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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갑] 기업문화 혁신, 총수 권위부터 내려놔야


[이원갑기자] 삼성그룹은 지난 3월 '스타트업 삼성'을 선포하고 수평적 조직 문화 구축에 나섰다. 지난 6월 27일에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사제도 개편 방안까지 내놨다.

삼성의 새 인사제도는 연공서열 위주의 직급을 직무 위주로 간소화하고 사원 간의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날씨에 따라 반바지도 입을 수 있게 된다.

국내 재계 순위 1위로 해외까지 합쳐 임직원 숫자만 50만 명에 달하는 거대 기업집단이 변신을 시도하는 이유는 민첩하고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다. 세계 경제가 변화하는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는 가운데 기민하게 대처하겠다는 심사다.

그런데 여기서 기시감이 든다. 지난 2000년에 이미 CJ그룹의 '님' 호칭 도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CJ그룹이 새 호칭 제도를 도입한 배경도 수평적 기업 문화의 정착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삼성이 최근에 결정한 기업문화 개선 방안과 판박이다.

삼성과 CJ 모두 총수 중심의 지배 체제를 갖춘 대기업집단이다. 필연적으로 단 한 명의 총수가 제시하는 '비전'을 모두가 바라보는 구조다. 수평적인 소통 체계와는 피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총수에게는 숙제가 주어진다. '모순을 돌파할 방책을 마련하라'

이재현 CJ 회장이 선택한 방책은 스스로에게 집중된 권위를 내려놓는 것이었다. 공개 석상에서 회장에 대한 호칭부터 바꾸고 임직원과의 직접 소통 창구를 개설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총수가 나서서 분위기를 띄운 결과 CJ는 새 기업문화를 안착시킬 수 있었다.

임직원들이 영어 별명으로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한 카카오는 대표 역시 별명으로 불리며 존댓말도 쓰이지 않는다. 대표가 예외적인 특권을 고집했다면 '수평적' 문화는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했을 게 자명하다. 카카오의 조직문화는 초창기에 정착돼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행사에서 강연에 나선 이은석 넥슨 왓스튜디오 총괄디렉터는 "권위적으로 팀을 이끌고 개입하면 팀원들에게 책임감을 배분하는 데 실패한다"며 "상급자가 정답을 제시하는 순간 팀원의 창의력에는 한계가 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작고 민첩한 조직에서 추구하는 '창의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제시했던 스타트업 삼성에서 추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을 비롯해 새 문화를 갖추려는 기업들은 목적하는 바에 역량을 집중하고 이에 걸림돌이 되는 변수를 과감히 쳐내야 한다.

전국시대에 맹자는 역성혁명론을 주장하면서 "군자가 허물이 있으면 간언하고 계속 간언해도 듣지 않으면 지위를 박탈한다"고 했다. 지금은 세계 경제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 냉혹한 시장경제가 총수의 자리를 박탈하는 시대, 모든 임직원이 예외 없이 자유롭게 총수에게 간언하면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문화는 이제 '혁신'이 아닌 '생존 수단'이다.

이원갑기자 kaliu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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