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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여행]<12> 치매에 걸리면 모든 기억을 다 잃어버린다고요?
2018년 07월 19일 오전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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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치매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과 오해를 갖고 있다. 예방활동을 열심히 하면 안 걸리는 것일까? 치매에 걸리면 아무 것도 모르게 되는 것일까?

치매라는 공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오해가 불안감을 증폭시킬 뿐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환자를 대하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치매 초기환자를 대상으로 한 암산, 단어외우기 등의 기억력 훈련법이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도 치매에 대한 잘못된 상식에서 비롯된 헛된 노력이다.

일반인이 하는 오해 가운데 하나가 치매에 걸렸다고 하면 모든 기억이 사라져 주위의 일들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정작 치매환자를 진단하는 의사들에게도 있어 치매환자에게 '당신 치매에요'라고 무신경하게 선고를 내리거나 환자를 앞에 두고 완전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며 보호자와만 대화를 한다.
십 수년 전 오스트레일리아의 40대 후반 여성 크리스틴 브라이든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과학기술분야 고위공무원이었던 그녀는 국가공무원위원회가 선정한 6명의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뽑힐 정도로 열정적이고 유능했다. 아무리 복잡한 서류도 기억만으로 정리하고 자신이 다루었던 국가주도 연구사업의 내용이나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사소한 발언들도 전부 기억해내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이혼과 과도한 업무 부담 등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녀는 어느 날부터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명료하지 않으며 최근 기억들이 소쿠리가 된 뇌 속에서 술렁술렁 빠져나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멀티태스킹의 대가였던 그녀는 한 번에 한 가지만 간신히 할 수 있어, 스스로를 '윈도우 창을 하나 밖에 열수 없는 컴퓨터'에 비유했다. 두 가지 이상을 연결해 생각하려면 현기증이 났다. 파티를 좋아했던 그녀지만 알츠하이머에 걸린 이후에는 주위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를 참을 수가 없게 됐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발병한 드문 경우였다. 비교적 초기에 진단을 받은 그녀는 남은 능력을 짜내어 자신의 변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쓴 책은 아마, 치매환자가 쓴 책으로 유일할 것이다. 이제까지 치매에 대한 책이라 하면, 의사, 전문가, 치매환자의 가족이 쓴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녀는 치매를 겪으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치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 잡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자신을 상실하는 일. 그래서 '차라리 암이었더라면', '빨리 죽어버릴 수 있다면'이라는 고민을 드러냈다.

흔히 하는 얘기로 '치매는 가족에게는 지옥, 본인에게는 천국'이라는 말이 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고통을 얘기하는 말이지만, 그녀는 환자 역시 심한 갈등과 불안, 초조감을 경험한다고 얘기한다.

뇌가 위축되고 기억이 사라지면서 환자들은 기억, 계산, 언어 능력 등의 좌뇌 기능을 상실하지만 감정은 살아있다. 좌뇌(좌뇌 기능에 해당하는 해마, 전두측두엽 등)가 망가졌는데 이들에게 암산을 시키고 단어를 외우게 하는 것은 헛된 노력을 지나서 환자를 학대하는 일이다.

특히 치매 초기에는 자신의 상태가 점점 악화된다는 자각에 심한 우울과 불안을 느낀다. 집에서 가족들에게 같은 질문을 자꾸 하는 것도 기억을 붙들어두기 위한 노력에서일 수 있다.

치매 초기에 자주 보이는 도둑망상도 사실은 자신이 지갑이나 통장을 둔 장소를 기억하지 못하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누군가(보통 남편이나 자녀)가 자신 물건을 훔쳐 갔다'라는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다.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 필사적이 된다. 옆의 사람이 보기에 고집스러움이 되는 것이다.

또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항상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케어직원들은 환자들에게 '오락가락'하거나 '정신이 드나드는' 특성이 있다고 알려준다. 어떤 경우에는 치매 맞구나 싶게 어이없는 행동을 하다가, 어떤 경우에는 인지가 돌아와 자신을 아기 취급하는 직원들에게 화를 낸다.

방문요양을 받는 82세의 할아버지는 거울 속의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거나 곰인형에게 물을 따라 마시게 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지만, 요양보호사가 오면 "어서 오세요. 더운 데 고생이 많아요" 라고 친절하게 얘기를 한다.

요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치매가 상당히 진행되면서 거의 말을 하지 못하게 된 70대 후반 할아버지의 생일에, 직원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할아버지는 힘겹게 일어나 우물우물 하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대학교수 출신이었던 이 할아버지는 연설에 능하신 분이었다고 한다.

치매환자들은 몸만 있고 정신은 사라진 존재가 아니다. 최근에 읽은 책 '우리 부모님의 이상한 행동들'(곽용태 저/브레인와이즈 출판사)은 환자의 기분을 잘 표현한 것 같아 그 일부를 옮겨볼까 한다. 치매환자의 불안은 뇌에 존재하는 변연계라는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5세기 말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이란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길 수 밖에 없는, 존재의 기본적 속성이며 신을 향한 외침이라고 했습니다. 집에서는 존경받는 아버지이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 점차 남의 도움에 의존하다가 대소변조차 못 가리게 되어 자식의 눈치를 보고 배우자의 한숨 소리를 들으면 존재에 대한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파도를 피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보지만 더 큰 파도가 밀려옵니다.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파도와 파도 사이 좁은 공간에서 숨어 공포스럽게 그 순간이 지나기를 바라지만 자신을 보는 가족들의 시선에서 걱정, 불안, 심지어 짜증을 느낍니다. 예전 같으면 손을 잡아주실 부모님은 이미 세상에 없고, 혼자 버려진 기분이 듭니다. 환자가 원하는 것은 물 컵 옆에 있는 약이 아니라 파도가 올 때 손 잡아줄 가족입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시작할 때 잡아주는 손이 있었겠지요. 마찬가지로 마지막 석양 길을 따뜻하게 해줄 손도 필요합니다. 부디 그 손이 여러분이기를 바랍니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는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복지 연구에 몰두해 온 노인문제 전문가다. 재가요양보호서비스가 주요 관심사다. 저서로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이 있다. 치매미술전시회(2005년)를 기획하기도 했다. 고령자 연령차별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땄다.블로그(blog.naver.com/weeny38)활동에도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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