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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여행]<36>치매환자 700만명, 일본 요양시설에 없는 3가지


한국의 치매환자 숫자는 100만명, 고령화율 30%인 초고령사회인 일본 치매 인구에 비해 아직 여유로운 수준이다. 일본의 치매인구는 7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노인인구 3600만명 가운데 거의 20%를 차지한다. 치매인구의 증가는 의료 및 돌봄서비스 증가뿐 아니라 고용, 교통, 사회보장제도 등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다.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인지증기본법'을 제정하며 적극적 대응을 선언했다. 치매환자를 단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극적으로 포용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한국은 지난 2013년 '치매관리법'을 제정해 치매예방과 조기발견에 힘을 쏟고 있지만, 치매를 '극복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일본과 결이 다르다. 이에 필자는 지난 8월 치매에 관한 한 한국과 '디커플링'하고 있는일본의 정책과 현장을 취재했다. 초고령사회 일본의 시름을 함께 살펴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 기업, 민간의 노력을 시리즈로 소개하고자 한다.

치매라는 말에는 '정신질환, 노망, 미친'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포함돼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지난 2005년 치매를 인지증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인지증환자라는 말 역시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담기에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인지증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당사자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인지증을 가진 사람을 정상인과 구분하고 이들을 일상생활에서 배제하거나 복지와 의료서비스 대상자로만 여기는 관점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담고 있다.

달라진 명명은 인지증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자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단순 인권만을 이야기하기에는 일본 사정이 녹록치 않다. 700만명이라는 치매 인구는 일본의 초등학령(6~12세)인구에 맞먹는 숫자이다. 이 숫자는 병원에서 정식으로 진단 받는 사람들의 숫자이며 진단을 받지 않은 숨어 있는 인지증 환자의 숫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주변에서 행동이나 말이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인지증'일 가능성이 높다. 어눌하고 실수도 많지만 이들은 여전히 혼자서 생활하며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때로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아가 자신의 질병과 어려움, 사회에서 만나는 장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일반인이 갖고 있는 치매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시각을 없애기 위해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 교토시 당사자대사(인지증환자)인 스즈키 키미에씨(가운데)가 인지증카페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일본 교토시 당사자대사(인지증환자)인 스즈키 키미에씨(가운데)가 인지증카페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8월 중순 교토시 이와쿠라지역에 있는 인지증 카페에서 만난 스즈키 키미에(83)씨 역시 교토시가 정한 '당사자대사'이다. 각 지역자치체에서 정한 당사자대사들은 스스로 인지증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역정부, 기업에게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발언한다. 교토시에는 현재 6명의 인지증대사가 활동하고 있다.

인지증카페는 인지증 사람들과 가족, 주민들이 친목활동을 하는 곳이다. 8월의 폭염이 여전한 토요일 오후, 필자는 이와쿠라 지역포괄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인지증카페 '니코니코'를 찾았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카페에서 참석자들은 안부를 묻고 밭에서 기른 작물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직원들은 간식을 준비하면서 모임을 돕고 있었다. 스즈키씨는 귀여운 빵모자를 쓰고 하늘색 긴 에이플린을 곱게 차려 입은 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자원봉사를 하러오셨냐?"고 말을 건넸더니 그녀는 수줍게 웃기만 했다.

행사 진행자는 "우리, 오랜 만에 만났으니 목이 쉬도록 수다를 떨어봅시다"라며 흥을 돋운다. 여흥을 더하기 위해 각설이 복장을 한 할머니가 덩실덩실 멋진 춤사위를 보여준다. 공연이 끝나자, 지팡이를 찾으며 "어제까지 다리가 아파서 어떻게 춤을 출지 걱정했는데, 막상 앞에 나오니 몸이 저절로 움직이네"하며 웃는다. 함께 춤을 춘 파트너는 "공연 전에는 많이 떨렸는데, 안경을 안 끼고 와서 눈에 뵈는 게 없으니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며 거든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되니 조용히 앉아 있던 한 여성이 앞으로 나간다. 같은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말이 어눌해 인지증인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는 피아노 건반 앞에 앉더니, 노래 반주를 시작했다. 사람들의 신청곡을 악보 없이 척척 연주한다. 음악선생님이었다던 그녀는 사물의 이름과 최근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지만 몸으로 익힌 것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일본 교토시 이와쿠라지역포괄지원센터의 '인지증카페'에서 인지증환자인 홋토리씨(오른쪽)가 음악 반주를 하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일본 교토시 이와쿠라지역포괄지원센터의 '인지증카페'에서 인지증환자인 홋토리씨(오른쪽)가 음악 반주를 하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치매라는 말이 없다. 치매라는 말이 없는 것처럼 '배회'라는 말도 없다. 배회는 목적 없이 돌아다닌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치매인 사람을 '환자'로 보는 시점에서의 명명이다. 치매인 사람이 하는 행동이니까 문제행동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목적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가진 행동임에 분명하다.

