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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애플 CEO 동성애자' 기사가 화끈거렸던 이유


기사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매체들은 업무와 직접 관계되지 않는 한 개인의 성적인 취향을 문제 삼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 부분 역시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이라는 게 그 쪽 언론들의 대체적인 관점이다. 적어도, '찌라시'란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제대로 된 언론들은 그렇다.

국내 언론들이 인용 보도한 비넷(bnet)의 기사 원문 을 찾아 읽어봤다. 일반 독자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비넷은 CBS 계열로 IT 쪽에서도 깊이 있는 분석 기사를 잘 쓰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애플 CEO 팀 쿡의 성 정체성이 뉴스가 아닌-혹은 뉴스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Why Apple CEO Tim Cook’s Sexual Identity Isn’t — or Shouldn’t Be — News)"였다.

"이게 뭔가?" 싶어서 읽어봤다. 비넷의 기사는 제목 그대로 였다. 팀 쿡이 애플에서 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이 없는 한, 그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는 뉴스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논조였다. "팀 쿡의 성 정체성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는 일부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었다.

비넷의 기사를 읽으면서 참 잘 썼다는 생각을 했다. 일부 기자들의 성급한 주장을 비판하면서 저널리즘의 기본에 대한 중요한 성찰을 담아낸 때문이다. 이 기사를 쓴 에릭 셔먼 기자는 기자들이 자신들의 얄팍한 관심을 독자들의 알 권리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몇몇 국내 매체들의 발 빠른 보도(?) 덕분에 저널리즘의 기본 관행에 대해 다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 점에 대해선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기사가 흥미거리 가십 기사로 변신한 데 대해선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보다 더 의아한 건 비넷을 인용 보도한 국내 기사의 논조가 똑 같다는 점이었다.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비넷 기사를 인용 보도한 매체 중 어느 한 곳도 이 기사의 기본 논조를 그대로 살린 곳은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혹시 기자가 비넷의 기사를 잘못 이해한 것인가 싶어서 여러 번 읽어봤다. 아무리 읽어봐도, 도저히 <팀 쿡 애플 새 CEO는 동성애자?… 美 매체들 관심>이란 제목을 달 수가 없는 기사였다. 게다가 각 언론들이 쓴 기사는 잘못 쓴 부분까지 똑 같았다. (이를테면 "애플이 동성애자에게 '우호적인' 회사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했다"는 부분은 원문을 완전히 오독한 내용이다. 이 부분은 비넷 기자가 다른 기자의 기사를 인용한 부분에 나온다. 비넷 기사를 인용 보도한 매체들은 거의 전부 이 부분을 비넷 기자의 주장처럼 썼다.)

한 매체가 입 맛대로 (고쳐) 쓴 기사를 다른 매체들이 무분별하게 받아 쓰지 않고서야 '팀 쿡 동성애자 파동"이 국내에서 발생할 수가 없는 사안이었다. 원문을 제대로 읽었다면 저런 논조로 기사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원 기사를 쓴 에릭 셔먼 기자가 국내 언론들이 인용 보도한 기사를 봤다면 "허위 사실 유포"로 소송을 걸어도 할 말이 없을 듯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언론의 기본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해 봤으면 좋겠다. 섹시한 제목과 흥미 위주 보도로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을 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제 살을 갉아먹는 일이다. 언론은 '이미지 상품'이기 때문이다.

에릭 셔먼 기자는 이 기사에서 (쿡의 성 정체성을 문제삼는 기자들은) '자기 탐닉'을 의무로 착각하고 있다(the press often portrays self-indulgence as duty)고 지적했다. 자기가 관심갖는 사안을 독자들의 알 권리라고 착각한다는 얘기다.

셔먼 기자의 이 지적은 이 칼럼을 쓰고 있는 기자를 포함해 국내 모든 매체 종사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얘기인 것 같다. '많이 읽히는 기사'보다는 '제대로 읽히는 기사'가 좀 더 우대받을 때 제대로 된 여론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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