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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재의 까칠한 축구]'이란스러운' 심판에 졌다


한국, 심판 오심으로 이란에 골 헌납 0-1 패배

[최용재기자] 축구계에서 '이란스러운'이란 속된 말이 있다. 아주 심오하게 추악한 뜻을 품고 있다.

중동 축구의 '상징'이라고 평가 받는 이란의 축구 스타일을 '이란스럽다'고 한다. 뻔뻔하고, 무례하고, 일방 통행이고, 비열하고, 낯부끄러운 것을 한 마디로 함축한 말이다.

일단 핵심적인 요소가 '침대축구'다. 이란 선수들은 자신들이 이기고 있을 때 제대로 서 있지 못한다. 틈만 나면 그라운드에 드러눕는다. 그러면서 시간을 끈다. 이란이 승리할 수 있는 핵심 전략이다. 그들이 지고 있을 때는 침대축구를 절대 볼 수 없다. 불문율이다.

침대 축구는 이란을 포함한 중동에서 특화된 전술이다.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고도의 전술이다. 일단 뻔뻔함이 있어야 가능한 기술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해내는 고급 기술이다. 여기에 연기력까지 더해야 한다. 연기력이 부족하다면 스스로도 민망하고 웃음거리가 될 수 있기에 최대한 힘들고 아픈 표정을 짓는다. 일부 고수들은 떨리는 몸짓까지 표현해 낸다.

'이란스러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반칙이나 오프사이드 등으로 상대에 공격권이 넘어가도 최대한 공을 끌며 늦게 넘겨줘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도 있다. 오프사이드 선언을 받아도 끝까지 슈팅을 하는 집중력도 가져야 한다. 옐로카드 하나쯤 받는 것은 훈장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 선수들에게 시비를 걸어 몸싸움 한 번 벌이는 것은 관례다. 오심에 의한 것이든, 비열한 방법으로든 골을 넣으면 세상에서 가장 기쁜 표정을 지으며 환호해야 한다.

선수들만 그러는게 아니다. 이란 감독은 때론 상대 감독에게 '주먹 감자'를 날리는 놀라운 투쟁심도 갖췄다.

아시아 축구계는 이런 '이란스러움'에 익숙하다. 수십 년이 지나도 전통을 고수하는 이란 축구에 그저 경이로운 시선을 보낼 뿐이다. 이란 축구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이어나가기 위한 그들의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쳐줘야 할까. 낯부끄러워 아무나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척척 해내는 그들에게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18일 밤(한국시간)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한국과 이란의 친선경기.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다 이란이 후반 37분 선제골을 넣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장면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역시나 그들은 '이란스러운' 모습을 당당히 드러냈다.

침대축구를 기본으로 온갖 매너 없는 짓들을 서슴없이 연출했다. 이란은 시간을 최대한 끌어 1-0 승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결국 그들의 의지대로 됐다. 이란은 1-0으로 승리했다. 이란 축구의 정체성과 정통성이 다시 한 번 1승을 가져가는 순간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한국 축구팬들은 분노했다. 이란의 비매너 축구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이란은 딱히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이란이 먼저 골을 넣으면 그렇게 나올 것은 모두가 예상할 수 있었던 바였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침대 축구와 비매너로 시간을 끌었고 승리를 챙겼다. 이란은 그대로였다. 1970년대 TV를 보는 듯한 그들의 중계 기술처럼 변하지 않는 이란 축구에 분노할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는 분노를 해주는 것도 사치다.

분노한다고, 질타한다고, 달라질 이란이 아니다. 달라졌을 거면 진작 달라졌어야 했다. 이란은 지금까지 고수해오던 방식을 지켜나갈 뿐이다.

오히려 이란이 침대축구를 구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한국 대표팀에게서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매번 비슷한 방식으로 이란에 덜미를 잡히고 있다. 경기력은 압도했지만 결과는 패배다.

이는 한국이 경기력에서는 앞서지만 이란과의 심리전에서 밀린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란의 심리전에 빠지지 않게, 조금 더 냉정하게 대처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일찌감치 선제골을 넣었어야 했다. 그들이 드러눕지 못하게 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선제골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것을 못했다. 이런 점들을 슈틸리케 감독과 대표선수들은 앞으로 차차 고쳐나가면 된다. 한국은 발전하기 위해 '변화'를 택하는 팀이다.

이번 이란전만 놓고 볼 때 분노할 상대는 따로 있다. 전통을 고수한 이란이 아니다. 바로 '이란스러운' 심판이었다. 이번 경기 주심과 부심은 모두 우즈베키스탄 심판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심판으로서의 능력과 행동은 완벽한 '이란스러움'이었다.

그들은 뻔뻔함을 갖췄다.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낯부끄러운 짓들을 일삼았다. 결정적으로 능력과 자질이 없었다. 능력은 없는데 국제심판은 해야 하니 이상한 전술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한 팀에 유리하게 판정하고, 또 누가 봐도 오심인 것을 당당하게 외면했다. 이란의 침대축구처럼 그들의 판정은 시종일관 답답했다.

이란이 거친 파울을 하면 못본 척 넘기고, 한국이 거친 파울을 하면 표독스러운 눈으로 옐로카드를 꺼냈다. 이런 일관되지 않은 판정은 경기를 과열시켰다. 그리고 과열된 경기를 관망하는 엄청난 능력을 지녔다. 그래서 수습하거나 진정시키지 못했다. 추가시간에 양 팀 선수들이 흥분해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켜 시간이 많이 지체됐는데도, 추가시간은 칼같이 지키는 정확성도 보였다. 이것은 심판 개개인의 개성,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일이니 백 번 양보해 그렇다고 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란의 골 장면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판정에 분노해야 하고 분개해야 한다. 누가 봐도 아닌데 심판들만 맞다고 한다. 이런 대단히 무능력한 심판이 어떻게 A매치 심판을 볼 수 있을까. 조기축구에서도 감히 이런 골은 인정하지 않는다.

후반 37분, 이란 아즈문은 한국 골키퍼 김진현과 공중 경합 과정에서 헤딩 슈팅으로 골을 넣었다. 그런데 아즈문은 김진현을 밀치며 골을 우겨넣었다. 누가 봐도 골키퍼 차징이었다. 골대 앞에서 골키퍼는 절대적으로 보호돼야 하는 존재다. 그런데 골키퍼를 밀고 골을 넣었는데, 심판은 골이란다.

황당한 판정, 황당한 골, 황당한 심판이었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평소에 자애롭고 냉정한 울리 슈틸리케 감독마저 분노하며 경기 후 그라운드로 뛰어들어가 심판에게 직접 항의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완벽한 오심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주먹 감자로 유명하신 이란 감독은 명확한 골이란다. 이 분도 참 변하지 않는 '이란스러운' 감독이다.

이란에 질 수도 있다. 한국은 이란 원정에서는 40년 동안 이기지 못했다. 한 번 더 질 수도 있다. 이란이 침대축구를 할 수도 있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다. 이제는 그들이 침대축구를 안 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가 됐다. 이란이 무례할 수 있다. 그들이 예의를 차리면 오히려 뭔가 꿍꿍이가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심판이 경기를 망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들의 무능력으로 인해 한국은 정당하게 패배할 권리마저 잃었다. '이란스러운' 선수 11명에, '이란스러운' 주먹 감자 감독에, '이란스러운' 심판마저 힘을 합친다면 한국은 절대로 이란에 이길 수 없다. 이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냥 '이란스러운' 저급한 행위일 뿐이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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