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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튼튼하게만 지으면 지진 걱정 없을까?


"이 건물 내진설계 되어 있나요?""우리 집 내진설계 확인 어떻게 하죠?"

지난 9월 12일 경북 경주시에서 발생한 규모 5.1, 5.8의 지진은 인근 지역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어는 지진에 불안한 사람들로 들썩였다. 내진설계는 무엇이고, 과연 지진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건축물의 내진성이란 지진에 대해 저항력이 있어 흔들려도 부서지지 않고 버티는 힘을 말한다.

오늘날의 건축물 내진설계는 190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규모 8.3의 지진이 시발점이다. 이 지진으로 1400여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지진 이후의 동시다발로 일어난 화재 때문에 도시의 80%가 폐허가 된 참사에서 벽돌조의 건물은 지진에 취약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기돼지 삼형제 동화에서 셋째 돼지는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려 튼튼하게 지은 집으로 늑대를 물리치고 형제들을 구하지만, 현실에선 통하지 않는 얘기다. 외벽만 벽돌로 마감한 경우가 아니라 구조물 자체가 벽돌로 된 '연와조(煉瓦造)' 건물의 경우 지진에 가장 취약하다. 철근은 휘어지면서 버티지만 벽돌은 쪼개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후 내진설계는 철골이나 철근 콘크리트가 주를 이루게 됐다.

일반 철근콘크리트 구조는 2개의 기둥과 그것을 잇는 아래위의 보로 이루어진 사변형 구조다. 이 구조는 수직 하중에 대해서는 견고하지만 지진처럼 수평 방향의 힘에 대해서는 충분치 않아서 내진벽이나 경사부재 등으로 지진에 대비한다. 건물을 단단하게 만드는 게 기본이지만 무조건 강하기만 해서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1997년 이탈리아 아시시 지방에서 발생한 강진에서 건물 내구력 강화를 위해 설치한 철근콘크리트 무게 때문에 문화재가 붕괴됐다는 지적도 나온 바 있다. 철근콘크리트로 벽을 단단하게 지은 건물은 지진을 겪으면 금이 가거나 파괴돼 나중에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현대의 건축물은 내부에 가스, 전기, 수도 등의 시설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으므로 가능한 건축물이 손상되지 않으면서 지진을 견딜 수 있는 구조에 관심이 모아진다.

면진 구조는 건물이 지면에 닿는 부분을 최소화해서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건물의 기초와 본체 사이에 슬라이딩되는 구형의 베어링이나 납과 고무가 적층된 면진 장치를 삽입해 에너지를 흡수해 건물의 진동을 억제한다.

제진 공법은 적극적인 방법과 소극적인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적극적인 방법은 지진파를 감지하면 건물에 부착된 무거운 물체를 이용해 진동을 없앨 수 있는 것으로 건물을 움직이도록 힘을 걸어 지진의 충격을 상쇄한다. 이러한 유구조는 지반의 특성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

건축물은 사용된 자재나 구조에 따라 지진 발생 시 받게 되는 고유주기가 있다. 보통 고층 건물일수록 이 고유주기가 길어진다. 그런데 지반의 지진동 주기와 건물의 고유주기가 비슷한 경우, 특히 초고층 건물이 연약 지반에 세워질 경우에는 위험하다. 주기가 늦은 파가 전해지면 건축물에 공진 현상이 일어나 진동이 더 강해지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보다 소극적인 제진 공법으로는 바닥과 천장에 주어지는 충격을 건물의 기둥과 벽 안에 흡수해 분산, 흡수하는 방법이 있다. 감쇠 장치(댐퍼, damper)를 넣어 진동을 제어하는 방법이다. 건물이 어느 정도 흔들리지만 파손을 막을 수 있다. 지진으로 손상을 입은 경우에는 감쇠장치만 교환하면 되기 때문에 유용하다.

내진설계는 현대 건축의 전유물이 아니다. 현재 이란 남부 지역인 고대 페르시아의 도시 파사르가대(Pasargadae)에서는 기원전 6세기경에 진도 7의 지진을 견딜 수 있는 건축물이 지어졌다. 또 잉카 문명에서 모르타르(mortar)없이 이를 맞추는 방법으로 쌓아올린 자연석 돌담 애슐라(ashlar), 마야 문명이 10~12세기에 건축한 24m 높이의 피라미드 엘 가스틸로 등도 지진에 강한 건축 방법을 사용했다.

한반도에서 지반이 가장 불안정한 곳 중 하나인 경주 불국사 역시 지진을 고려해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이번 지진으로 이 일대에 활성단층이 지나가는 걸 모르는 국민이 없게 됐지만, 경주 일대는 이미 신라 때 지진 피해가 기록된 지역이다. 불국사는 울퉁불퉁한 자연석 화강암 위에 인공석을 딱 맞게 깎아 맞물려 얹는 그렝이 기법을 사용했다.

이런 방식은 지진 때 좌우 흔들림을 잘 견디고 석재 사이에 있는 틈은 지진 에너지를 분산하고 흡수한다. 석축 안쪽에 쌓은 석재가 흔들리지 않게 석축에 규칙적으로 박아 넣은 1.8m 길이의 '동틀돌'도 내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불국사의 이러한 내진설계는 목조 건축에서 사용되는 '짜맞춤' 방식을 화강암으로 응용한 것이다.

목조 건축에 지진을 견디는 힘이 있을까? 목조 주택 전문가들은 목재가 다른 재료보다 무게가 가벼우면서, 무게 대비 탄상과 충격 흡수성이 좋다는 점을 들어 설명한다. 가벼운 건축물은 붕괴의 위험도 상대적으로 적다. 또 목조 건축은 여러 구조요소와 수많은 접합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진 발생 시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하기에 유연하다고 본다. 실제로 2009년 일본 방재과학기술연구소와 미국 콜로라도 대학 연구팀이 6층 목조 건물을 진도 7.5의 강도로 40초간 흔들었음에도 버텨낸 실험 사례도 있다.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철근의 힘처럼 일정한 강도도 필요하고, 목재처럼 흔들림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현대의 내진설계는 건축 재료와 규모에 따른 적절한 내진 방법의 선택, 첨단 재료의 개발 외에도 전통건축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등 다각도로 안전을 위해 경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진설계가 만능은 아니다. 1995년에 일본에서 발생한 고베 지진처럼 상하 진동에 의한 지진은 현대 건축 공법으로 대비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내진설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은 지반의 특성을 조사하고 검토하는 일이다. 1985년 멕시코시티에서 일어난 지진의 경우 지진 규모도 8.1로 컸지만 매립지에 세워져 지반이 약했던 탓에 피해가 커졌다. 2011년 동일본 지진 때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역시 내진설계는 규정대로 돼 있었지만 쓰나미가 집결한 해안선 곶(串)에 위치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1988년에 들어서야 내진설계를 도입했다. 2015년 개정을 통해 3층 이상, 또는 500m2 이상인 모든 건축물에 대해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 건물 중 6.5%만이 내진설계가 반영돼 있는 실정. 이마저도 설계상의 수치이니 실제로는 더 열악할지 모른다. 영화 '터널'의 설정처럼, 설계도대로 하는 게 오히려 이사하게 보일 정도로 부실시공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댐이나 핵발전소 등 상상이 불가할 피해를 낳을 기간시설의 내진설계는 과연 믿을만할까? 경주는 여전히 400회가 넘는 여진에 시달리고 있다. 1200년 전 불국사를 세운 신라인들이 활성 단층 지역에 핵발전소와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을 지은 우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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