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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찍히면 죽는다”, 빅 브라더와 일하기


 

모바일 관련 사업을 하는 K사장은 주위에서 항상 ‘곱다’는 평을 듣는 사람입니다. 나이도 젊은데다 생김새도 영락없는 부잣집 막내 아들이어서 포연이 자욱한 전쟁터(이 곳 벤처 동네)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말씨도 나긋나긋한터라 고생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청년 같지요.

대기업에서 인터넷 분야 신규사업을 진행하다가 아이템을 개발해 창업을 했습니다. 회사를 세운 지 불과 몇 달 만에 초대형 기업의 프로젝트를 따낸 실력을 보면 무작정 사업에 달려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본인의 친정(출신 회사)도 아닌, 전혀 다른 기업에 밀고 들어가 일감을 수주했으니 겉보기와는 딴 판이었던 셈이지요. 용의주도하게 준비를 해왔던 것입니다.

K사장과 점심을 같이 하려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합니다. 심기가 무척 좋지 않은 것 같길래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잠깐 뜸을 들이다가 “참으려고 애는 써보는데 어쩌다가 한번씩 이렇게 열이 확 오를 때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찾아 가기 전에 받은 전화 때문이랍니다.

그는 작년부터 모바일 쪽 사업을 진행하다가 영감을 얻어 특이한 콘텐츠 서비스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어떤 모델인지에 대해서는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K사장의 말대로 “찍히면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 입니다.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들을 대상으로 의사를 타진한 결과,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어내 꿈에 부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논의가 진행되면 될수록 양상이 복잡하게 얽히는 것이었습니다.

K사장을 열 오르게 했던 전화는 한 이동통신 SMS 대행사로부터 걸려 왔다고 합니다. 모바일 콘텐츠를 서비스할 경우, 이동통신 가입자들이 무선 접속을 할 수 있도록 URL이 담긴 SMS를 보내게 됩니다. 사용자가 통화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동통신 회사가 각 SMS 대행사들에게 새로운 지침을 시달했고 이에 화들짝 놀란 대행사들은 자신들로부터 서비스를 받고 있는 컨텐츠 회사들을 상대로 그 사실을 알리는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행사에 빠졌더니, 대행사가 친절하게도 전화를 걸어 알려준 것이지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SMS로 URL을 보내려면 먼저 사용자들에게 서면 동의를 받아오라.’ “나는 XXX회사가 제공하는 무선 콘텐츠의 연결 정보가 담긴 SMS를 받겠다”는 동의서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해야 한다면 K사장은 무선 콘텐츠 사업을 위해 전국 곳곳에 가판대를 깔고 ‘서명 받기’ 영업을 해야 합니다. 상당한 마케팅 비용을 치러야만 합니다.

화가 난 K사장은 이동통신 회사 담당자에게 서면 동의가 왜 필요한지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그 회사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질 나쁜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부 사업자와 이들의 스팸성 SMS 때문에 가입자들의 불만이 높다. 따라서 품질개선과 관리 강화 차원에서 이런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모바일 사업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 것 싹 무시하고 그냥 SMS 보내면 고객들이 알아서 접속할텐데 뭐가 문제지요? 그리고 이동통신 회사가 시시콜콜한 통신 내역을 알게 뭡니까? 전화해서 잡지 정기 구독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뭘 그래요?”

여기서 저의 무식함이 드러났습니다. K사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그렇게도 할 수는 있지만 돈을 벌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자체적으로 서버를 가지고 각종 ‘꺼리(컨텐츠)’를 제공하게 됩니다. 이것을 통상적으로 ‘어플리케이션 서버(Application Server)’라고 부른답니다. 꺼리를 담아 놓고 있다가 모바일 사용자들이 접속해 오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다른 한 축으로 과금 서버(빌링 시스템)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이용료가 부과됩니다. 과금 서버는 이동통신 회사의 것이어서 ‘자선 사업’이 아니라면 이를 통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입니다. 이동통신 회사의 과금 서버를 거치지 않고 자체 빌링 시스템으로 장사를 할 수는 있으나, 적발되면 곧바로 망한다는 것이 그동안 이 동네의 철칙이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동통신 회사라는 ‘빅 브라더’에 종속되지 않는 이상, 사업을 할 건덕지가 없다는 게 K사장의 주장입니다. 요즘은 상황이 좀 달라져서 어떤 이동통신사는 망을 개방해 빌링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갖추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하지만, 또 다른 이동통신사는 거꾸로 배짱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어플리케이션 서버까지 우리에게 일원화 하라’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으니까 직접 관리해야 겠다는 의지 표명이지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제가 또 딴죽을 걸었습니다. 남의 사업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무식해서 죄송합니다.

“아니, 휴대전화도 엄연히 통신인데, 전화로 고객 상담해서 잡지를 팔든, 사주풀이를 해주고 돈을 받든, 통신회사가 왜 신경을 쓰지요? 남이야 장사를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요? 그 쪽 입장에선 통화료 수입 늘어나서 좋은 것 아닙니까? 자기들이 무슨 빅 브라더라고 통화까지 감시하겠다는 거지요?”

이런 용감무쌍함에 K사장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면서 더욱 무서운 것은 이동통신 서비스를 하는 모기업보다 그 산하의 ‘관문 회사’라고 합니다. 일부 이동통신 회사의 경우 모바일 콘텐츠 사업을 별도의 자회사에 맡겨 놓고 있는데 여기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것이지요. 모기업 임원들마저 이 자회사에 끌려다니는 형국이랍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콘텐츠 공급업체로 등록되는 것이 북극성을 따오는 것보다 어렵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계약을 맺더라도 공급업체에는 쥐꼬리만한 이익을 보장합니다. 콘텐츠 판매에서 생기는 수익 가운데 압도적인 부분을 이 ‘관문 회사’가 챙겨 갑니다.

불만이라도 제기하려 하면 ‘싫으면 말고’ 입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할 수 밖에요. 대단한 뒷배경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 정도는 약과 입니다. 될만한 사업 같으면 등록을 해주지 않고 자기들이 직접 합니다. 기술개발이야 아웃소싱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허요?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피해가는 거 도사들인데. 소송 걸어봐야 피곤하기만 해요. 2년, 3년 끌다가 내 몸만 망가지지요. 역시 '빨랫줄' 장사가 최고지요. 허가 받은 강도들한테는 약도 없어요. 한 번 찍히면 이 업계를 떠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니까요.”

모든 이동통신 회사들이 이처럼 '조폭적 사업관행'을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점잖은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부 몰지각한 직원들로 인한 폐해’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갈 것입니다. 고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비즈니스라는 놈은 그 속성상 어떻게든 이런 낡은 관행을 뜯어고쳐 발전을 담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바일 콘텐츠 기업들의 ‘매달려 있기’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closest@bizhig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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