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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규] 전자종이의 출현과 종이의 미래


 

만약 컴퓨터 모니터나 액정디스플레이가 종이처럼 얇아진다면 어떤 일이 일

어날까? 얇기만 할 뿐 아니라 종이처럼 둘둘 말수도 있고 접을 수도 있다

고 한다면…. 게다가 얇은 플라스틱 종이판 한 장으로 많은 페이지의 신문

과 잡지, 책을 모두 볼 수 있다면….

신문이나 잡지는 매번 배달 받을 필요 없이 인터넷으로 바로 다운받아 ‘종

이신문’이나 ‘종이잡지’와 같은 크기로, 더 선명하게 읽을 수 있다

면…. 더욱 신문 주식면에 나오는 주가는 실시간으로 바뀐 주가를 알려주

고, 야구 기사 사진을 손가락으로 짚거나 하면 당시 하이라이트 장면을 비

디오처럼 신문지면에서 보여준다면….

가장 먼저 제지 업체들과 인쇄 업체들의 주가가 폭락할 것이다. 종이 같

은 디스플레이가 종이를 대신하게 되면 제지업체는 말할 나위 없이 종이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인쇄 일도 크게 줄어들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컴퓨터 모니터나 액정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주가 또한 동반 하락할

소지가 크다. 어디에서나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종이 같은 모니터’

가 있다면 굳이 무겁고 전력 소비도 많은 구덕다리 디스플레이를 사용할 까

닭이 없기 때문이다.

인쇄, 출판 분야에서 일대 변화가 예상되지만 무엇보다 신문업계에 미치

는 파장이 클 것이다. 우선 신문 인쇄, 판매, 보급체계가 완전히 달라지

게 된다. 인터넷을 통해 구독자들이 ‘종이 같은 디스플레이’로 불편함

이 없이 신문을 받아볼 수 있다면 굳이 ‘종이신문’을 고집할 이유가 없

다. 신문사로서도 독자들의 큰 저항만 없다면 막대한 종이 값, 인쇄비용

을 줄일 수 있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먼 훗날의 일만도 아니다. 불과 4~5년이면 실

현될 수 있는, 이미 가시권에 들어와있는 아주 가까운 앞날의 일이다. 전

자 종이(electronic paper), 혹은 전자 잉크(electronic ink)라고 하

는 새로운 전자매체가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가장 유용하

고 편리한 기록매체 자리를 지켜왔던 종이를 위협하고 있다.

전자종이 개발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제록스 같은 회사가 1970년대 부

터 꾸준히 연구를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현실적인 가능성이 확인된 것

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E-잉크(E-ink)와 기리콘 미디어(Gyricon

Media)라는 미국 회사가 선도하고 있으며, 일본 미놀타가 그 대열에 합류

하고 있다.

이들 전자종이 업체들은 생소한 업체들이지만 내로라 하는 세계적인 기업

과 연구소들이 그 배후에 포진하고 있어 전자종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확

인할 수 있다.

E-잉크는 1997년 미 매사추세트공과대학(MIT) 미디어랩에서 개발한 전자

종이기술을 상용화를 목표로 설립된 벤처회사. 지난해 루슨트가 수백만 달

러를 투자한 데 이어 벨연구소와 IBM, 모토롤러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 재벌인 허스트그룹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기리콘 미디어는 1975년 부터 전자 종이 개발에 착수했던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PARC) 전자종이 개발팀이 지난해 분사한 것. 제록스와는 3M이

1999년부터 손을 잡고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다.

현재 이들 업체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얇고, 가벼워 휴대하기 편해야 하

며, 구부러지거나 접을 수 있고, 야외와 같은 밝은 곳에서도 읽을 수 있어

야 하며, 값이 싼, 진짜 종이 같은 것이다. 현재 E-잉크와 기리콘 미디어

가 내놓고 있는 제품들은 물질적 특성에선 아직 종이와 똑 같지는 않다.

그러나 종이에 근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전문

가들의 분석이다. 컴퓨터나 인터넷과 연계한 부가기능을 생각한다면 이들

‘전자종이’가 기존 종이를 대신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다

소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E-잉크가 개발한 전자종이는 1999년 임미디어(Immedia)라는 제품으로 첫

선을 보였다. 두개의 얇은 판 사이에 있는, 전자극의 방향에 따라 색깔이

흑과 백으로 달라지는 쌍안성 캡슐(雙安性:minuscule switchable

capsule)로 활자나 그림을 디스플레이하는 이 임미디어는 본체 두께는

2mm 안팎으로 안전판으로 뒷면에 부착한 스폰지를 포함해 총 두께가 5mm

를 넘지 않는다.

임미디어는 일반적인 디스플레이 소프트웨어로 디스플레이할 수 있으며,

해상도도 일반 모니터 수준인 200dpi에서 레이저 인쇄 상태인 600dpi까

지 실현할 수 있으며, 햇빛 아래에서도 선명도를 유지해 밝은 곳에서도 읽

거나 보기에 편하다. 또 컬러 지원도 가능하다.

임미디어는 J.C.페니 할인마트와 약국 체인점 등에서 상품 홍보 및 가격

표시용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신문사인 아리조나 리퍼블릭은 편의점에

온라인 전자신문 용으로 진열하고 있기도 하다.

기리콘 미디어가 개발한 전자종이인 스마트페이퍼(SmartPaper)는 미크론

단위의 2색 구슬을 이용한 것으로 역시 전자적 자극으로 화면 디스플레이

를 실현시키는 방식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이색구슬 또한 미크론 단위로

11x14인치 크기의 사인 보드가 체인점인 매시의 아동용품 매장등에서 선보

이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미놀타가 두께 1mm의 얇은 컬러 전자종이를 개발, 선두 다

툼에 끼어 들었다. 메모리 장치를 붙일 경우 100 페이지까지 정지화상을

읽어 들일 수 있는 이 전자종이는 2048x1440 화소의 해상도를 실현, 일

반 PC용 디스플레이 보다 선명하다.

이 같은 전자종이의 개발이 진전된다면 앞으로는 아주 얇은 플라스틱 판과

도 같은 전자 종이 한 장만 들고 다니면 메모리 장치에 들어있는 신문이

나, 잡지, 책들을 내키는 대로 꺼내 읽어볼 수 있게 된다.

혹은 신문이나 잡지, 책과 동일한 크기와 두께로 제작된 전자종이로 만들

어진 하나의 전자신문, 전자잡지, 전자책을 통해 신문과 잡지, 혹은 수많

은 책들을 계속 받아볼 수 있는 날도 머지 않았다는 게 전자종이 개발자들

의 전망이다.

당장 내년이면 개인 휴대용 전자종이가 선보이고, 2005년 경에는 무선으

로 데이터를 송신 할 수 있는 ‘무선 종이’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한

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지금 보다 기술이 향

상되고, 해상도가 높아진다고 해도 종이 인쇄물 정도의 가독성과 경제성

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종이에 익숙해진 관습과 태도

도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자종이가 종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종이와 닮은

꼴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점이 종이쪽에서 보자면 가장 큰 위협인 듯 하

다. 어디까지나 대체가 아닌, 보완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만큼 문화적

거부감도 비교적 적을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전자종이의 실용화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종이문화와 인쇄문화는 결국 20세

기 초 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현장 기록 매체였던 회화(繪畵)가 그 자리를

사진에게 내주었던 것과 같은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겠다.

/백병규 미디어오늘 전 편집국장, inews24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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