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오피니언
아이뉴스24 홈 프리미엄 엠톡 스페셜 콘퍼런스
IT.시사 연예.스포츠 포토.영상 게임 아이뉴스TV
오피니언 홈 데스크칼럼 기자칼럼 전문가기고 연재물 스페셜칼럼 기업BIZ
Home > 오피니언 > 릴레이인터뷰
[김광일의 릴레이 인터뷰]박환우 성호전자 사장
2007년 07월 03일 오전 08:58
  • 페이스북
  • 0
  • 트위터
  • 0
  • 구글플러스
  • 0
  • 핀터케스트
  • 0
  • 글자크게보기
  • 글자작게보기
  • 메일보내기
  • 프린터하기
안녕하세요, 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코너입니다. 아태위성산업의 류장수 사장의 위성사업 이야기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기업가가 성공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요소들이 필요하지만, 식지 않는 열정이 으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 인터뷰였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찾아오는 숱한 우연과 행운도,용광로 같이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있을때 마법에 걸린 듯, 성공의 열쇠로 연결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류장수 사장이 추천한 122번째 릴레이인터뷰 주인공은 컨덴서생산 30년여의 역사를 갖고 있는 국내 대표 컨덴서업체 성호전자 박환우 사장입니다.

“은행의 노조위원장을 지낸 샐러리맨에서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른 CEO 입니다. 중소기업도 왜 전문경영인체제가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경영자입니다.”

두 사람은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 때문에 알게된 사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구로디지털단지내 5분 거리에 있을만큼 가까이에 있고,모임을 통해 자주 보는 멤버라고 합니다.

샐러리맨,노조위원장출신에서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른 성호전자 박환우 사장이 어떤 과정을 통해 최고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올랐는지,그의 경영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구로디지털단지내에 위치한 전자부품 컨덴서생산업체인 성호전자는 구로단지내에서 천연기념물 같은 회사로 통한다. 이 곳에서 34년째 전자부품을 생산하고 있다면 다들 깜짝 놀란다.

전형적인 굴뚝기업이지만 탄탄한 성장세를 기반으로 벤처집적단지로 탈바꿈한 구로디지털단지내에서 여전히 터줏대감으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성호전자는 중소기업으로는 드물게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한 이후 제 2의 성장기를 구가하고 있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 박환우 사장은 2002년 CFO 부사장으로 영입된지 불과 1년만인 2003년,CEO의 자리에 오른 전문경영인. 박 사장은 성호전자 사령탑을 맡은지 5년만에 회사덩치를 무려 5배나 키워내 컨덴서업계 '마이더스 손'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 사장은 특히 가격경쟁력에 밀려 갈수록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 역시 제 2의 도약을 위해 전문경영인체제가 새로운 대안이 될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박 사장은 작은 키에,다부진 모습이다. 그는 매우 수수하고 격의없는 스타일이다. 50대 초반의 나이지만,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투박한 화법이지만, 자신감과 강한 전투력이 묻어난다. 박 사장은 재무통답게 아주 안정감을 주는 CEO다.
그는 매우 보수적인 경영스타일을 고집한다. 항상 먼저 준비하고 후일을 대비하는 게 그의 경영기법. 새로운 신규사업과 중국 현지진출 등 해외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명쾌하다. 박 사장은 젊은 시절,산전수전을 다 겪은 경험탓인지, 왠만한 난관과 어려움에는 눈도 끔쩍하지 않는다.

밑바닥생활과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박환우는 닥쳐올 위기와 난관을 철저히 예측, 사전 차단하는 완숙한 경영수완을 자랑한다.

성호전자는 1973년 설립된 필름콘덴서 전문업체. 일본신영이 51%투자해 출범했지만,89년 현 박현남 회장이 직접 투자, 인수를 하면서 현재의 성호전자로 탈바꿈했다.

국내 공장 및 중국 주해,위해 2곳 공장에서 컨덴서, 전력공급장치 등을 생산,연간 720억원(중국 120억원포함) 규모의 매출을 보이고 있는 국내 대표 전자부품업체다. 주 고객은 삼성전자, LG전자, 휴맥스 등 선두기업 일색이다.

◆ 허허벌판에 선 열다섯 청춘

“돈벌면 언젠가는 같이 모여살수 있을거야.” 1970년 1월 1일, 서울행 비둘기호 열차에 몸을 던진 15살 박환우는 창밖을 응시하며 굳게 결심을 한다.

