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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여행]<37> 요양시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징검다리


시골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어머니는 하루에도 수십 번이 넘게 전화를 걸어 왔다. 새벽 전화를 받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간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장남인 K씨는 지난 몇 년간 휴일도, 휴가도 없이 고향과 병원을 오갔지만 더는 버티기 힘들어 '가기 싫다'는 요양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게 됐다. 그리고는 발길을 끊었다. 면회를 갈 때마다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애원하시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요양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죽으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실제로 요양시설에 한 번 입소하면, 건강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너무 일찍 입소한 경우 요양원에서만 10년 째 살아가는 노인들도 종종 봤다. 요양시설은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장소이며 이 곳에서의 생활은 '선택'이 없는 수동적인 삶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시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

지난 8월 중순, 일본 후쿠이현 에치젠시(越前市)소재의 홋토리하비리시스템즈사가 운영하는 요양시설들을 방문했다. 이 회사는 유료노인홈, 데이케어센터, 쇼트스테이, 방문요양, 소규모다기능그룹홈 등 매우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정도에 따라 방문요양서비스와 데이케어센터를 이용하다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면 단기입소, 도저히 혼자서 생활할 수 없게 되면 유료노인홈으로 입소하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다. 이 곳에서는 시설 입소가 끝이 아니라 다시 건강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순환구조를 만들었다.

노인들의 건강은 금방 돌아가실 것 같다가 다시 회복되기도 하며, 집안에서 돌보는 가족들도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설과 재가서비스가 서로 연계해서 노인과 가족을 지지하는 것이다. 즉, 시설은 집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정거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이루는 데 핵심적인 것이 바로 '재활과 운동'이다. 후쿠이현 에치젠시는 인구 8만여 명의 소도시이다. 반도체 부품회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비교적 일자리가 풍부하고 인구도 젊은 편이다. 일본의 요양서비스회사들은 최근 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워가는 추세인데, 홋토리하비리시스템즈 역시 후쿠이현 전체에 6개의 시설과 3천 명이 넘는 노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견기업이다. 에치젠시에 자리한 본사만 해도 전체 2500여 평 대지에 4동의 건물이 복합단지를 이루고 있다.

일본 후쿠이현 에치젠시에 위치한 홋토리바히리시스템즈사는 재활과 운동을 통해 노인들이 시설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경로를 만들고 있다. 사진은 해당 회사가 운영하는 센터 전경. [사진=조인케어 제공]
일본 후쿠이현 에치젠시에 위치한 홋토리바히리시스템즈사는 재활과 운동을 통해 노인들이 시설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경로를 만들고 있다. 사진은 해당 회사가 운영하는 센터 전경. [사진=조인케어 제공]

먼저 낮 동안 이용자들이 찾아오는 데이케어센터로 갔다. 노인시설이 아니라 피트니스센터에온 듯한 느낌이었다. 1층에서는 노인들의 신체기능상태에 따라 그룹으로 나뉘어 가벼운 게임을 하거나 운동을 하고 있었다. 2층은 보다 전문적인 재활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플로어에는 요가용 매트와 기구가 마련돼 있으며, 이용자들은 개별적으로 또는 그룹으로 전문재활운동을 하고 있었다. 발레봉을 붙잡고 고관절운동을 하거나 빨간줄(레드코드)이라 불리는 2줄의 로프를 붙잡고 몸의 자세를 교정하고 유연성 운동을 하고 있다. 넓은 창으로는 노랗게 벼가 익어가는 들판이 내다보이고 따뜻한 햇살이 굽은 등에 내려앉으면 '아직이다, 두 다리로 걸어 보자'고 다들 힘을 낸다.

이 곳에서의 재활운동은 엄격한 증거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두 다리로 걷는 것이 목표라면 이를 위해 필요한 기능들을 정확하게 사정한다. 밸런스, 파워, 지구력, 보행스피드, 악력, TUG 테스트를 거쳐 정확하게 필요한 운동량과 종류를 추출해 내며, 운동에 따라서 변화하는 정도를 관찰하여 운동의 강도를 업그레이드해 가는 식이다.

일본 후쿠이현 에치젠시에  위치한 한 요양시설에서 요양서비스가 필요한 중증노인들이 기능회복을 위한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일본 후쿠이현 에치젠시에 위치한 한 요양시설에서 요양서비스가 필요한 중증노인들이 기능회복을 위한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재미있는 것은 매일 이용하는 한국의 주간보호센터와는 달리 일본의 데이케어센터는 1주일에 1~2번만 이용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아침에 도착해서 저녁까지 정해진 일과에 따라 이용하는 한국과 달리 각자 오는 날짜와 활동이 다르다. 운동만 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어서 송영차가 항상 현관에 대기하고 있다.

옆 건물에 위치한 쇼트스테이를 방문했다. 한국에서도 '단기보호'라는 이름으로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가족이 여행이나 질병으로 노인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 1주일~1달 단기간 입소해서 서비스를 받는 유형이다. 이 곳 역시 재활과 운동이 중심이 되고 있다.

