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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범의 쇼 매트릭스] 배급의 진화와 또 다른 싸움


 

몇 년 전만 해도 극장 매표구 앞에서 친절하게 매표를 도와주는 아저씨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서비스 참 좋네’ 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극장 관계자가 아니고 ‘입회인’들이었다.

표가 얼마나 팔리나, 극장이 돈 떼어 먹나 확인 작업하기 위해 영화사에서 내보낸 관계자들이다. 영화 유통 구조가 선진화되질 못하고 발매 전산화도 안돼 있던 시절에 흔히 보던 풍경이다.

90년대 초까지 영화 배급은 영화사가 서울, 부산 지역을 직접 관리하고 기타 지역은 6개 권역으로 나눠 지방 배급업자에게 단매로 넘기는 방식을 썼다.

단매란 일정 금액을 받고 상영권을 넘기는 것으로 제작비 펀딩이 지금보다 훨씬 어렵던 시절, 자금 확보를 위해 일반적으로 쓰던 판매 방식이다. 영화사가 지역 연고의 이권에 함부로 개입하기도 힘들고 또 전국을 대상으로 스크린을 확보하거나 입회인을 내보내서 일일이 매출 관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영화사는 흥행에 따른 플러스 알파를 미리 포기하게 되므로 많은 수익이 지방 배급업자와 극장주에게 돌아갔고 따라서 그 이익금이 다음 영화 제작에 재투자되는 선순환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90년대 말에 오면 UIP를 필두로 월트디즈니/브에나비스타, 20세기폭스, 워너브러더스, 콜럼비아 등 자본력을 앞세운 외국계 배급사들이 들어오면서 전국의 극장을 상대로 직접 배급을 벌이는 방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코리아픽쳐스, 청어람 등 토종 배급사들도 속 속 경쟁에 가세했는데 한국 영화의 질적 발전과 맞물려 짧은 시간에 외국계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2003년도 상반기 배급사별 관객 동원 및 점유율
구 분 순위 배 급 사 편 수 관객수 점 유 율
2003상반기 2002
국내외 배급사전체 1 시네마서비스 15 4,433,857 22.0% 22.4%
2 CJ엔터테인먼트 10 4,423,220 21.9% 17.6%
3 워너브러더스 6 2,379,914 11.8% 7.8%
4 코리아픽쳐스 4 1,858,836 9.2% 4.7%
5 청어람 6 1,406,129 7.0% 3.2%
6 20세기폭스 10 1,122,299 5.6% 8.7%
7 월트디즈니 8 953,724 4.7% 8.9%
8 쇼박스 4 953,500 4.7% 2.8%
9 UIP 7 710,760 3.5% 3.2%
10 콜럼비아 11 638,700 3.2% 9.6%
기타 36 1,282,607 6.4% 11.1%
117 20,163,546 100.0% 100.%
* 출처:영화진흥위원회 * 서울 관객 기준, 이월작 포함, 소수점 둘째 자리 버림

배급 방식의 변화는 영화의 유통 방식이 업그레이드 됐다는 의의와 함께 영화에 대한 금융 자본의 유입을 촉발시켰다. 이전에는 어느 극장에 얼마나 많은 관객이 들었는지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직접 배급 체제가 자리잡고 또 발매 전산화가 가속화되면서 매출액 산정과 수익금의 정산 과정이 비교적 투명해 졌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이 크리에이티브(Creative)의 영역이라면 이를 비즈니스로 완성하는 것이 ‘배급’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하다. 아침에 개봉했는데 오후에 막을 내릴 수도 있고 변두리 극장이나 지방에서만 상영될 수도 있고 반대로 엄청난 스크린을 확보해서 화려하게 개봉될 수도 있다.

물론 컨텐츠 경쟁력이 갖춰졌다는 전제 아래 배급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작품이 좋아도 꼭 관객 몰이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배급이야 말로 흥행을 위한 최소의 안전장치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영화계에 엄청난 파워 베이스를 형성하고 있는 배급사도 나름대로 큰 숙제가 있다. 배급 능력은 스크린 확보량에서 판가름 나지만 그전에 더욱 중요한 것은 매출을 올려줄 ‘효자 영화’를 자신의 배급 라인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2003년 상반기에 한국영화 11편(선생 김봉두, 오 해피데이 등)을 배급한 시네마서비스가 단 4편(동갑내기 과외하기, 살인의 추억 등)을 배급한 CJ엔테터인먼트에 한국 영화 배급 점유율 선두 자리를 내주었다. 일개 보병 사단보다 ‘대량살상무기’ 한 방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차피 영화마다 각각의 마케팅 홍보 비용이 소요되므로 ‘굵고 길게’ 갈 영화를 골라야 한다. 그래서 배급사들은 영화 제작 초기 단계부터 좋은 영화를 잡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 롯데씨네마가 220억원의 투자 펀드를 만들어 배급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금과 인프라를 앞세운 배급사들간의 ‘알곡’ 골라내기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좋은 컨텐츠 가진 영화사는 고래 싸움 구경하다가 적당히 한 군데 올라 타면 된다.

능력 있는 배급 라인을 잡아야 하는 영화사와 흥행 컨텐츠를 잡아야 하는 배급사. 투자자는 그들이 만나는 곳에 있으면 된다. …합석이 쉬울지는 알 수 없지만.

/김종범 벤처라이프 상무이사 morgan@venture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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