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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IT와 사람] 온실과 야생


 

80년대. 필자 지인 중 이른바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태와 관련, 중고등학교에서 해직된 교사들이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학원가로 진출했다. 이들이 처음으로 진출한 곳이 대입 종합반 강사였다.

주로 재수생들이 수강생으로 등록하는 종합반은 2, 3월에 개강하면 대체로 그해 말 예비고사(지금은 수능고사) 때까지 인원수에서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따라서 고등학교 해직교사의 경우, 학생들 관리는 물론 생활 패턴이 종전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월 급여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다 일부는 단과반으로 자리를 옮겼다.

단과반이란 특정 과목만을 전문으로 강의하는 전문강사이다. 방송가의 용어로 얘기하면 아나운서나 탤런트 등이 '프리'를 선언하는 것이다. 방송계에서 프리를 선언하면 자신의 전문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음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자신의 브랜드만으로도 충분하게 방송활동을 할 수 있기에 'Free', 즉, 'Freelancer'의 길을 걷겠다고 공표하는 것이다. 종합반에서 단과반으로 옮기는 것도 이처럼 '학원가'에서 '프리'를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특별한 강의의 노하우를 터득, '쪽집게' 등으로 불릴 때나 가능한 이같은 모험을 결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무렵, 이들 중 몇몇은 한 달에 웬만한 샐러리맨의 연봉을 벌었다. 이런 모습을 본 교직에 있는 또 다른 지인들은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규 학교의 교사라는 자리가 온실에서 재배되는 꼿으로 비유를 든다면, 학원 강사는 그 자체가 야생화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입학원의 종합반과 단과반 역시 동일한 비유가 적용됐다. 단과반의 경우, 매월 아니 매일, 심지어 매 시간마다 강사의 강의능력이 평가받기 때문에 혼신의 정열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강의를 감당할만한 체력과 언변이 없으면 단과반 강사로 뛰어들 수조차 없다는 것을 교사로 재직하는 지인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원얘기를 이처럼 길게 한 것은 최근 언론에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 벤처 관련 비리를 보면서 벤처가와 학원가에도 공통점이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3년 전 비교적 안정된 직장에 잘 근무하다 어느 날 벤처기업을 창업한다고 사표 내고 나와 야생화 생활을 하고 있다. 패기만만하게 창업을 했다. 필자의 초기 기고연재물인 '테헤란밸리 리포트'에서도 밝혔지만, 심적 물적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업이라는 것이 패기와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는 인맥만으로 성공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같은 사실을 깨닫는 것이 오랜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그래서 사업하는데 등록금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은 또 다르다. 느낌이 말과 손과 발로 나타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머리로 이해된 사실을 가슴으로 느끼는데까지 수십년 걸렸다고 말이다.

어쩌면 인생 60에 이순(耳順)이라는 한자말은 그러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귀가 순하다'는 말은 어떤 말을 들어도 격분하지 않고, 상대방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니 선인들은 사람이 60년은 살아야 산전수전을 체험했을 것이고, 그 쯤이 되면 '아, 저 사람은 사람사는 원리가 무엇인지 조금 알겠구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 전교조 사태로 인해 정든 학교를 쫓겨난 지인들은 더 이상 갈 데가 없었다. 학교를 자신이 발붙일 유일한 삶의 터로 생각해오다 어느 날 문득 그 온실에서 방출당했다. 1~2년씩 방황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세월이 10년 이상에 이르는 지인도 있었다. 그러다 그들이 택한 곳이 학원이었다. 그들은 그 학원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든 자존심을 내던졌다.

그러나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은 자존심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자신이 오랫동안 움켜쥐고 있었던 가식과 허위의식을 버린 것일 뿐이다. 학교 선생이 '학원 강사는 못할 짓'이라고 생각하던 일 그 자체가 허위의식임을 깨달았기에 그같은 변신이 가능했을 것 같다.

벤처 기업계도 이같은 원리는 그대로 적용될 것 같다. 한 때 벤처 붐을 틈타, 벤처기업인으로 변신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기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기업을 일궈야겠다는 확신으로 기업을 창업한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시기에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최근 청와대와 고위층 인사를 동원한 로비와 뒷거래가 난무하고 있다. 때로는 벤처기업이 그 연결고리에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물의를 일으킨 그 벤처기업이 문제이지, 벤처기업 전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당수의 벤처기업이 왜 사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목표의식이 부족하다는데서 이같은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 역시 2000년에 벤처기업을 창업할 때, 왜 사업을 해야 하는지 분명한 목표를 세우지 못해 오랫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기초실력이란 단순히 기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업에 대한 목표의식과 자신의 위선을 내려놓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보다는 어렵다. 말이 쉽지 자신의 가식과 위선을 버리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것이 온실에서 처음 나온 꽃이 바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김강호 I커뮤니케이션연구원 대표 khkim@bora.dac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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