데이케어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비해 신체 기능이 더 많이 떨어지지만 자리에 누워있는 사람은 없다. 휠체어에 앉은 상태에서도 봉을 가지고 상체 운동을 하거나 식탁을 붙잡고 일어섰다 앉는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마침 점심식사시간이어서, 직원들이 배식을 하는 동안 이용자들은 크게 입을 벌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소화를 돕기 위해 침샘을 자극하는 구강운동을 하는 것이다.

일본 후쿠이현 에치젠시에  위치한 한 요양시설의 '데이케어 센터'에서 노인들이 휠체어에 앉아서도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일본 후쿠이현 에치젠시에 위치한 한 요양시설의 '데이케어 센터'에서 노인들이 휠체어에 앉아서도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쇼트스테이는 가족의 형편에 따라 단기간 사용하기 때문에 시설운영자 입장에서는 경영이 쉽지 않다. 고정적인 이용자가 없기 때문에 비어있는 방이 많아 늘 적자인데, 이 곳은 늘 만실이다. 2주일 동안 이 곳에 머무르고 있는 P씨는 에치젠시에 인접한 오노시에서 왔다. P씨는 원래 딸네 식구와 사는데 유학 중인 손주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딸네 식구가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이 곳에서 지내는 것이다.

휠체어생활을 하는 그는 이 곳에서 혼자서 걷는 것을 목표로 운동프로그램을 짜고 훈련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이용자는 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 곳에서 당분간 지내고 있다. 혼자 생활하는 그가 바로 퇴원하면 십중팔구 재입원하게 된다. 그래서 이 곳에서 회복을 하면서 보행훈련, 식사 준비와 간단한 자립생활훈련을 하는 것이다.

홋토리하비리시스템즈의 대표인 마츠이 카츠오 씨는 "한번 시설에 입소했다고 해서 계속 그 곳에서 지낼 필요는 없다. 시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가정에서 생활하는 노인에게 요양보호사를 파견하는 방문요양, 낮 동안 이용하는 데이케어, 단기간 입소하는 쇼트스테이, 임종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소규모다기능그룹홈에 이르기까지 한 자리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종합대응체제'를 갖춘 것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노인들의 상태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한편 사업자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요양시설에 입소하게 되면 죽을 때 까지 그 곳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걷지 못하게 되면 쉽게 와상상태가 된다. 쇠약해지고 기능이 퇴화되는 순간 스스로 하도록 도와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서비스가 투입된다. 병원에서 치료를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 버린다.

일본 후쿠이현 에치젠시에  위치한 한 요양시설의 '데이케어 센터'에서 노인들이 혼자서 걷는 것을 목표로 운동프로그램을 짜고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일본 후쿠이현 에치젠시에 위치한 한 요양시설의 '데이케어 센터'에서 노인들이 혼자서 걷는 것을 목표로 운동프로그램을 짜고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아무래도, 서비스가 분절돼 있고 서비스제공자들은 한 가지 서비스만을 제공하다 보니 기능은 계속 퇴화되고 궁극적으로 시설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흐름이 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통합재가서비스'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자신이 살던 집에서 나이 들기 위해서는 방문요양뿐 아니라 간호와 의료가 함께 제공되어야 하며 집 수리, 병원동행, 목욕 등 다양한 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계속 그 방향이 강조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3차례의 통합재가시범사업을 통해 지금까지의 재가요양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 명의 요양보호사가 매일 3~4시간씩 방문하는 것이 이용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오히려 저녁이나 밤에 응급상황이 일어날 수 있지만 정작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따라서 방문간호와 방문요양을 통합하고 하루에도 시간을 쪼개서 몇 차례 방문하는 다회방문서비스를 시범사업으로 실시했다.

통합재가를 둘러싼 수 많은 세미나와 정책브레인스토밍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큰 효과는 없는듯 하다. 재가서비스가 있음에도 결국 요양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셔야만 했던 K씨의 사례처럼 아직까지 한국의 장기요양서비스는 이용자 입장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사 한 대도 처방 없이 할 수 없는 간호의 한계 '일주일 내내 주간보호 일주일 내내 방문요양' 식으로 분절화된 서비스, 한 가지 서비스만 제공하기에도 벅찬 서비스제공자들의 영세성, 가사지원 및 말벗 등 비전문적이고 덜 긴급한 업무가 주를 이루는 방문요양, 돌봄에 대한 협소한 이해 등이 장애가 되고 있다.

방문목욕, 방문간호, 방문요양의 통합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료와 돌봄의 통합은 더 큰 숙제이다. 하지만 돌봄이 더 많은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되는 상황에서, 이용자 중심의 돌봄과 의료제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책의 리더십, 현장의 궁리, 종사자들의 인간중심철학이 시급하다.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대우교수는 30대에 초고령국가 일본에서 처음 노인문제를 접한 뒤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 두고 노인문제전문가로 나섰다.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을 썼으며 연령주의, 치매케어등을 연구하고 있다. 치매에 걸려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요양 현장을 만들기 위해 '사람중심케어실천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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