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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IT와 사람] 휴대전화와 금단의 열매


 

휴대전화만큼 우리 생활을 뒤바꾼 근대 문명의 이기가 또 있을까요? 그런데 그 편리함을 거부한 사람들이 있더군요.

남태평양의 섬나라 노퍽. 호주령으로 돼있는 이 섬나라 주민들은 최근 주민투표를 실시했다지요. '섬에서 휴대전화 서비스가 실시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안건이었다는군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그들은 한 마디로 단호하게 거부했다는군요. 그들이 휴대전화 설비 가설에 찬성했다면 그것은 뉴스감도 아니지요. 개가 사람을 문 것과 같은 일이 기사거리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인구 2천여명에 불과한 노퍽섬 주민들은 별난 결정을 내렸더군요. 휴대전화도입을 놓고 실시된 선거에서 600여명이 반대하고, 300여명이 찬성했다는 것입니다. 반대표가 찬성표의 2배가 넘어 휴대전화 서비스 도입은 부결됐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휴대전화 도입을 반대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외부세계로 통하는 창과 섬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2천400여대의 유선전화와 해저 광케이블을 통해 연결된 인터넷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자연친화적인 휴양지를 최고의 강점으로 내세운 주민들은 자신들의 그같은 생각이 관광객에게도 먹혀들 것으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이 섬의 주수입원이 연간 4만여명 관광객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주민들이니까요.

저는 그들의 결정을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편으로는 참 용감한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근대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신이 금지한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떠올렸을까요. 아담과 하와 같은 견물생심(見物生心)을 우려했을까요. 노퍽섬 주민들은 아예 원천봉쇄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지요. 이동통신 서비스라는 금단의 열매가 싹을 틔우기도 전에 비자 발급 자체를 막아버린 것이지요.

휴대전화 서비스 등장 이후의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순기능 못지 않게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것은 물론, 휴대전화가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사실을 떠올려볼 때, 그들은 대단한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 일간지에 조그맣게 보도된 이런 기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이 북한을 탈출하는 주민들이 북.중 국경지역에서 휴대전화의 도움을 받아, 탈출관련 정보를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는 것입니다. 마이니치는 한국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국경지대에서 통화가 가능한 중국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탈북 주민이 한국의 지원단체 등에 전화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 사람들은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거부하는 반면, 지구촌의 또 다른 곳에서는 꿈에도 그리던 자유를 찾기 위해 휴대전화라는 문명의 이기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이동통신의 역사를 뒤적이다 보면 1940년대 미국 모토롤러의 워키토키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전기로 첫 선을 보인 이동통신기기로서 워키토키는 생존의 현장인 전장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비상수단중 하나였습니다. 동일 주파수를 사용하는 사람들간의 통신으로 극한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수단이었던 것지요.

그로부터 두 세대가 지난 60여년이 흘렀습니다. 21세기 초 현재, 북.중 국경지대에서 자유를 찾아 정든 터전을 떠나야 하는 자유이주민들은 휴대전화에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의 생명을 걸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 보면, 노퍽섬 주민들의 결정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다고는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현명한 선택일지 모르지만, 오늘 우리가 선택하기는 어려운 그런 결정일테니까요. 세상사라는 것이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이분법적 판단으로는 해결될 수 없나 봅니다.

/김강호 I커뮤니케이션연구원 대표 khkim@bora.dac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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