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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IT와 사람] "나중에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 겁니다"


 

"저는 말이죠. 앞으로 돈을 벌면 도시를 떠나고 싶어요. 그리고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 겁니다."

최근 몇 년 동안 IT비즈니스 현장에서 필자가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이다.

시골 농부들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농사가 누구 집 아이 이름인가'하고 코웃음을 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IT종사자들에게 이 프로젝트는 꽤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이 있는 장기 계획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불혹(不惑)의 나이를 넘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로 마흔 고개를 그 전환점으로 설정한다. 그러다 마흔을 넘긴 사람도 많이 봤다. 그러나 그들은 꿈을 접지 않았다. 조금 뒤로 지연시켰을 뿐이다. 필자와 같은 사무실에 근무했던 동료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그 같은 꿈을 갖고 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최근 업무 상담차 만난 J도 그같은 꿈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 자신의 나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30대 초반 쯤으로 보였다. 미국에 유학가서 대학에서 통신 분야를 전공한 그는 자신의 향후 진로를 '농촌'이라고 밝혔다.

"벤처기업에 근무하다 보니까, 참 치사해지는 것 같아요. 여건만 되면 떠나고 싶어요. 조금만 먹고 살만하면 도시를 떠나고 싶어요."

도시풍의 깔끔한 이미지. 자신의 이력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아이비 리그 수준의 대학에서 공부한듯한 언변. IT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지향할 듯한 그의 꿈은 의외였다. 물론 그 나름대로 그가 세상에 부대끼면서 터득하게 된 인생관이나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그런 J의 얘기에서 문득 최근의 한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최근의 영화계 판도를 일거에 뒤바꾼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간단한 줄거리와 무명의 배우들을 내세워 단숨에 200만이라는 관객을 끌어 모았다. 초고속인터넷이 단절된 세계, 배터리를 구하지 못해 게임마저 중단시켜버린 퇴락한 산골마을. 단 한마디의 대사도 없이 버릇없는 외손자의 응석을 받아주는 할머니.

필자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던 아내는 영화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시종 울음을 참지 못했다. 자신 역시 그런 외할머니 품에서 자라났음을 떠올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곳. 아련한 향수. 이런 단어들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 '집으로'는 최근 IT 종사자들의 '꿈'을 어렴풋하게 나마 풀어주는듯 했다.

사실, IT를 중심으로 하는 사이버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칭찬과 격려에 인색하다. 오히려 비판과 비난에 익숙해져 있는듯 하다. 새로이 출시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언제나 종래의 제품이나 서비스의 허점과 단점을 보완함으로써 등장할 수 있다. 때문에 신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자들은 기존 제품의 비판이 일상생활이다.

그리고 이같은 비판적 논리가 소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 비로소 개발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 같은 사고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은 때때로 관계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만한 일임에도 불구,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짓밟을 때가 있다. 다시는 '찍' 소리도 못할 정도로 누르고, 누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같은 현상이 비단 IT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유독 IT종사자들에게 현장 탈출 욕구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라이프 사이클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IT 관련제품이나 서비스 중 라이프 사이클이 2~3개월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짧다. 이같은 현장을 지켜야 하는 개발자들은 새로운 라이프 사이클에 적합한 제품을 만들 때마다 곤욕을 치른다.

'내가 옳다', '아니, 내가 옳다'의 격전이 펼쳐진다. '네가 옳다'는 말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내가 옳으니, 너는 틀렸다는 이분법적 구별이 주류를 이룬다. 급기야 현장 탈출이라는 마지막 카드가 선택된다. '탈도시' 이후의 목적지는 시골, 특히 농촌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의 실패를 농촌에서 재도전, 성공한 인생으로 바꿔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같은 우리에게 한 시골농부는 점잖게 타이르고 있다. 전우익 선생이라는 분의 얘기다. 1925년 생으로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그곳 구천마을에서 자연을 스승삼아 사는 농사꾼 전우익 선생이 최근 출간한 '사람이 뭔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흙, 나무, 쇠, 시멘트 가운데 어느 것이 사람한테 가장 잘 맞는지는 손바닥 발바닥이 가장 잘 압니다. 고기는 바닷가 사람들이 잘 잡고, 나무는 시골사람들, 옷과 밥은 어매가, 지게질은 아버지가 잘합니다. 우리한테 알맞은 곳이 어딘지는 손바닥 발바닥이 잘 압니다. 손바닥 발바닥한테 맞는데 가서 살면 돼요. 왜 그러냐고 묻지 마소. 전 무식하니까 그런 거 몰라요. 눈, 코는 두 구멍인데 입은 왜 하나냐고 묻는 것과 같지. 자꾸 따지고 똑똑한 게 화근인데 머리로 궁리하고 판단하려 듭니다. 제 꾀에 제가 빠진다, 육갑 아는 놈 농사 망친단 말이 있어요. 무식하고 우직하게 살아요. 유식하면 피곤해요. 인생이란 장사가 아닌데 왜들 계산하고 따져 가며 살려고들 해요? 남는 장사 누가 못해요? 오르막길이 없으면 내리막길 생기지도 않아요. 이 땅덩이가 그냥 평탄했다면 정말 재미도 없고 살맛 없어 다 미쳐버렸을 겁니다. 밑지는 인생을 살 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본전 치기 때때로 손해를 봐야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삼시 세 끼 먹는 밥이 다 살찌면 큰일 납니다. 설사도 하고, 토하고, 찌기도 빠지지도 않기에 먹을 수 있지요."

절망감과 패배감에 도시를 떠나려는 J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동시에 자신만만하게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동시에 필자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이다.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그는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강호 I커뮤니케이션연구원 대표 khkim@bora.dac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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