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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의 NOW 도쿄]북한, 그라운드 안 훈풍 연출


장현수-리명국 잔잔한 대화 격려 전해…여자 대표팀과는 달랐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북한이요? 숙소 자체를 몰라요."

2017 동아시아 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북한은 한국·중국·일본보다 더 큰 관심을 받는 팀입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으로 일본이 독자 제재에 나선 상황에서 남녀 선수단이 대회 참가를 위해 등장했으니 주목받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일본 언론들은 연일 북한 소식을 전합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매일 하루에 수 시간을 할애해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의 동정을 보도합니다. 최근 백두산에 오른 것을 놓고 1시간을 토론합니다.

북한 남녀 대표팀은 일본 경시청의 철저한 보호를 받으며 경기장과 훈련장 그리고 숙소를 오간다고 합니다. 제재로 인해 선수들이 일본에서 물품이라도 구매하면 반출할 수 없습니다. 상금도 받을 수 없답니다. EAFF 조직위원회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 측에서 경기장 내를 제외하면 외부 노출은 최소화해달라고 한다"며 "지원 나간 직원들이 상당히 인내심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대표팀 관계자들도 비슷한 반응입니다. 한 관계자는 "숙소가 어딘지도 모르고 연습장도 모른다. 2년 전 중국 우한 대회에서는 그대로 같은 숙소에서 층만 달랐다. 훈련장 오가며 인사는 가능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남북 관계는 당연히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지난 11일 지바 소가 스포츠 파크에서 열린 여자 남북전은 그야말로 얼음판 위 승부였습니다. 지난 4월 평양에서 열린 2018 여자 아시안컵 예선 신경전의 연장전이었기에 서로 말도 제대로 섞지 않았습니다. 평양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 뒤 한국이 본선 진출권을 가져간 뒤 8개월 만의 만남이라 서로 불편했고요.

북한 선수단은 한국이 볼만 잡으면 강하게 몸싸움을 시도했습니다. 그들에게 잃어버린 시간 동안 칼을 갈고 나온 것처럼 말이죠. 장슬기의 파울로 잠시 몸싸움이 벌어진 순간은 아찔했지만 그나마 주심이 개입해 빨리 마무리됐습니다.

대표팀 관계자는 "평양에서의 몸싸움에 비하면 별일 아니다"고 하더군요. 경기 후 이민아(인천 현대제철)도 "말이 통해서 세트피스 등에서 조심스럽더라"고 하더군요.

하루 뒤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자 남북전에는 더 많은 취재진이 몰렸습니다. 북한 감독은 노르웨이 출신 예른 안데르센 감독입니다. 미지의 세계에서 외국인이 감독을 하는 것 자체가 관심거리죠. 여기에 일본과의 1차전에서 '총폭탄 축구'·'전투 축구'로 불리는 체력을 앞세운 선 수비 후 역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죠.

일본 프리랜서 고노이 요헤이 기자는 "북한 축구를 외국인이 지도하는 것 자체가 참 절묘하다. 한국 입장에서도 신기하지 않나. 북한 소식통이 있는데 안데르센 감독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더라. 평양 국제축구 학교에서 배출되는 자원들이 시간이 지나면 대표팀에 부름을 받을 것이라고 희망에 차 있다"고 하더군요.

여자 대표팀처럼 남자 대표팀도 서로 침묵할까요, 꼭 그렇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불과 2년 전 중국 우한 동아시안컵에서 마주했던 자원 다수가 이번 대표팀에도 합류했기 때문이죠.

장현수(FC도쿄)가 경기 전 북한 수문장 리명국(평양)과 짧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리명국은 한국 팬들에게도 익숙하죠. 이탈리아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에 빗대어 '북폰'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죠. 우한 대회는 물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결승전에서 만난 기억이 있으니 서로 익숙한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장현수는 "경기 전 안부를 물었다. 월드컵에 가서 잘 하라고 하더라"며 "북한 선수들은 과거처럼 우리와 대화를 하지 않고 그러지는 않는다. 오늘도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북한전이 끝나고 리명국과 유니폼 교환을 하려고 했다는 장현수는 "마지막 경기 후에 하자"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북한은 2패로 우승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리명국이 교환 의사를 표현했으니 정말 구하기 힘들다는 북한 유니폼을 '득템'(?)하게 되네요.

김진수(전북 현대)도 박명성(4.25)과 경기 중 부딪힌 기억을 떠올리며 "박명성이 조금 착하게 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너 몇 살이냐"고 물었는데 나보다 두 살 어리더라. 내가 형이라고 말하라고 하면서 경기가 종료됐다"고 웃더군요.

어쨌든 경직된 상황에서도 대화의 장은 열렸습니다. 그라운드에 경계가 없으니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종전에서는 시상식 등으로 인해 그라운드에 모두가 모이게 됩니다. 동북아 정세 불안에 북한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여전하지만 서로 눈치 보지 않고 한민족 특유의 정이라도 나눌지 궁금해집니다. 2년 전 여자 선수들처럼 셀카라도 찍으려나요.

조이뉴스24 도쿄(일본)=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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