날씨가 좋아서 산책을 하려고 하거나, 물건을 사기 위해서 집을 나섰는데 단기기억저하로 왜 자신이 집을 나섰는지 잊어버렸을 뿐이다. 그래서 이들의 행동을 문제행동이라고 보고 억제하기보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 사람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한가지 일본의 요양시설에 없는 것이 '프로그램'이다.

한국의 주간보호센터, 요양원에서는 프로그램이 중요하다.종이오리기, 색칠하기, 체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들의 인지기능 향상과 레크리에이션을 돕는다. 정부의 평가에서도 프로그램이 중요한 요소가 돼 요양시설은 프로그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노래 부르기 싫은 치매노인도 강사 지도에 따라 노래를 불러야 하고, 혼자서 가위질을 할 수 없는 노인들의 경우 요양보호사가 대신 가위질하고 풀칠을 한다. 프로그램 담당인 사회복지사가 이런 활동을 소홀히 하게 되면 직무소홀로 감산이 된다.

하지만, 일본의 주간보호센터나 요양시설에서는 더 이상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다. 교토부 우지시의 주간센터 '쿠리쿠마'를 운영하는 마루야마 마리코씨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정해진 것을 따라서 해야 하는 것이니까, 아무래도 금방 싫증이 날 수 밖에 없어요. 대신, 이 곳에서는 일상활동을 합니다. 점심을 만들어서 먹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각자 합니다"

시설이 정해놓은 규칙과 일과 대신 당사자들이 하루 일과를 정하고 직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이를 수행하는 식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6월 인지증기본법이 중의원을 통과했다. 정식 명칭은 '공생사회의 실현을 위한 인지증기본법'이다. 치매와 관련해 오렌지플랜(2012년), 신오렌지플랜(2015)등이 있었지만 개별 정책에 머물러 왔다.

치매환자 700만명인데 아직까지 관련 법안이 없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일본의 신중함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듯 하다. 사실, 관련 법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나왔지만 법률 이념을 정립하고 당사자들 목소리를 담기 위해 오랜 시간 뜸을 들였다. 결국 여야를 초월해 합의된 이 기본법은 일본의 현 상황에 가장 적합하며 인간존중의 이념이 녹아든 법률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교토부 오우시의 주간센터 '쿠리쿠마'에서 인지증인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일본 교토부 오우시의 주간센터 '쿠리쿠마'에서 인지증인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도쿄도내 이치가야구에 위치한 지역공생정책 자치체연계기구에서 만난 후생노동성 노건국 지역개호추진과 스즈키 요우스케 과장은 "기본법이 발효되고 내년까지 수립될 '시책추진기본계획'에는 의료, 복지, 교육, 연구, 사회참여, 권리옹호 등 각 분야별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취재여행서 만난 많은 전문가들이 기본법 이후에 달라질 것에 대해 큰 기대를 표명했다.

인지증기본법의 이념은 '사람중심사상'이다. 일본에서도 인지증에 대해 사회적 낙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편견이나 사회적 낙인을 없애는 것을 법안에 포함시켰다. 인지증 사람을 포함해 '모두가 각각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하고 서로 지지하면서 살아가는 사회(공생사회)를 지향한다'는 문구는 인권 선언과 다름 없다.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또 치매에 걸려서도 더 나빠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을 국민 책무로 언급하고 있다. '공생사회실현'을 위해서는 책임도 나누자는 취지이다. 이를 위해 국민 전체가 '인지증에 대해 올바른 지식과 이해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명기했다.

기업들의 배리어프리선언, 당사자들의 I-메시지(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돌봄을 받기 원하는지 선언하는 것)등이 국가의 전적인 책임, 당사자를 배제한 정책, 과거의 일방적인 돌봄 방식을 바꿔가는 것이다. 인지증기본법의 또 다른 중요 포인트는 '인지증을 가진 본인과 가족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배리어프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장애인지를 당사자들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당사자 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한국의 치매관리법에는 의료비 지원을 제외하고는 당사자와 관련된 조항을 찾아보기 힘들다. 치매에 대해서도 여전히 '치매에 걸리면 아무 것도 모른다' '본인은 천국, 가족은 지옥'식의 오해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도 치매인구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내 가족이 될 수 있고,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치매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이들이 인지적인 장애를 겪고 있지만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이들의 관점에서 필요한 일들에 대해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대우교수는 30대에 초고령국가 일본에서 처음 노인문제를 접한 뒤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 두고 노인문제전문가로 나섰다.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을 썼으며 연령주의, 치매케어등을 연구하고 있다. 치매에 걸려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요양 현장을 만들기 위해 '사람중심케어실천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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