서울역에 도착한 박환우는 살을 에는 영하의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물어물어 북아현동 큰 형집을 찾아간다. 찢어지는 가난에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그렇게 무작정 상경한다.

6.25직후 폐허의 시골마을, 전남 강진군에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늘 먹을게 부족했던 찌든 가난의 세월이었다. 9남매의 7번째로 태어난 그가 중학교를 졸업한 것도 감지덕지였다.

15살에 생활전선에 뛰어든 박환우의 기막힌 억척 인생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의 강인한 생존본능과 거친 장사기질은 어릴때부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터득한 습관 그 자체다.

어린 박환우가 서울에서 처음 한 일은 남산도서관 식당에서 우동파는 일. 한달 월급은 2천원. 당시 우동 한그릇 값은 300원하던 시절이었다. 월급이 너무 적어 3개월만에 그만두고, 염창동에 있는 쉐타 짜는 편물공장으로 옮긴다. 월급은 1만4천원으로 꽤 많았다. 대신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꼬박 13시간을, 그것도 서서 일을 해야하는 강행군이었다.

평소 제대로 먹지도 못해 키도 작고 왜소했던 열다섯 박환우에게 매일 13시간씩, 꼬박 서서 일하는 것은 중노동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편물공장에서 일한지 10개월만에 결국 쓰러지고 만다. 체력이 바닥나 더 이상 일을 할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다행히 1971년초, 월남전에 참전했던 큰 형이 귀국하면서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우린 형제가 많으니 장사를 하자.” 1971년 2월, 형과 남대문시장안에 등산용품 가게를 열었다. 당시 등산은 지금의 골프처럼 귀족스포츠로 인식되던 때였다.

“당시 여가생활을 즐기는 붐이 일었죠. 그 시절 등산복을 입고 명동에 나가면 부자로 취급받던 시절이었어요. 지금의 골프와 비슷했습니다.”

박환우는 놀랍게도 뛰어난 장사 수완을 갖고 있었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그는 손님을 능수능란하게 맞으면서 제품을 잘도 팔았다. 그는 뛰어난 장사꾼이었다.

그가 오늘날 고객과 직원들을 설득시키는데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이때의 경험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거의 혼자서 물건을 팔았다. 장사가 잘돼 3년간 먹고살 정도의 돈을 벌었다.

3년이 지난 1974년, 19살 박환우는 큰 결심을 한다. 손님들마다 “그나이에 벌써부터 돈벌 필요가 있느냐?”, “왜 대학 안가느냐”는 질문을 수도없이 들었던 박환우는 자신을 돌아보며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다. 대학생이 된 동창들의 교복이 그렇게 멋지게 보일수가 없었다.

시장바닥 장사꾼으로 주저앉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는다. 그 것은 그의 인생을 뒤바꾸는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1975년초, 대학 진학을 결심한다. 어린 나이에 거친 시장바닥을 누빈 박환우는 이미 세상물정에 눈을 뜬,강인한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박환우,그는 누구인가
55년 전남 강진생.건국대 경제학과 졸업(76학번). 미 콜로라도 주립대 MBA과정수료.한국수출입은행에서 20년간 근무한 수출금융통이자 재무전문가.수출입은행 노조위원장 출신.2002년 성호전자 부사장 CFO로 입사,2003년 CEO 취임. 합리적이고 매우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 뛰어난 기획력과 강한 추진력이 강점. 솔선수범하는 자세와 뛰어난 친화력으로 주위 신망이 매우 두텁다는 평
취 미등산(자일도 타고,땀흘리는 운동 좋아함)
운동골프(핸디는 20) 독서.글쓰기(신문기고를 자주할만큼 글쓰는 것 좋아한다)
존경하는 CEO서두칠 동원시스템즈사장(솔선수범하고 끊임없는 학습열정은 본받을만하다)
친한 IT맨이용문 동양이앤피 사장, 류장수 아태위성산업 사장, 양기곤 벨웨이브사장,송호근 YG-1 사장
추천 서적 지금은 전문경영인시대(서두칠 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안철수 저)
개인적인 꿈 전문경영인으로 크게 성공하고 싶다


◆ '쩐과의 전쟁', 벼랑끝에 핀 야생초

“박환우 학생, 학점이 모자라 퇴학조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박환우는 요즘도 가끔 이런 악몽에 시달리다,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벌써 30년도 넘은 20대 초반 대학시절 얘기인데, 당시 얼마나 대학졸업에 대한 부담이 컸으면 지금도 그런 악몽을 꿀까?

