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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야구선수들은 왜 겁이 없을까


야구판 좀먹는 승부조작 망령…철저한 무관용 원칙만이 막는다

[김형태기자] 누구를 원망하랴. 모두가 할 말이 없다. 승부조작의 유령이 또 다시 야구장 상공을 배회하고 있다. 지난 2012년 김성현·박현준(당시 LG)이 야구 경기로 장난치다 영구제명된 뒤 4년 만에 또 승부조작 연루 선수가 나왔다.

이번엔 머릿수가 늘어서 3명이다. 죄책감을 못이겨 자진신고했다는 유창식(KIA)은 한 입으로 두 말까지 했다. 야구밥 먹는 사람들을 만나서는 '딱 한 번' 했다고 하더니 서슬퍼런 경찰에 가서는 2번이라며 말을 바꿨다. 어리석다는 표현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겁이 없어도 너무 없다.

수사가 진행 중인 이태양(NC), 문우람(상무, 원 넥센)에 유창식까지. 그런데 과연 이들 뿐일까. 언제 자신의 이름이 사회관련 뉴스에 등장할지 몰라 남몰래 벌벌 떠는 선수가 더는 없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야구계의 '부패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선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너무도 겁없는 선수들

오래 전부터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야구 선수들은 왜 겁이 없을까'란 의문이다. 시속 150㎞ 안팎의 강속구를 꾸준히 상대하려면 두려움은 죄악이다. 몸에 맞을까봐 치기도 전에 도망가면 선수 자격이 없다. 승부조작 주요 타깃인 투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만 몸쪽으로 던지다가 타자를 맞히기라도 하면 탈이 난다. 그렇다고 한 가운데로 던지면 통타를 당한다. 바깥쪽으로 살짝 빼다 보면 제구가 흐트러진다. 어떤 경우이든 '겁없이' 자신의 공을 믿고 던져야 하는 건 모든 투수들의 미덕이다.

승부조작에도 '겁'은 죄악이다. 사전에 공모한 불량배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 자신을 믿고 내보낸 감독, 코치, 그리고 자신의 등 뒤에서 언제든 몸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는 동료들을 배신할 수 있어야 한다. 의도된 볼넷이 성공할 경우 오만상을 찌푸리며 '기쁜 기색'을 숨겨야 한다. 역시 겁이 없어야 연기력도 늘어난다.

일부 선수들이 겁없이 대한민국 야구판을 농락하는 이유가 뭘까. 이미 4년 전부터 여러가지 분석과 해석이 나왔다. 어려서부터 단체생활만 해와 세상물정 모르기 때문일 수도, 어린 나이에 큰 돈을 벌다보니 세상 무서운줄 모를 수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만 잘하면 몇몇 일탈행위는 주위에서 모른체 넘어간다. 소속 학교를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기라도 하면 선생님·재학생·졸업생 모두가 영웅처럼 대해준다.

그러다가 큰 돈을 받고 프로에 입단하면 '스타 경험'의 길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주위에선 팬들이 사인을 해달라며 줄을 선다. 스마트폰만 들면 자신에 대한 '찬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하기 쉬운 구조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프로야구 선수라면 한 번쯤 검은 유혹의 마수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건 상식이다. 여기에서 과감하게 어둠의 싹을 뿌리치는 선수는 오늘도 떳떳하게 야구장으로 향하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는 벌벌 떨면서 속앓이를 하기 마련이다.

◆단호한 칼날만이 승부조작 막는다

겁없는 일부 선수들의 행동(솔직히 일부에 국한된 것인지도 의심스럽다)을 뿌리뽑는 길은 과연 없을까. 전혀 없지는 않다. 이쪽도 과감하게 '겁없이' 대응하는 거다. 우선 '무관용 원칙'의 철저한 적용이다. 조금이라도 승부조작에 연루된 선수는 프로야구판에 다시는 발을 못붙이게 해야 한다. '걸리면 끝'이라는 공포심을 주지 않으면 저들의 겁없는 '볼넷 연기'는 계속된다.

둘째 '자진신고', '정상참작' 운운하며 온정을 베푸는 행위도 금물이다. 스스로 자수를 하든, 수사당국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든 승부조작을 하고 돈을 받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돈과 시간을 들여 삼복더위에도 야구장을 찾는 팬들은 물론 오직 땀과 열정 만으로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다 바치려는 선수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승부조작과 '똘레랑스'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불고지죄(不告知罪)'의 철저한 적용이다. 관련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하면서 감춘 사람들, 몇몇 선수들의 조작행위를 파악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않는 사람들 역시 야구계 차원에서 징계를 고려할 만하다. 알면서 묵인해주는 선배·후배·동료·관계자들이 있기에 오늘도 승부조작의 망령이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것이다.

'불고지'에 따른 처벌이 심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야구판의 도덕성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중대한 시기다. 야구계에 만연한 '겁없는 행동'의 뿌리를 잘라내려면 이쪽도 과감하게 칼질을 해야 한다. 이 정도 각오와 다짐이 부담스럽다면 "승부조작을 근절하겠다"는 감언이설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과거 승부조작에 연루돼 야구계를 떠난 한 선수는 현재 지방에서 휴대폰 관련 장사를 한다고 한다. 한때 야구계의 촉망받는 유망주였지만 이제는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손님을 끌어들인다고 한다. 겁없는 행동의 결과는 피눈물 나는 후회 뿐이라는 걸 선수들이 먼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야구계 어른'들은 그 사실을 무섭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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