을 맘껏 즐겨본 후 정확한 게임 법을 올려주길 바란다.

요즘 이 학생들은 '드라이브'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한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소리의 표현력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 설계 철학을 게임 이외의 분야에 접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들을 위한 이 학생들의 독창적이며 획기적인 철학을 도입해 우리 것으로 만든다면 우리나라가 개발한 온라인게임이 차지하는 산업사적 의미가 달라질 것이며, 세계 시장에서 그 위상도 부쩍 올라갈 것이다.

이와 함께 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우리의 온라인게임들이 업그레이드된다면 "온라인게임은 폭력"이라는 등식으로 소비자의 머리 속에 각인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효과도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기업이 얻는 이런 효과들을 감안하지 않는다 손 치더라도 장애인은 게임을 즐길 권리가 있다. 세미나와 공청회에서 만났던 그 학생을 대신해 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온라인게임을 설계하고 진흥해 줄 것을 업체와 정부에 건의한다.

/박형배 칼럼니스트 elecbass@shinbi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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