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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e세상 법이야기] 무식한 이야기


 

“….퇴근길에 모처럼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고 하자. 어떤 책이 좋을 까? 아무래도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가 좋겠다고 생각하고 딸아이에게 “어린 왕자”를 사주었다. 그리고 오는 길에 수퍼에 들러 초코우유를 샀다. 그런데 책을 읽는 아이의 반응이 좀 이상해서 책을 읽어 보니 맙소사 이 것은 제목은 “어린 왕자”이지만 사실은 어린왕자의 줄거리에 포르노를 섞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초코우유도 이상하다. 아니, 이럴 수가 이 것은 초코우유이지만 알코올도수가 무려 30도가 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런 일을 당해 그 “어린왕자”의 출판사에게 전화로 항의해보았자 소용없을 것이다. 단지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예술작품을 이해 못하는 무식한 중년이라는 핀잔을 들을 뿐이다. 우유회사에 따져도 “고리타분한 맛에서 발상의 전환을 한 창의적인 식품”을 고루한 잣대로 재려 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미 “발상의 전환”을 한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가치를 강요하지 말라고. 시대가 변하므로 인간 소외와 정신적 일탈에서의 구원이라는 어린왕자의 창조적 재해석을 위해 어린왕자와 별똥별 요정과의 성행위가 들어간 것뿐인데 예술을 이해 못하는 무식한 사람들은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노골적인 성행위만 문제삼는다고.

인간소외와 정신적 일탈 어쩌고 하니 조금 주눅이 든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그래도 내 어린 딸에게는 그런 내용이 좀 나쁘지 않겠어요?” “하하하, 참 딱한 사람이구만” 친절한 출판사 직원이 내게 말한다. “요새 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그런 정도를 걱정한단 말이요? 그리고 솔직히 있는 사람사는 거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계 뭐가 나빠? 당신은 위선적으로 살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키우면 안되지.”

그는 더 나아가서 내 약점을 마구 찌른다. “당신은 영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구만. 그 소설을 새로 편역한 사람은 프랑스의 저명한 콩고물 문학상을 수상하고 미국의 유명한 호빠드 대학 교수야. 당신이 그 교수님의 깊은 문학적 고뇌를 알리 없겠지만 어쨌든 예술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마쇼”

졸지에 무식한 인간이라는 것이 탄로났지만 내게도 할 말은 있다. 그 저명한 교수님이 “어린왕자” 를 어떻게 편역하든 그 것은 그 교수님 자유지만 만일 편역과정에서 원작과 다른 내용을 넣었다면, 그리고 그 내용이 어린 학생들에게는 맞지 않는다면 표지에 그런 것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먹고 살기 바쁜 우리들 부모들은 아이에게 책을 사줄 때 일일이 다 읽어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모처럼 아이와 영화를 보러 갈 때, “전체 이용가”로 등급이 된 영화는 적어도 여자 주인공이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나 남녀 주인공이 욕실에서 옷을 입지 않은 상태로 애무하는 장면이 있다든가 아니면 주인공이 악당의 목을 톱으로 짤라서 그 솟구치는 내장과 피가 온 몸으로 튀는 장면은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내가 너무 고루하고 무식한 것일까?

문득 지난 번 공연을 보러갔던 적이 생각난다. 제목이 세익스피어극이고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단체가 하는 공연이라서 나는 안심하고 아이를 데리고 아빠의 생색을 모처럼 내고 있었는데, 아니 이럴수가! 노골적인 노출과 성행위 장면 그리고 계속 반복되는 짙은 키스신들로 나는 그야말로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고 마누라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내내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했다.

나는 누구든지 어떤 내용과 제목으로 공연을 하든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다만, 그 작품안에 선정적인 장면이 있는지 폭력적인 내용이 있는지는 미리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쏘주 생각이 나면 쏘주를 사면 되므로 초코우유에는 제발 알코올을 넣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꼭 넣어야 한다면 이름을 “알코올이 들어간 초코우유”로 해야지 그냥 “초코우유”로 하야 판매하는 것은 명백한 기만이다. 누구에게나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있고 창작의 자유가 있으므로 자기의 작품을 “어린 왕자 2002”로 부르던 “신판 어린왕자”로 부르던 그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겠지만 부디 이전의 작품과 혼동되는 “어린왕자”로 제목을 붙여 결국 나 같은 사람들이 민망한 처지에 빠지게 하지 말아 주기를 부탁한다.

비록 회사에서는 늘 치이고 쪼이는 힘없는 가장도 자기 집에서 자기 아이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바람이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게임을 사줄때에도, 아이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갈 때에도 또 아이에게 초코 우유를 사 줄때에도 상품의 겉포장에 있는 이름과 성분을 믿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은 결코 지나친 요구가 아니다. 나는 단지 게임을 살 때에도 사실대로 그 게임이 어느 정도 폭력적인지 어느 정도 선정적인지 알고 싶을 따름이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만 등급제를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본다. 등급제를 무용도, 발레도, 뮤지컬도 오페라에도 모두 확대실시하자. 말도 안된다고? 이미 70년대에 그룹 도어스 공연때 그룹리더였던 짐모리스가 공연도중 자신의 아랫도리를 노출시켜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고, 연주 공연도중 마약을 실제로 주입하거나 민망한 그림을 크게 전시하는 일들이 세계 여러곳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예술탄압이라고 큰일날 이야기지만 80년대의 미국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 작가의 전시회에 전시된 사진이 문제가 되어서 경찰이 현장에서 작가를 체포하고 전시물을 압수한 일도 있다.

지금 몇몇 나라에서는 연극등에 대해 자발적인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말이 자발적이지 실제로는 강제적인 것이다. 자발적으로 등급제를 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액수의 민사책임을 각오해야 하므로 유통업자들은 등급을 받지 않을 경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게임업계의 등급제가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등급제도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가장 큰 잇슈가 되어야 하며 등급제 자체가 옳으냐 그르냐하는 문제는 문제의 본질과 비껴나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게임의 등급제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초코우유를 살때 그 안에서 무엇이 나와도 결코 놀라지 않는 모양이지만 보통 사람은 포장의 성분표도 따지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아참,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도외시하는 무식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김형진 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hjkim@js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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