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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석의 밴쿠버 리포트] 판도변화가 불가피한 미국 통신업계


 

미국 통신업계는 지난 80년대 초 독점 전화회사였던 벨시스템(AT&T)의 붕괴를 계기로 본격적인 경쟁시대를 맞았다. AT&T의 기업분할에 따라 7개의 베이비 벨, 즉 지역 전화 회사들이 새롭게 탄생했고 MCI, 스프린트 등 장거리 전화 사업자들이 기존의 AT&T와 경쟁을 하는 구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벨 시스템 붕괴를 계기로 형성된 본격적인 경쟁체제는 한동안 안정적 경쟁구도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90년대 중반 인터넷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IT붐이 일면서 통신 서비스 업체간 경쟁이 극에 달해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맞게 된다. 혈전을 방불케하는 치열한 경쟁양상이 빚어진 것이다.

그런 와중에 혜성처럼 나타난 거대 통신회사가 월드컴(WorldCom Inc.)이다. 월드컴은 지난 98년 말 당시 AT&T에 이어 미국 장거리 전화업계의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통신자이언트 MCI를 전격 인수하면서 전 세계 통신업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MCI인수를 계기로 월드컴은 하루 아침에 미국 통신업계를 대표하는 통신그룹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화려하게 등장한 월드컴이 급격한 IT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90억 달러에 달하는 대형 회계부정 사건에 휘말리면서 급기야 부도를 내고 정부의 파산보호를 받는 처참한 신세로 전락한 것은 바로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그 월드컴이 벨 시스템 붕괴이후 미국 통신업계를 가장 큰 지각변동의 회오리 속으로 몰고 갈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어 미 통신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MCI를 인수하면서 미국 통신업계 경쟁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던 월드컴이 최근 부도를 계기로 또 다시 미 통신업계 판도변화의 핵으로 작용하게 됐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러면 월드컴이 또 다시 미국 통신업계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월드컴이 업계 일각의 예상과 달리 회생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많은 경쟁기업들이 월드컴이 회계 부정사건을 계기로 이 세상에서 아예 사라질 것으로 예상을 했으나 그 예상이 빗나가고 있는 징조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정부가 월드컴을 살려내기 위해 부채를 탕감해주는 쪽으로 정책 방향의 가닥을 잡고 있으며 월드컴 자체도 기업 파산이라고 하는 최악의 상황을 면키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이 회사는 내년 9월이면 정부의 파산보호(Chapter 11)에서 벗어나 자력갱생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휴렛팩커드에 합병된 컴팩의 마이클 카펠라스(Michael Capellas) 사장이 월드컴 CEO자리로 옮겨가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하여 업계 전문가들은 이를 월드컴의 회생을 예고하는 청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카펠라스의 인지도나 경영능력으로 미루어 그가 월드컴행을 결심한 것은 월드컴의 앞날에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가장 당황하는 측이 벨계열 업체들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통신업체들이다. 만약 월드컴이 기사회생하게 되면 종전보다 훨씬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앞세워 실지회복에 나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제살 깎는 식의 가격경쟁으로 가뜩이나 수익성이 낮아진 통신업체들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들 가능성이 커진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상황이 전개될 경우 미국 통신업계는 한차례 인수합병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 것이 뻔하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힘이 부치는 통신기업들은 강자에게 백기를 들고 투항을 해야 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될 것 또한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다.

일부 벨시스템 계열 통신업계 리더들과 70여만 명에 달하는 벨시스템 계열 및 AT&T 노조원들이 합심하여 월드컴을 아예 파산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온 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현재 통신업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여타 관련 기업들이 월드컴의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이처럼 월드컴은 경영난으로 파산지경에 이르렀다가 회생하여 통신업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특히 월드컴의 회생은 벨계열 통신 회사들을 비롯 AT&T, 스프린트, 케이블 앤드 와이어리스 등 현재 멀쩡하게 경영이 유지되고 있는 통신 회사들에게 대단히 큰 파급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통신업계의 대규모 지각변동 예측을 가능케 해주는 요인이 반드시 월드컴의 회생 가능성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파산보호를 받았다가 다시 회생의 길을 걷고 있는 통신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ICG커뮤니케이션즈를 비롯 플래그 텔레콤(Flag Telecom), ITC델타콤, 위리엄즈 커뮤니케이션즈(WilTel) 등도 부도를 냈다가 불과 한달 전에 파산보호 상태를 벗어나 회생의 길을 걷고 있다.

그밖에 코바드(Covad)커뮤니케이션즈, 맥로드(McLeod)USA 역시 경영이 정상을 되찾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크로싱, 360네트웍스, XO커뮤니케이션즈 등의 전국회사와 네온(NEON)커뮤니케이션즈, CTC커뮤니케이션즈 등 지역 전화 사업자들도 앞으로 몇 개월 후면 비슷한 상황을 맞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렇게 회생되는 통신사업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생존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 와중에서 다수의 통신사업자가 희생되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이런 예상 속에 일부 전문가들은 월드컴의 회생에 그리 큰 비중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기도 하다. 설사 월드컴이 파산을 면하고 기사회생하여 재기한다 해도 90년대 말에 미국 통신업계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와 관련, 통신컨설팅 회사인 넷포캐스트(NetForcast)의 피터 세브치크 사장은 “월드컴이 다시 강력한 경쟁력을 갖는 통신회사로 재 부상하기 위해서는 4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우선 파산보호상태에서 벗어나야 하고 통신서비스 사업자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하며 기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고 실추된 이미지를 되살려야 하는 것이다.

세브치크 사장은 그러나 월드컴이 이 4가지 조건을 갖추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며월드컴 회생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월드컴과 같은 부도난 통신 기업들이 설사 한두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하더라도 여러가지 내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또 다른 문제들이 가로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보스턴의 컨설팅회사인 애틀란틱ACM의 쥬디 리드 스미스 씨도 “대부분의 부도난 통신 기업들이 정부의 파산보호 조치 등으로 부채만 경감되면 경쟁력을 회복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는 크게 잘못된 인식”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즉 많은 기업들이 파산보호 상태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추락하는 상황을 맞고 있으며 이는 부도난 기업이 재기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 같은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미국 통신업계가 향후 1~2년 사이에 지금과는 크게 다른 새로운 경쟁구도를 갖추게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통신서비스 업계를 비롯한 IT업계 전체의 산업 경기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우세한 분위기여서 미국 통신업체들의 생존투쟁은 갈수록 치열해 질 것이 분명하고 이는 지금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모습으로 업계 판도가 짜여질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케 하고 있다.

/주호석 리더스컨설팅그룹 북미담당 고문 hsju@can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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