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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신문에 나면 뜬다?


 

벤처기업의 경영자들을 만나 ‘경제신문 기자 출신’이라고 소개를 하면 대뜸 “그 좋은 곳에서 왜 나왔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도 신문에 날 수 있겠느냐”는 식의 노하우 전수 요청이 이어집니다.

이 분들의 생각은 간단합니다. 신문에만 나면 ‘유망기업’ 또는 ‘유명기업’이 되니까 투자를 받기도 쉽고 마케팅에도 효과가 높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이른바 유명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대중적인 매체에 인터뷰가 한 번 나기라도 하면 주위로부터 ‘출세했네’라는 축하 전화를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코스닥시장이 크게 달아올랐을 때만 해도 신문에 소개되는 기업은 “내 투자도 받아달라”는 엔젤들의 전화로 몸살을 앓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신문에 나온 기업=유망기업’이라는 등식이 깨진 지 오래입니다. 투자자들의 심리도 싸늘해졌지요.

아무리 매체에 많이 소개돼 유명해진 기업이라도 구체적인 수치(매출, 순익 등의 전망)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기관투자가의 경우,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개인들이야 관심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요즘처럼 거래소 시장이 달아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천정을 모른 채 치솟는 시기에 몇 년 앞을 내다보며 거액을 베팅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일부 벤처기업 경영자들이 아직도 이런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은 경쟁사나 주위의 기업들이 좋은 조건에 투자를 받거나 대형 계약 실적을 올릴 때마다 ‘매스컴을 잘 탔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S사장이 이런 케이스였습니다. 인력구성이나 기술면에서 볼품 없는 경쟁사가 거액의 투자를 받았는데, 이 것이 미디어에 잘 소개되었기 때문이라고 강변하며 홍보 담당자를 다그치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홍보를 해서 신문에 났으니 나름대로 검증을 받은 것이고, 기관투자가들이 이런 측면을 보고 투자를 했음에 틀림없다”는 게 사장의 논지였습니다.

N사의 사장 역시 홍보에 관심이 지나칠 정도로 높습니다. 이른바 유력 매체에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싣고야 말겠다는 것이 이 양반의 당면과제 입니다. 온갖 끈을 동원해 유력 매체 기자들과 접촉을 하고 있으나 신문에 기사 한 번 나가는 것이 쉽지 않으니 문제지요. 이 양반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 신문에는 나가나 마나다. 적어도 X,Y,Z 정도 되는 신문에 인터뷰가 실려야 투자자나 거래처에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이 회사의 아이템이 그리 대중적이지도 않은데다 사업 실적 또한 크게 내세울 만한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사장의 욕심대로 유력 매체를 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기업의 홍보 담당자들은 죽을 맛입니다. 조그맣게나마 회사에 우호적인 기사가 실리도록 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지만 좀처럼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홍보 대행사를 수배해 비용을 치러도 이들 사장의 기대수준에 맞추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목표 건수’에 쫓기는 대행사들은 이를 채우기 위해 온갖 해괴한 재료를 짜내고 가공해서 언론사에 배포합니다. 그래서 회사의 영업이나 기술개발 등 본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벤트나 행사가 급조되고 이것이 보도자료로 만들어져 기자들에게 전달됩니다.

