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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포커스]연봉⑤마지막 심판, '연봉조정'의 역사


연봉조정 신청 97건 중 유지현만 승리…2011년 이대호 끝으로 신청자 없어

[한상숙기자] 1억 638만원. 2014년 프로야구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다. 2013년 9천517만원에서 11.8% 올라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어섰다. 이 중 억대 연봉은 2013년보다 15명 늘어난 136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김태균(한화)이 15억원, 강민호(롯데)가 10억원으로 각각 최고 연봉 1, 2위에 올랐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선수들의 평균연봉은 1천215만원에 불과했다. 그 사이 프로야구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발전했고, 선수들의 몸값도 많이 뛰어올랐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구단과 선수 간의 팽팽한 연봉 협상 신경전이다. 팀 성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고과 상위권의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구단이 제시한 연봉에 만족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생겨난 제도가 연봉 조정신청이다. 구단과 선수가 매년 1월 10일 이전까지 연봉 계약에 합의하지 못했을 때, 더 받겠다는 선수와 덜 주겠다는 구단의 입장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제도다. 그러나 현재 연봉조정신청은 유명무실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선수와 구단이 연봉조정을 신청하게 되면 연봉 산출근거 자료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제출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선수 개인보다 구단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과도 명확하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연봉조정 신청자는 총 97명이었다. 이 중 선수와 구단이 KBO에 최종 결정권을 넘긴 것은 20차례였다. 상당수 선수들은 그 과정에서 구단과 합의를 하거나 양보를 해 조정을 취소했다. 선수가 조정신청에서 승리한 경우는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1984년 강만식(해태)과 이원국(MBC)이 최초로 연봉조정을 신청했고, 둘 다 구단 제시액에 사인을 했다. 이듬해인 1985년에는 가장 많은 5명의 선수가 연봉조정 신청에 나섰다. 강만식과 주동식(해태), 김정수, 김상훈 이광권(이상 MBC)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들도 구단의 뜻을 넘어서지 못했다.

2002년에는 LG에서만 5명의 선수가 진통을 겪었다. 전승남과 유지현, 김재현, 이병규, 최동수가 주인공이다. 최동수는 조정위원회가 열리기 전 구단과 합의에 성공해 '조정취소'가 됐다. 나머지 네 명은 끝까지 구단과 맞섰고, 유일하게 유지현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결과를 얻어냈다.

당시 LG는 유지현에게 전년도 연봉 2억원보다 1천만원 삭감된 1억9천만원을 제시했다. 유지현은 이에 반발해 연봉조정을 신청해 2억2천만원을 요구했다. 유지현은 2001시즌 129경기에서 타율 2할8푼3리 9홈런 53타점 90득점 21도루를 기록한 공헌도를 내세워 연봉 인상을 요구했고, 조정위원회는 유지현의 요구대로 2천만원 인상된 2억2천만원을 그 해 연봉으로 결정했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선수 측 연봉조정신청 승리로 남아있다.

연봉조정신청으로 마음고생을 해봤던 유지현 LG 코치는 "조정신청을 거치게 되면 양쪽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다. 연봉 관련 문제는 쿨하게 끝내는 게 최고"라면서 최악의 상황에 앞서 구단과 절충안을 찾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뛰고 있는 이대호는 롯데 시절이던 2011년 구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대호는 당시 구단에 2010년 연봉 3억9천만원에서 3억1천만원이 오른 7억원을 요구했다. 반면 롯데는 6억3천만원의 책정 금액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7천만원 차이였다. 2010년 127경기에서 478타수 174안타 타율 3할6푼4리 44홈런 133타점 99득점을 올리면서 타격 7관왕에 올랐을 때다. 당시 이대호는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세계신기록까지 달성하는 등 절정의 기량을 뽐내 연봉 대폭 상승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대호도 롯데의 뜻을 꺾지 못했고 연봉조정위원회의 지지도 얻어내지 못했다. 어느 경우보다 이대호가 이길 확률이 높은 싸움으로 평가받았지만, 선수가 구단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대호가 준비한 자료보다 구단의 고과표가 더욱 힘을 얻었다. 조정위원회는 "양측의 주장을 검토한 결과, 롯데의 의견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면서 롯데 구단의 손을 들어줬다.

2011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얻은 이대호는 롯데가 제시한 4년 100억원의,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제안을 뿌리치고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해외 무대 진출에 대한 이대호의 의지가 강하기도 했지만 '7천만원'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이대호가 구단에 섭섭했던 마음을 팀을 떠나는 것으로 표출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제는 프로야구 초창기와 비교해 연봉 조정신청 자체가 크게 줄었다. 1991년에는 가장 많은 12명의 선수가 구단의 연봉 제시액에 불만족을 표했다. 이 중 김시진(롯데)과 장호연(OB)이 끝까지 조정신청을 했고, 두 선수 모두 구단의 제시액을 받아들여야 했다.

2011년 이대호를 끝으로 연봉 조정신청을 한 선수는 없다. 당시 승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대호마저 구단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면서 선수들도 조정신청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는 의욕을 잃었다. 2012년 LG 이대형이 연봉조정신청을 했지만, 조정위원회까지 가지 않고 철회했다.

A구단의 B선수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 선수 혼자 (연봉 산정 관련) 자료를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매 경기 다양하게 선수들의 기록을 관리해온 구단의 자료를 넘어설 방법이 없다. 또 연봉 문제 때문에 스프링캠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구단의 제시액에 불만이 있어도 연봉조정 신청이 쉽지 않음을 털어놨다.

올해는 10구단 선수 중 우규민과 류제국(이상 LG)만이 아직 연봉 협상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다.

조이뉴스24 한상숙기자 sk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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