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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선의 인터넷 김밥] 디지털 미디어가 아이를 수동화 하고 있다


 

"여보, 민주엄마가 많이 고민되는 모양이에요."

며칠 전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아내가 느닷없이 이웃 가정의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무슨 일이냐는 관심을 보이자, 아내는 안타까운 듯한 표정으로 어머님의 고민거리를 내게 들려주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식탁머리에서 아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민주 엄마와 아빠가 모두 일하느라 많이 바쁘시잖아요?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민주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공부에 대해선 손을 놓았었나 봐요. 그러던 그 녀석도 올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마음을 잡고는,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도와달라는 대로 가정교사도 붙여주고, 자신도 나름대로 몇 달 열심히 애를 쓰고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교사가 하는 말이 민주가 공부할 때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한다고 한대요. 가정교사가 설명할 때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대요. 민주도 고치려고 애를 쓰는데도, 굳어진 습관 같아서 안 된다고 한대요."

"왜 그런 습관이 생겼지?"

나는 아내의 말을 가로 막고 의아해서 한마디 던졌다. 아내가 그렇게 물을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을 이어간다.

"민주 어머니가 그 동안 대수롭지 않게 내버려 두었던 민주 생활습관을 말해주는데, 그럴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민주는 주로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기 방에서 채팅을 하거나 가벼운 게임을 하면서 한 두 시간 보낸다고 하네요, 그리고 저녁 먹고 나면 TV 앞에 앉아서 자기 전까지 본다고 해요. TV를 너무 많이 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부모가 챙겨줄 수 없는 상황에서 통제하기가 어려웠대요. 그리고 또 다른 습관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핸드폰을 놓지 않는대요. 밥 먹으면서도 틈틈이 문자를 날리고, TV나 컴퓨터를 하지 않는 때에는 항상 문자를 보내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대요. 한마디로 자기 스스로 어떤 행동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움직이는 경우가 없었던 거죠. 그러니 공부하겠다고 맘먹고 책상에 많아서도 집중이 안되나 봐요. 내내 넋을 놓고 생활을 해 왔으니… "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민주가 일종의 주의력결핍상태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느껴졌다. 습관을 고치는 것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어머니가 그러는데,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핸드폰 가지고 무엇인가를 하다가 지적 받은 경우도 많대요. 민주가 항상 무엇인가에 자신을 의지해야 안정감이 생기나 봐요. 민주네는 얼마 전 집에서 TV를 치웠다고 하네요. 민주가 생활습관을 바꾸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그렇게 했대요. 그래도 민주가 자기 생활습관이 문제 있는 것을 알고 고쳐보겠다고 하고요. TV는 몇 주째 안보기 시작 했는데, 차차 컴퓨터와 핸드폰까지 없애기로 했나 봐요. 아마도 공부는 그 다음에나 생각해야 될 것 같죠? 민주를 보면 아이가 핸드폰과 인터넷에 꽁꽁 묶여 있는 것 같아 안됐어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는 미디어가 사람을 수동적으로 바꾸어 놓은 현장을 목격한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다. TV와 컴퓨터와 핸드폰이라는 미디어가 적정한 통제가 없는 상황 속에서, 특히 아직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는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어떠한 영향력으로 발전하는지 그대로 말해주는 듯싶다.

어디 민주뿐이랴, 기성세대가 새로운 디지털 문화 운운하며 엄지 족과 디지털 노마드를 칭송할 때도 지극히 수동적인 삶에 길들여지는 청소년이 왜 없겠는가?

어른들 마저 디지털 미디어에서 자유롭지 못할 정도인데, 청소년은 오죽할까?

조만간, 디지털 매체 없이도 생활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새로운 능력으로 인정받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수동적 디지털 삶에 길들여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입증이 될 터이니 말이다.

/홍윤선 웹스테이지 대표 yshong@webstag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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