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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규] 적과의 동거…제휴의 미덕


 

제휴의 시대다. 기업들의 제휴 소식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요 뉴스로 전

해진다. 온라인업체와 오프라인 업체간, 이종 업체간, 동종 업체간에 온

갖 형태의 제휴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업무 협조라는 아주 초보적인 단계

에서부터, 기술, 자본, 경영, 영업에 이르기 까지 기업활동과 관련된 거

의 모든 분야에서 공생을 위한 기업들의 짝짓기가 활발하다.

지난 한달간 inew24에 올라온 제휴 관련 기사만 해도 40여건에 이른다.

올해 초부터 기사 제목으로만 검색한 국내외 정보통신 관련 기업들의 제휴

관련 뉴스는 502건이다. 하루 평균 2건 이상의 제휴가 이뤄진 셈이다. 세

계적인 컨설팅 업체인 부즈 알랜 앤 해밀턴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기업간 제휴는 연간 25% 정도 늘어나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에서

는 그 이상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경쟁 업체간 제휴 소식이다. 보통

제휴라고 하면 분업과 협업 체제의 틀 속에서 상호 보완적인 것이 많다.

먹느냐 먹히느냐는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는 동일 업종 간에는 제휴 보다

는 인수 합병이 보다 일반적인 방식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동일 품목의 동

종 업체간 제휴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21일 공식 발표한 일본 NEC와 마쓰시타 그룹간의 제휴도 그 대표적인 사례

다. NEC와 마쓰시타전기공업과 마쓰시타통신공업은 차세대 휴대전화 부문

에서 전략적 제휴를 발표했다. 차세대 휴대전화와 관련 기술의 공동 개발

은 물론 차세대 휴대전화 생산까지 공유하기로 했다. 서로 생산한 제품을

상대측에 OEM으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브랜드를 달리하고 영업망만 서로

독자적으로 유지할 뿐 사실 제품 개발에서 생산 까지는 '한 회사'나 마찬

가지다.

일본 휴대전화 시장에서 1, 2위를 달리고 있는 두 회사의 제휴는 세계 휴

대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노키아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

고 있다. 노키아의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을 '공동'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물론 여기에는 소니와 도시바 등이 외국의 내로라 하는 휴대전

화 업체와 손을 잡은 것도 기폭제가 됐을 법 하다. 소니는 에릭슨, 도시바

는 지멘스 등과 제휴 관계를 맺고 차세대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

다.

프랑스 르노 자동차와 일본 니산 자동차의 제휴는 성공적인 제휴 사례로 꼽

힌다. 1999년 르노와 니산이 제휴를 발표할 때만 해도 그것이 성공적일 것

이라고 본 사람들은 얼만 안 된다. 2조5천억엔이 넘는 부채에 허덕이던 니

산과 세계 시장 진출에서 벽에 부닥쳐 있던 르노의 제휴는 자칫 르노의 동

반 부실까지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니산이 5천억엔에 이르는 르노 자금 지원으로 숨통을 틔울 수 있었

고, 르노는 니산의 판매망을 통해 일본 등 아시아와 미국 시장 진출의 길

을 열 수 있었다. 르노와 니산은 영업망 공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차

의 차체와 엔진, 기어박스를 공동 개발, 공동 생산하는 2단계 제휴단계에

들어가 있다.

과잉 생산을 줄이기 위해 공장 폐쇄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병행된 결과

이기는 하지만 니산은 지난해 영업이익에서 흑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순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르노 또한 아시아와 미국 시

장에서의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르노와 니산은 이 같은 제휴

성과를 바탕으로 프랑스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르노 지분 44%가 매각되는

대로 궁극적으로는 '합병'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경쟁 관계를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제휴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냅스터

의 도전에 직면한 세계 음반업체들의 제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동의

적' 냅스터를 물리치기 위해 미국음반산업협회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소송

을 제기하는 한편 '냅스터 이후'의 온라인 음악 시장을 겨냥해 서로 짝짓

기에 분주하다.

AOL타임워너, 베텔스만, EMI 등 3개사는 리얼네트웍스와 함께 유료 인터

넷 음악 서비스를 위한 벤처 회사 뮤직넷을 설립했으며, 유니버설과 소니

는 듀엣(Duet)이라는 다른 온라인 음악 다운로드 회사를 차렸다.

세계적인 영화사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소니 픽처

스, 워너 브라더스, 파라마운트 픽처스, MGM 스튜디오 등 세계 5대 영화

사들은 합작으로 온라인 영화 공급 업체를 설립하기로 했다. 20%씩 자본금

을 출자해 설립하는 이 회사는 이들 영화사들의 영화를 온라인으로 직접 일

반인들에게 공급하게 된다.

제휴는 인수 합병과는 달리 기업 조직 통합을 통한 당장의 경비 절감 효과

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는 경쟁사들이 또 서로 다른

기업 문화와 경영 풍토 속에서 생산적인 제휴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기도 쉽

지 않다.

하지만 기존의 조직을 유지하면서도 기술개발 및 서비스 통합, 생산 시설

과 규모의 통합적 운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무

엇보다도 격변하는 세계 시장 동향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막대한

기술 개발 및 생산 설비 구축에 따른 위험 부담을 덜 수 있어 기업 인수 합

병에 따른 ‘통합 비용’을 지불하기 보다는 간편한 제휴 관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대자동차가 기아차를 인수 합병하고도 기아차의 조직과 브랜드를 계속 유

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제휴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자본 관계에서나 제품 개발, 생산 라인은 한 회사나 마찬가지로 통합적으

로 운영하면서도 브랜드 다양화를 통해 폭 넓은 수요 층을 창출할 수 있

고, 경쟁적인 영업망 등을 통해 기업 조직 운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

는 이점을 살리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르노와 니산의 제휴를 성공적으로 이끈 갈로스 고슨 니산 사장은 최근 언론

과의 인터뷰에서 제휴의 성패를 좌우하는 주요 요인으로 ‘신뢰’를 들었

다. 제휴의 시작과 끝은 상대에 대한 ‘신뢰’이며, 분명한 목표 설정, 그

리고 상호 신뢰를 유지시킬 수 있는 ‘외교적 리더십’에 따라 제휴의 성패

가 갈린다고 충고한다.

그만 그만한 규모의 업체들이 난립해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 경쟁을 일삼고

있는 온라인 업체들이나 세계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기업들도

‘공생의 철학’에 기반한 제휴의 미덕을 한번쯤 되새겨 볼 일이다. ‘제

휴의 노하우’ 자체가 이제는 기업 생존의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백병규 미디어오늘 전 편집국장, inews24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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