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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챔피언스필드의 기와문, 그 이유를 아십니까


'518 사적지' 청기와문, 오늘도 그날의 한을 기억하다

[김형태기자] #광주광역시 북구 서림로 10. 광주의 새 명물인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현존 프로야구 구장 가운데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이곳에는 '생뚱맞아 보이는' 조형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오른쪽 외야 잔디밭 넘어 광주천 유운교와 인접한 청기와 문은 외지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야구장 출입문도 아니고, 위치도 어정쩡하게 차도에 붙어 있는 이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안에는 너무도 애절하며 처절한 현대사의 한 페이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980년 5월20일 오후. 한 무리의 택시 기사들이 무등경기장으로 모여들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있지도, 따로 공지사항이 뜨지도 않았지만 택시와 버스 200여대가 집결했다. 이들은 모두 헤드라이트를 켜고 경적을 울리며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전날 시민 수십명이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터미널 등 사람들이 모일 만한 주요 장소가 계엄군에 장악되자 이심전심으로 자연스럽게 모여든 장소가 무등경기장이었다. 이곳의 파란 청기와 출입문 앞에서 시민들은 울분을 터뜨렸고, "도청으로 가자"는 여론이 모아졌다. 5월항쟁의 최대 반환점이 된 '택시 시위'는 이렇게 시작됐다.

#2010년 12월15일. 강운태 당시 광주시장은 이삼웅 기아자동차 사장(KIA 타이거즈 구단주 대행)과 의미깊은 협약식을 가졌다. 낙후된 무등야구장을 대체할 새 야구장을 건설한다는 기념비적인 협약이었다. 광주시와 기아자동차, 그리고 국고를 33%씩 투자해 2014년 시즌 개막에 맞춰 새 야구장을 개장하기로 했다.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의 그림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부지는 무등경기장 바로 옆 주경기장으로 확정됐다.

#여느 공사나 마찬가지이듯 난제가 나타났다. 하나도 아닌 2개나 암초가 부상했다. 계획안을 검토하던 실무선에선 우선 무등경기장 '정문'이 문제였다. 30여년전 현대사의 중요한 역할을 한 이곳은 건드릴 수가 없었다. '518 유적지 18호'로 지정된 까닭에 철거가 불가능했다. 결국 야구장 밖에 '모시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정문과 연결된 기존 담장을 철거하는 대신 현대사적 의미가 큰 청기와 문은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했다. 야구장 밖의 생뚱맞아 보이는 이 문은 그래서 오늘도 도청이 위치했던 광주 도심쪽을 바라보며 그 날의 한을 기억하고 있다.

#또 하나의 관건은 돈문제였다. 야구장을 신축하기 위해선 국고 지원이 필수다. 스포츠토토 수익금을 국고로 전환해 타내기 위해선 '야구장 신축안'을 꺼내들 수 없었다. 기존 무등야구장을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새 야구장을 지어달라는 건 '정부에서 퇴짜를 놔달라'는 요구나 마찬가지다. 고민하던 광주시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꺼내들었다. 야구장 신축이 아닌 '주경기장 개보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어차피 광주의 종합경기장 역할은 이미 월드컵 경기장이 대체하고 있었다. 낡고 이용률이 극히 떨어진 주경기장을 리모델링해 야구장으로 쓴다는 복안이었다. 행정자치부 장관 출신으로, 중앙 관료 생활을 오래 한 강 전 시장이 내놓은 '묘안'이었다.

#그러자니 주경기장을 '홀랑' 부술 수는 없었다. 이곳이 '야구를 하는 주경기장' 임을 내세울 수 있는 상징물이 필요했다. 1965년 개장한 무등경기장은 그해 광주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를 위해 건설된 장소다. 올림픽, 아시안게임도 마찬가지이지만 체전을 상징하는 조형물은 하나. 바로 성화대다. 광주시는 협의 끝에 경기장의 거의 전부를 새로 짓는 대신 주경기장을 상징하는 성화대 만은 남겨두기로 했다. 이 성화대는 챔피언스필드 좌측 외야 잔디밭 뒤 야구장 안에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여름비가 흩날린 지난 17∼18일 챔피언스필드. '별들의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은 야구팬 상당수는 무등야구장 인근 중앙 출입문(홈플레이트 쪽)과 내야 출입구를 통해 입장했다. 그리 많지 않은 소수의 외야 관중(챔피언스필드에는 아직 외야 스탠드가 없다) 만이 외야 잔디밭 이곳저곳에 앉아 '한여름밤의 클래식'을 만끽했다. 이들의 함성과 박수갈채 뒤에는 한국의 현대사와 광주의 체육사를 상징하는 두 상징물이 오늘도 외롭게, 그러나 굳건히 서 있었다.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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