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김강호의 IT와 사람] 100년 이후의 청사진을 만든 기업


 

올초 유럽의 한 IT기업과 제휴를 맺고 있는 K사장을 만났다. 업무 협의차 유럽으로 출장을 다녀온 그는 입에 거품을 물며 현지에서 보고 느낀 다양한 소감을 전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K사장의 제휴 협력사의 이사회에 관한 얘기였다.

K사장의 유럽 파트너 기업은 향후 100년 이후의 기업 청사진을 마련, 의결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을 당시는 '참 대단한 기업이다'라는 정도에서 필자의 생각이 멈춰섰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10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계속 생각의 꼬리를 잡아당겼다.

현재 필자로서는 그들의 결정사항이 어떤 내용인지는 알 길이 막연하다. 단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1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이후에도 지속돼야 할 기업의 정신을 담은 청사진을 기업의 이사진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2002년 초에 수립했다는 사실 밖에 없다.

보통 역사가들은 한 세대(Generation)를 30년으로 계산한다. 나는 이 말은 그렇게 생각해본다. 한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에 의한 리더십이 30년 정도 유지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말이 좋아 리더십이지 특정 개인에 의한 오랜 독주는 독재로 흐를 수 있다. 그렇다고 독재가 모두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조직 구성원 모두의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는 독재라면 '창조적 독재'로 칭송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사 이래 그런 리더십이 존재했다는 말은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아마도 30년 정도의 독주는 부패로 연결되거나 그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인간 예수가 생애를 30년으로 마감한 것은 이런 세대교체의 시기와도 무관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연결해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전제로 한다면, 100년이란 기간 동안 세대는 무려 세 번이나 바뀐다. 그 기간 동안 지켜질 수 있는 기업의 청사진이란 과연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우선 모든 세대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편타당한 가치기준을 담고 있어야할 것이다. 또 특정 집단이나 사람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원칙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로운 경영방침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테면 우리의 교육법 제1조에 등장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같은 우리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 정도라면 100년 역사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비전일 것이다.

계획은 구체적이고 간명할수록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구체적이고 간명한 계획의 실행기간은 짧다. 그러나 계획 실행기간이 너무 짧다보면 중복투자의 요소가 생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중장기계획이 필요하게 된다. 이같은 중장기계획과 관련, 기업이나 조직, 국가의 계획기간은 길어봤자 10, 20년이다. 계획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상황변화에 따라 잡음이 개입될 여지가 많아지는 것이다. 상황이 달라질 경우, 계획의 비전이 불분명하면 혼선이 빚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다양한 생각을 특정 단어에 집약해 표출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사업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의례껏 하는 말이 있다. "요즘 뭐 좋은 사업 없을까?" 이 때 '좋은'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두고, 잠시 생각해보자. 이 '좋은'이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이 떠올릴 수 이미지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차이는 삶의 경험 차에 기인한다. 사람들은 가정 형편이나 가족관계에 따라 성장과정이 모두 다르다. 또 비즈니스에서의 경험도 모두 다르다. 이렇게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그릴 수 있는 이미지는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비즈니스맨들이 돈을 쉽게 또는 많이 벌 수 있는 사업을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그 방법은 달라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행위는 좋은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다. 폭력과 기만, 협작과 같은 방법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대가로 얻을 수 있는 부를 좋은 사업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 때 '이 정도 쯤은 괞찮겠지'라는 상황윤리의 잣대가 등장한다. 결국 그 수준의 차이가 결국의 사업을 하는 비즈니스의 도덕성, 투명성 등을 가름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과정과 삶의 경험이 서로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기업에서 100년 이후, 기업이 공유할 수 있는 청사진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산부서, 개발부서, 기획부서, 관리부서의 역할과 기능은 모두 다르다. 모르긴 해도 그 청사진이 100년 이후, 개발할 제품의 구체적인 형태나 가짓수를 계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공장이나 직원 숫자를 점장이처럼 예측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법하다.

청사진은 향후 100년 동안 그 기업이 영속적으로 유지해야할 정신이 담겨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제품을 생산하는 그 회사는 자사 제품이 인간의 삶에 왜 어떻게 유익한지를 고민하고, 제품의 용도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청사진에 담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모두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윈 & 윈(win & win)의 세상을 그들의 비전에 담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그 기업이 그같은 결론을 내리는데 극소수의 핵심경영진의 입김이 과도하게 작용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아무리 좋은 비전일지라도 조직 내부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이사진의 만장일치로 그같은 비전이 정립되고, 이를 전직원이 공감대를 표한다면. 그 청사진은 그 기업이 생존하는데 결정적인 힘의 원동력으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필자 역시 가정이나 몸담고 있는 조직의 100년 청사진을 한번 설계해보고 싶다.

/김강호 I커뮤니케이션연구원 대표 khkim@bora.dacom.co.kr








alert

댓글 쓰기 제목 [김강호의 IT와 사람] 100년 이후의 청사진을 만든 기업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