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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포커 게임과 벤처 비즈니스


 

부끄럽지만 저는 ‘잡기’에 젬병입니다. 지금까지 누군가와 어울려 노름을 하면서 돈을 따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셈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데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서 대충 치다가 호주머니만 털리고 맙니다.

물론 돈을 잃고 나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만, 친구들과 고스톱을 칠 때는 따간 녀석들이 개평이라는 것을 듬뿍 주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즐기게 됩니다. 잡기라는 것도 나름대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무덤덤하니, 발전이 있을 수 없겠습니다. 어느 포털 사이트에 나온 저의 운세를 보니까 '절대로 노름에 손대지 말라. 패가망신한다'고 나와 있더군요. 손재주 없는 것은 하늘도 아는 모양입니다.

한 독자분께서 벤처사업을 포커게임에 빗댄 재미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포커게임 이라는 것을 몰라서 여기에 토를 다는 것이 좀 어렵겠네요. 제가 알고 있는 카드게임 상식이라는 것이, 80년대인가 도박 왕을 소재로 한 홍콩 영화가 한참 유행할 때 조금 본 수준이니 말입니다. 멋진 사나이들이 등장해 우정을 위해 희생도 하고 다투기도 하는 어떤 영화에서는 악당들과 게임을 벌이는 막판에 ‘지존’이라는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나와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독자분께서 보내주신 메일의 내용이 참 재미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한상복 님.

저는 선생님의 글을 통해 벤처와 비즈니스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날 문득 찾아온 저의 작은 ‘심득(心得)’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예전에 집안의 동서 형님들과 카드를 친 적이 있습니다.(저희는 치고 나면 나중에 다 돌려줍니다. 그러니, 혹 이 글을 읽고 신고는 하지 마세요...~~)

저는 주로 '세븐-오디'(일곱장으로 치는 카드의 한 종류로 일반적인 포커)만을 주 종목으로 쳐 왔는데, 어느날 넷째 동서 형님(참고로 저는 다섯째)께서 사내 워크샵을 다녀오셔서 '하이-로우'(세븐-오디의 룰에 '하이'와 '로우'로 나중에 승부를 나누어 먹는 카드의 한 종류)를 배워왔다며 자신 있게 그 방식의 카드를 치자고 했습니다.

저는 하이-로우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일단 간단한 설명만 들은 채 게임에 임했습니다. 큰 형님과 둘째 형님, 넷째 형님, 저, 처남 이렇게 다섯 명이서 카드를 쳤습니다. 1시간 만에 제 판돈 5만원을 다 잃으면서 하이-로우 게임의 룰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옆자리 형님에게 5만원을 빌렸죠.(1차 펀딩) 그리고 다시 1시간 만에 5만원을 또 잃으면서 하이-로우 게임의 베팅 및 게임운영 방법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어떤 패를 들고 있느냐보다는 어떻게 게임을 운영하고 베팅 하느냐가 승패의 관건이죠.

그리고 다시 형님께 5만원을 빌렸습니다.(2차 펀딩) 그 후, 게임 운영을 본격화하면서 찬스(카드를 치다가 보면 꼭 이런 판이 오죠. 제가 바닥에 깔아놓은 오픈 패를 남들이 보자면 전체적인 저의 패를 전혀 알 수 없거나 다르게 해석되지만, 실제로 제 패는 무적의 패 일 때...)가 왔죠.

근데, 그 패를 가지고 레이즈(Raise)를 하려는데, 돈이 부족하더군요. 그래서 처남에게 2만원을 다시 꾸었죠.(3차 펀딩)

결국에는 그 판을 왕창 먹고, 1시간 만에 돈을 거의 싹쓸이했습니다.(그리곤 다시 다 돌려드렸죠. 빌린 돈 포함해서…) 그날 밤, 자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벤처 비즈니스라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하고 말이죠.

사업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디어와 인력, 또는 기술만으로 새로운 시장에서 창업을 했고(Seed Money : 애초의 판돈 투입), 새로운 시장의 비즈니스 룰을 아는데 그 시드 머니를 쓴 뒤 1차 펀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게임을 운영하고 베팅 법을 배우는데 2차 펀딩을 받았으며, 마침내 룰을 체득한 뒤 나름의 사업전략을 만들어 본격적인 성공에 돌입하기 위한 마지막 베팅으로 3차 펀딩을 받았습니다. 이런 과정이 우리 벤처 비즈니스의 모델과 참 유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사업을 하면서 투자가들에게 1,2차 펀딩 때 제시했던 말들은 전혀 뭘 모르고 했던 말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아시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돈으로 하든, 남의 돈을 빌리든 자기가 반드시 돈을 딸 것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흔히 하수일수록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하죠.) 정말 돈이 되는 펀딩은 마지막의 3차 펀딩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과정이 없다면 결과도 없는 것처럼 1차와 2차 펀딩이 없었다면 3차 펀딩도 없었을 것입니다.(물론, 재수가 좋다면 초보도 펀딩 없이 돈을 딸 수 있겠지만)

여기서 펀딩이란 다른 사람의 돈을 투자받는다는 의미도 있겠으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결국 벤처는 몇 번의 죽을 고비(직원들 월급을 못 주는 사태)를 넘겨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한번만 펀딩을 받아서 잘 나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곧 '올인'(all-in, 판돈이 다 털리는 것, 흔히 '오링'으로 불림)의 시점이 오며, 이런 올인의 경험을 여러 번 겪어야 진정으로 내공이 탄탄한 고수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공한 기업인이라고 불리는 모든 분의 공통점이 이 같은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겪은 점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많은 창업가나 사업가들이 시장의 정글 룰과 생존방법, 성공방법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투자자들에게 핑크빛 모델 만을 제시합니다.

벤처 종사자, 여러분! 많은 것이 힘들고, 괴로우신 줄 압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을 다 잡고 'Back to the Basic'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노력해봅시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마지막으로 험난한 길을 가고 계시는 분들께 드리는 옛 글귀 한 마디.(돌아가시기 전 저의 아버님의 유훈 같은 말씀이셨습니다. 이 문구의 정확한 저자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려두니, 가는 이 오는 이 흙이라 하는 고야. 두어라 알 이 있으니, 흙인 듯 있거라."

제 나름대로의 짧은 해석:

세파에 찌들려 본래의 빛깔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가진 재주를 펴지 못하고 계시는 모든 직장인들이여. 자신을 알아줄 진정한 Mentor를 아직 못 만나셨다면, 묵묵히 자신의 실력을 닦으면서 기다리십시오. 아직 때가 아닌가 봅니다. 기다릴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이 '옥'이라고 외치십시오. 그리고 도전하십시오. 이도 저도 아닌 신세한탄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않으니까요.>

재미있는 글을 보내주신 이 독자분께 감사드립니다. 포커 게임을 모르는 저로서도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이 분의 시각대로, 저 역시, 벤처 투자라는 것이 '경험 없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깨우치며 실력을 쌓아 언젠가는 대성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한 베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 아버님의 유훈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깊이 있는 무공실력을 자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closest@bizhig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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