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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북] 로렌스 레식의 '자유문화'


 

2002년 뉴욕에 있는 기술대학 RPI 재학중이던 제시 조던. 당시 그는 자신이 만든 RPI 네트워크용 검색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가 만든 검색 엔진은 사진은 물론 강의노트, 연구논문, 영화, 대학 안내 책자 등을 검색할 수 있었다. 조던은다른 사람이 만든 검색 엔진을 일부 수정해 학교 내 인트라넷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검색할 수 있는 엔진을 선보인 것이다. 물론 이 검색엔진은 음악도 검색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조던은 학과장을 통해 미국음반산업협회(RIAA)가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됐다. 그로부터 얼마뒤, 조던은 진짜 소장을 받아들었다. RIAA는 조던이 네트워크를 운영하면서 고의적으로 100건이 넘는 저작권 위반 행위를 저질렀다며 1천500만달러의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조던은 RIAA의 주장에 대해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일축한 뒤 맞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조던은 고민끝에 삼촌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돈 1만2천달러를 RIAA에 고스란히 넘겨주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로렌스 레식의 '자유문화'는 이처럼 저작권 보호란 미명 하에서 어떤 폭력과 협박이 행해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기득권자들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저작권이란 서슬 푸른 칼날을 무기로 무차별 공세를 가하고 있다. "저작권자의 권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받아서는 안된다"는 명제는 그 어떤 반론도 단숨에 찍어 누를 수 있는 '전가의 보도'로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던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의 공세는 '너무 하다'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최근 국제음반산업연맹(IFPI)은 지난 4월 이후 총 2천100건 이상의 P2P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IFPI가 타깃으로 한 것은 조던과 같은 개인 사용자들이다. 이들이 "저작권자의 권리는~"이라는 말로 가하는 공세를 가할 경우엔 그 어떤 변명도 용납되지 않는다. 자본의 힘 앞에 무참하게 굴복하는 수밖에 없다.

과연 "저작권자의 권리는 어떤 경우에도 침해받아서는 안된다"란 문구는 저작권의 본질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 로렌식 레식은 '자유문화'에서 이같은 시각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나아가 레식은 최근의 저작권 강화 움직임은 거대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으며, 저작권이 원래 갖고 있던 가치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과격한(?) 논리를 서슴없이 부르짖고 있다.설득력 확보를 과거 역사와 법적인 해석도 풍부하게 담았다.

레식에 따르면 저작권은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동기를 부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적 저작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접근성을 보장해야 하는 것간 균형이 핵심 가치다.

이 때문에 저작권의 개념은 "모든 권리는 소유돼 있다"가 아니라 "일부 권리가 소유돼 있다"란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게 그의 입장이다. 이래야 저작자의 창조성과 사용자의 자유간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20세기초까지만 해도 저작권에 대한 이같은 철학은 크게 훼손되지 않고 유지돼왔다.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균형의 정신은 존중됐고, 이같은 환경은 디즈니와 폭스 등 헐리우드 미디어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돼 주었다고 레식은 강조한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저작권 환경은 자유는 줄어들고 통제는 강화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어느새 공룡 기업으로 우뚝 선 헐리우드 미디어 업체들은 저작권에 재산권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법률과 기술은 이를 측면에서 지원했다. 시장과 법률 그리고 기술이 한데 어울리면서 자유와 통제간 균형을 단숨에 붕괴시켰다는게 레식 교수의 주장이다. 과거의 자유를 지금 누리려면 범죄자로 몰릴 각오를 해야만 한다.

레식은 특히 소수 업체들 중심으로 짜여진 미디어 업계의 집중 현상이 저작권 개념을 왜곡시킬수 있음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컨버전스란 이름으로 미디어간 영역 파괴가 벌어지고 있는 국내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은 대목이다.

레식은 자유문화를 통해 자신은 저작권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불법복제로 돈을 버는 것에 철퇴를 가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그가 문제 삼고 나선 것은 사용자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것들인데, 디지털이 등장한 이후 저작권에 대한 사용자들의 자유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자유는 창자자들의 권리와 함께 저작권법을 떠받치는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자유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저자의 문제 제기는 계속된다.

레식은 현행 저작권법대로라면 디즈니와 폭스의 역사는 해적행위에 다름아니었고, 그랬던 폭스가 이제는 자신이 소유한 만화 프로그램을 교육적인 목적으로 단 4.5만 사용하겠다는 다큐멘터리 제작자에게 1만달러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특히 레식은 P2P가 음반 산업을 죽였다는 음반 업계의 주장도 부정하고 있는데, 음반 업체들이 P2P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수치를 논리적인 근거로 뒤집는 대목에선 전율마져 느껴진다.

레식은 자유문화를 통해 저작권에 대한 문제제기에만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의 대안도 내놓고 있다. 창작자의 권리와 사용자 자유간 균형 회복이 핵심이다.

그는 디지털이란 존재가 창작자에게 미칠 수 있는 피해를 인정하지만 지금처럼 저작권 보유 기간이 사실상 영원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저작권 유효 기간을 설정해놓고, 기간이 끝나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퍼블릭 도메인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작권 신고제 도입도 거론하고 있다.

자유문화는 현학적이지 않다. 저작권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풍부한 사례들과 법 개념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다.

물론, 레식의 논리가 저작권을 둘러싼 각종 문제를 풀 수 있는 만능열쇠는 아닐 것이다. 반론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로렌스 레식은 자유문화를 통해 저작권의 본질과 각종 이슈들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각종 저작권 이슈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이유다.

(로렌스 레식 지음/이주명 옮김, 필맥 1만6천원)

황치규기자 deligh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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