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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배의 와일드카드] 게임 속 폭력에 관한 논쟁


 

45일간 이어지던 '리니지' 등급 논쟁은 지난 14일 엔씨소프트가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제시하는 기준에 맞춰 리니지를 두 개의 버전으로 나눈 후 각각 '12세 이용가'와 '15세 이용가' 등급을 받음으로써 일단락됐다.

영등위는 지난달 17일 리니지를 성인 등급인 '18세 이용가'로 분류했다가 엔씨소프트의 추가 등급 분류 요청에 따라 PK가 가능한 '리니지 PvP' 버전과 PK를 허용하지 않은 '리니지 논 PvP' 버전을 각각 '15세 이용가'와 '12세 이용가'로 등급을 낮췄다.

영등위 측은 "수정된 리니지 버전에서는 PK를 할 때 아이템을 획득할 수 없도록 해 무분별한 PK를 막았다"며 "이같은 게임 수정으로 폭력성을 완화할 수 있다고 판단해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영등위의 판정에 대해 엔씨소프트가 수용하겠다는 화답을 보내 양 측이 벌이던 갈등은 모두 해소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속 폭력이 현실에서 폭력을 일으킨다는 영등위와 게임 속 폭력이 오히려 현실에서 폭력을 줄인다는 게임 업계간의 시각차는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영등위와 엔씨소프트가 서로 만족스런 결과를 얻었다고 해서 영등위와 게임업계 사이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만간 곪은 종기 터지듯 양측의 갈등은 다시 터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영등위와 게임 업계에 재발될 충돌을 미리 예측하려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임에 대한 '규제 대(對) 반규제' 논쟁을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폭력적인 게임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미국 게임 업계가 지난 10년동안 일관되게 강조하는 주장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게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살인을 범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논리다.

폭력적인 게임의 판매 및 전시를 제한해 온 지방 자치 단체인 '미저리 센트루이스'를 상대로 진행된 소송에서 게임 업계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제시해 온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 목적은 물론 폭력적인 게임의 판매 및 전시를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덧붙여 33명의 대학 연구자들은 "언뜻 보기에 최선인 것 같은 상식이 항상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다"며 "예술과 엔터테인먼트가 가져오는 다양한 효과를 무리하게 수치로 계산하려는 실험이 대중 문화의 이용법에 대해서 유익한 통찰을 낳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미국의 경우 폭력적인 묘사를 일삼는 미디어를 규제하는 일은 연방 정부 외에도 주마다 독립적으로 시행해 오고 있다.

미주리에서 미디어에 대한 규제는 17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잔혹한 장면이 있는 영화를 대출하는 일을 금지한 법안을 만든 것부터 시작된다. 이 법안에 대해 1989년 당시 미주리주 지사였던 존 아슈크로후트가 서명해 법제화됐지만, 얼마 후 같은 주 캔자스 시의 연방 재판관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현재 세인트루이스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에 관한 소송은 지방자치단체 의회의 제프 와그너 민주당 의원이 제출해 2000년 10월에 통과한 조례에서 시작된다. 물론, 세인트루이스의 조례가 위헌이기 때문에 폐지하라며 소송을 일으킨 측은 게임의 업계를 대표하는 '인터랙티브 디지털 소프트웨어 협회'(IDSA)다.

이에 대해 올해 4월 연방 지방 법원의 스티브 림보 재판관은 "폭력적인 묘사의 비디오 게임은 아이들의 공격적 행동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고 판결했고, IDSA는 이에 불복하고 곧바로 상소했다.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오랜 세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왔다. 이런 시도는 1928년 시행된 영화 속 폭력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로부터 죠제프 리바만 상원 의원이 모든 형태의 오락물의 폭력적 묘사에 대해 해 온 10년에 걸치는 투쟁에 이를 때까지 다양하다.

물론, 비디오게임 속 폭력이 아이들의 공격적인 행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은 리바만 상원 의원 만이 아니다.

미 육군 퇴역 중령으로 '키로로지 연구 그룹'을 설립한 데이빗 글로스 맨은 게임 업계의 주장을 "흡연은 암을 일으키지 않는다"라고 주장한 담배 업계의 과거 주장에 비유하고 있다.

폭력과 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지금까지 1천300편 이상의 주목할만한 연구가 행해졌다. 그러나, 폭력적인 게임을 하는 것이 현실 사회에서 폭력 행위를 행하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인과 관계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스 맨은 앞으로 1년 안에 새로운 연구에 의해 폭력적인 쌍방향 게임과 현실 폭력의 상관성을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토크 쇼 사회자인 필 드나휴도 30년 이상 비디오 게임의 폭력적인 묘사를 비판해 왔다. 드나휴는 1972년 롱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로니 램을 폭력적인 게임에 반대하는 어머니로서 초청해 그의 메세지를 소개하므로써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 금지를 향한 운동에 불을 붙였다.

그런 30년 후, 드나휴는 요즘 그가 진행하는 MSNBC의 프로그램을 통해 미주리 세인트루이스의 소송에 의견서를 제출한 연구자 중 한 명인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헨리 젠킨스 교수가 폭력적인 게임을 옹호하고 있다고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다시금 이 운동의 불을 지피고 있다.

사실, 게임에 관한 긍정적인 논리와 부정적인 논리가 무엇이든 폭력적인 게임이 돈이 된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지난해 게임 업계는 미국에서 8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이 같은 규모를 감안할 때 할리우드의 영화 업계와 음반 업계가 게임 산업에 군침을 삼키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확실한 대박을 원하는 영화 업계는 쌈박하고 폭력적인 소재를 찾아 게임 업계를 훑고 있다. 돈 되는 일이라면 폭력적인 묘사에 주저함이 없는 영화제작자들은 총을 난사하는 폭력성으로 무리를 빚었던 '둠'(Doom)을 영화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케이블TV 산업에도 이러한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다. 격투 게임 시리즈인 '모탈 컴뱃'(Mortal Kombat)과 관련있는 업체인 스레숄드엔터테인먼트는 24시간 내내 가라데와 킥복싱 선수권 대회를 생중계하거나 쿵후 영화 등을 방영하는 채널을 송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든 미디어가 통합되고 있는 요즈음, 게임 산업에서 새로운 금광을 캐려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끌어들여 폭력적인 게임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게임 업계가 대반격에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형배 칼럼니스트 elecbass@shinbi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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