미디어의 관심을 끌기 위한 다양한 ‘쇼’가 연출됩니다. 시스템 통합업체가 사이버 서바이벌 게임을 주관하기도 하고 발렌타인 데이 행사에 인터넷업체 경영진의 부인이 동원돼 총각 직원들에게 초콜렛을 전달하는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일부 업체들이 ‘직원들의 건강을 위한 보약 전달’을 홍보 도구로 이용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물론 이런 캠페인 또는 행사는 말 그대로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직원들 생각도 해주고 홍보도 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느냐”라고 말씀하신 홍보 담당자의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이 같은 전시성 홍보가 회사의 발전에 큰 보탬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깜짝 쇼’는 그 때 뿐입니다. 경영자나 홍보 담당자들에게는 ‘흐뭇한 한 건’, 주변의 경쟁사와 거래처에는 부럽고 흐뭇한 화제거리 정도가 될 수 있을 지 모르겠으나 대중은 신문을 덮는 순간, 그 회사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0년 가량 잉크 밥을 먹었던 제 경험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어떤 신문이 특종보도를 했다고 칩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경제를 회생하기 위해 사용한 정책 권고 가운데 실책이 많았고, 이 부분을 자인하는 내부 보고서를 냈는데 이것을 한 신문이 입수해 단독 보도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경제 정책 입안자는 물론, 경제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 실직자에 이르기까지 “그것 봐라. 설쳐대는 꼴이라니” 하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속 시원하다는 여론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중이 그 신문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신문에 나왔더라” 정도에서 사고(思考)의 흐름이 중단됩니다. 더욱 엄청난 특종을 했던 유력 매체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신문은 특종 보도를 한 뒤 “세계적인 특종”이라며 자화자찬하는 후속 기사를 여러 차례 게재했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위의 사례가 벤처기업들의 홍보와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대중의 인식에 각인을 한다는 것, 더구나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 회사 이름 몇자를 박아 넣어 알린다는 것이 지난한 일이라는 점을 알려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보는 장기적인 투자의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합니다. 현 단계의 분수에 맞는 캠페인을 설정한 뒤 비용과 예상 효과를 주도면밀하게 따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대기업이나 초대형 다국적기업의 경우 문화행사를 지원하거나 직원들의 기를 북돋우기 위한 차원에서 많은 예산을 책정, 과시성 행사를 벌이고 이를 홍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몇 달 앞을 기약할 수 없는 벤처기업들의 험난한 현실을 놓고 보면, 과분하며 효과를 당장 기대하기 힘든 일에 기력을 낭비할 여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경영자의 ‘미디어에 대한 환상’이 담당자들을 과잉 홍보 전선으로 내모는 주요인 중 하나로 보입니다. 벤처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잡지까지 등장한 것도, 한 순간에 유명해지고 싶은 경영자들의 과욕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당수 벤처기업들을 보면 홍보 담당자들의 이직률이 다른 업무 쪽에 비해 높은 편입니다. 그 만큼 견디기 어려워서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으나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벤처기업을 소개하는 월간 잡지들이 무수하게 나와 있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매달 5~6명의 벤처 기업인을 선정해 상을 준답시고 대상자들에게 500권 이상씩 떠넘기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매출을 올려 수익을 냄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것이라면, 홍보 역시 그 본연의 목적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 경영자가 항상 시장의 반응을 살피지만, 시장에 기업의 가치와 비전을 전달하는 데는 서투른 것 같습니다.

시장이 기업으로부터 원하는 정보는 멋진 치장이나 유명세가 아닙니다. 회사의 매출 흐름과 기술, 인력구성,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 같은 경영정보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기업에 대한 기사가 신문의 귀퉁이에 조그맣게 나오더라도 그 내용이 암시하는 바 크다면, 시장은 마치 귀신처럼 이를 찾아보고 반응을 하기 마련입니다. 성공을 꿈꾸는 벤처 경영자들이 하루 아침에 유명해지려는 조급증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미디어에 소개되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은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시장은 미디어와 다른 축에서 움직입니다. 홍보 담당자 여러분, 힘 내십시오.

추신입니다.

이번 글은 제가 예전에 다른 매체에 기고했던 것을 다시 간추려 요즘 상황에 맞도록 개작한 것입니다. 죄송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다들 바쁘신지 메일을 주시는 분이 많지 않은데다, 저 역시 아이디어 고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든 나쁜 내용이든 여러분의 활발한 참여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지난주 글에 대해 이메일로 따끔한 지적을 해주신 이동통신 관련업체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저의 무식함에 대해 반성하겠습니다. 업계에 종사하시는 많은 분들의 가르침을 항상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closest@bizhig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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