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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특허 근본 건드린 삼성-애플 2차 소송


황금연휴 첫날이던 지난 3일. 외신들이 초대형 뉴스를 쏟아냈습니다. 삼성과 애플 간 2차 특허 소송 배심원 평결이 나온 겁니다. 덕분에 나른하게 연휴 첫날을 즐기려던 기자는 이날 오전 허둥대면서 기사를 쏟아내야했습니다.

1억1천900만 달러(삼성 배상액) vs 15만8천 달러(애플 배상액).

나름 이 사건을 열심히 추적해 왔던 전 또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삼성 배상액이 생각보다 적어서 놀랐고, 애플에게 배상금이 부과돼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사실상 삼성이 승리한 소송”이라는 평가를 쏟아낼 정도였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생각입니다. 전 완패했던 1차 소송도 전체적으로 보면 삼성에게 악재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러니 이번 소송은 더더욱 삼성에겐 큰 힘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 평결 결과에 관심을 가진 건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어쩌면 특허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얘기부터 한번 해 볼까요?

◆특허 제도, 원래 목적은 '혁신 기술 공유'

여러분들은 특허가 존재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창의적인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서? 물론 틀린 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특허제도의 근본 목적은 아닙니다.

혁신 기술을 공개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공동의 이익을 좀 더 높이는 데 기여하도록 하는 것. 그게 특허제도의 근본 목적입니다.

무분별한 특허 소송 얘기를 너무 많이 접해서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원래 특허 제도는 혼자만 간직하던 비법을 만천하에 공개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창의적인 기술을 개발한 사람에게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해주면서 노하우 공개를 유도한 겁니다. 특허가 혁신의 수호자로 출발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한 얘길 원하는 분은 링크한 아래 기사를 한번 읽어보세요. 지난 2012년 말 제가 쓴 기사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게 ‘공적 가치’와 ‘사적 이익’을 잘 조화시키는 겁니다. 무슨 얘기냐구요?

노하우를 공개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포괄적인 권리를 주게 되면 도리어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 사람이 길목을 독점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혁신 유도란 대의명분을 제대로 실현할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반면 독점적 권리 인정 범위를 지나치게 좁힐 경우엔 어떻게 될까요? 혁신 기술을 개발하려는 유인 자체를 가로막을 수 있을 겁니다. 남들이 몇 년 걸쳐서 개발한 기술을 살짝만 수정한 뒤 비슷하게 내놓을 우려가 많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특허가 어렵다는 겁니다. ‘혁신 유도’란 대의명분과 ‘사적 재산권 보호’란 또 다른 가치를 적절하게 조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태핑 둘러싼 공방이 2차 특허 소송의 핵심

이런 배경을 깔고 이번 소송을 한번 살펴봅시다. 이번 소송에서 삼성에 부과된 1억2천만 달러 배상금 중 대부분은 데이터 태핑 특허권(특허번호 647)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647 관련 배상금이 무려 9천869만 달러에 이릅니다. 제가 계산해보니 전체 배상금의 83% 수준에 이르더군요.

사실상 이번 소송 승패를 가른 건 647 특허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전 647 특허권을 둘러싼 공방이 특허권의 근본에 대해 성찰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647 특허는 특정 데이터를 누르면 관련 앱이나 창을 띄어주는 연결 동작을 위한 시스템 관련 기술입니다. 이를테면 웹 페이지나 이메일에 있는 전화 번호를 누르기만 하면 곧바로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기술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메일 주소를 클릭하면 곧바로 이메일 창을 열어주는 것도 이 기술 덕분입니다.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 등의 특성을 분석해 적합한 프로그램과 연결해주는 것이 ‘647 특허권'의 핵심 개념인 셈이지요. 상당히 유용한 기능이지요?

애플이 출원한 647 특허권 관련 문건에는 “분석 서버가 애플리케이션으로부터 데이터를 받은 뒤 유형 분석 단위를 이용해 데이터 구조를 탐지한 뒤 관련된 행동으로 연결해준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특허권을 바라보는 삼성과 애플의 관점이 조금 다릅니다.

한 마디로 정리해볼까요? 애플은 “전화번호나 이메일을 자동으로 연결해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삼성은 “그런 행위를 작동하는 방식 간의 차별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구요.

이 때 중요한 게 ‘분석 서버’란 부분입니다. 즉 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를 연결해주는 기술이 어디서 구현되는가, 라는 부분이 핵심 쟁점입니다.

◆배심원들은 '647 특허권 포괄적 보호' 쪽에 무게

배심원들은 애플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애플 요구액에 비해선 턱 없이 적은 액수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번 소송에서 애플이 승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까요.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봅시다.

특허 비전문가인 전, 삼성이나 애플 쪽 얘기 모두 타당해보입니다. 좀 더 단순화해 볼까요? 스마트폰에서 이메일이나 전화번호를 누르면 곧바로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연결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혁신적인 것 같긴 합니다. 그건 ‘밀어서 잠금 해제’가 처음 등장할 때 혁신적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특허제도의 또 다른 측면인 ‘혁신 장려’란 관점으로 접근할 경우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밀어서 잠금 해제’와 유사한 동작 전부를 애플 특허권으로 인정해버릴 경우 또 다른 혁신이 나올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갤럭시S3부터 적용된 ‘잠금 해제’ 방식이 애플 특허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 건 그 때문입니다.

‘밀어서 잠금 해제’가 화제가 될 당시 “원천기술은 우리 것”이란 우스개 주장이 꽤 인기를 누린 적 있습니다.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문이 ‘밀어서 잠금 해제’의 원천기술이란 얘기였지요. 우스개소리지만 특허 제도의 허점을 잘 꼬집은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647 특허권 역시 비슷한 고민거리를 던져줍니다. 표면에서 구동되는 혁신성에 포괄적인 보호막을 씌워줄 것이냐, 아니면 안에서 구동되는 방식의 차이를 인정해줄 것이냐는 부분이 핵심 쟁점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전 잘 모르겠습니다.

배심원들은 이 부분에서 ‘데이터 유형을 분석한 뒤 자동으로 연결해주는 행위’란 애플의 혁신을 독점적으로 보호해줄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애플이 모토로라와 벌인 또 다른 소송에선 647 특허권의 범위를 굉장히 좁게 해석한 때문입니다. 항소법원 해석에 따르면 안드로이드 폰에 적용된 기술은 애플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즉, 항소법원은 647 특허권의 보호 범위를 너무 넓게 잡아선 안 된다는 입장이란 얘기입니다.

◆항소법원은 상반된 판결…루시 고, 어떤 결정?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시죠? 647 특허권을 둘러싼 삼성과 애플의 공방은 혁신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해줄 것이냐는 쟁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쟁점이란 얘기입니다.

애플에 독점권을 인정해줄 경우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는 모든 데이터 태핑 기술은 원천적으로 특허침해에 해당됩니다. 반면 삼성에 면죄부를 주게 되면 ‘애플 혁신’의 가치는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어느 선에서 두 가치를 조화시킬 지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법원이 떠안게 됐다는 겁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삼성 쪽에선 평결불복심리 과정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질 겁니다. 삼성 변호인단을 이끄는 존 퀸 변호사가 “배상금 0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둔 발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삼성은 평결불복심리 과정에서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질 않을 경우엔 항소를 하겠죠.

자, 제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판단해보세요.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는 게 옳을 지를. 특허 전문가가 아니라구요? 괜찮습니다. 특허기술은 어렵지만, 특허 제도 자체는 상식선에서 구동되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저도 특허 전문가와는 거리가 아주 머니까요.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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