대학 4년간 학비, 생활비는 물론 14개월간 보충역(방위) 기간 동안의 생활비를 혼자 해결해야 했던 그에게 졸업장은 절체절명의 목표였다. 늘 꿈에 가위를 눌릴만큼 등록금과 학점은 그의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였다.

1975년초, 가게를 그만두고,곧바로 검정고시에 도전한다. 친구들이 대학 2학년일 무렵이니 동창들보다 3년이 늦은 4수생인 셈. 형들이 크게 반대했지만,그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19살 박환우는 이미 스스로 인생을 헤쳐나갈만큼 성숙한 청년이었다.단칸방을 얻어 자취생활을 시작했다.이 때부터 박환우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그 것은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긋는 승부수였다.

5년만에 다시 시작한 공부. 1년 내내 하루 평균 4시간이상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독하게 공부에 매달렸다. 그해 8월, 검정고시 합격, 3개월후인 이듬해인 1976년, 건국대 경제학과에 당당히 합격한다. 다시 책을 잡은지 딱 11개월만에 이뤄낸 성공이었다.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에게 실패는 상상도 할수 없었다. 이 때의 경험은 훗날 그가 사회인으로서 성공할수 있었던 긍정적 자신감의 원천이 된다. “그 때 저는 뭔가에 미쳐 하루 24시간 매달려 집중하면 시간의 길고 짧음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대학생 박환우는 미팅하고 술마시고, 놀러다니는 한가로운 대학생활과는 담을 쌓는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위해서는 방과후 저녁시간에는 과외 아르바이트에 매달려야 했다. 장학금은 절대 놓칠수 없었다. 보충역(방위)근무 14개월은 목돈을 벌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전두한 정권이 들어선 1980년, 과외금지조치가 내려지면 박환우는 그야말로 ‘쩐과의 전쟁’을 치른다. 마지막 두학기를 앞두고 결국 형들에게 도움을 청해 겨우 졸업장을 손에 넣었다. 물론 빌린 돈은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다 갚는다. 그는 철두철미한 젊은이였다.

술마시고 여자친구 사귀고 놀러다니는 것은 그에겐 사치스런 일일뿐이었다. 그의 대학생활은 한치 여유도 없는 ‘돈과의 치열한 전쟁’그 자체였다.

15살부터 시장바닥을 누빈 그는 혼자 벌어 대학 졸업장을 움켜쥘만큼 어떤 거친 풍파에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 강인한 ‘야생초’같은 20대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 박현남 회장과의 운명적 만남

1982년 여름, 박환우는 깊은 시름에 잠긴다. 당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지 불과 1년만에 회사를 그만둬야할 상황에 처했기 때문.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81년 12월, 나중에 사업할 요량으로 종합상사인 금호실업에 입사한다.

해외지사에 근무하며 무역업무를 터득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입사하자마자 회사상황이 급격히 나빠져 결국 10개월만에 그만둘수 밖에 없었던 것.

무일푼에 곧 결혼도 해야하는 박환우로써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게 급선무였다. 대우도 좋고, 안정적인 은행을 택한다. 당시 상대출신인 그는 은행은 마음만 먹으면 입사할수 있었다.

1982년 한국수출입은행에 입사한다. 2002년 퇴사까지 그는 한국수출은행에서 20년간 일하며 금융전문가로서 발돋음한다. 하지만 1989년, 동창생이자 현 성호전자 창업주인 박현남 회장을 만나면서 박환우는 또한번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89년,박 회장과 함께 성호전자를 설립한다.당시 박 회장은 세운상가에서 전자부품유통업을 하고 있었다.박환우는 박 사장에게 유통사업을 법인으로 전환,제조업에 뛰어들 것을 제안한다.박 회장은 박환우와 의기투합,제조업에 본격 뛰어든다.

성호전자가 세운상가내 전자부품유통업체에서 국내 대표적 전자부품인 컨덴서생산업체로 대변신을 하는 순간이었다. 박환우는 성호전자의 자금 및 투자, 인수합병에 필요한 재무적 일을 척척 처리했다. 몸은 수출입은행에 다니고 있지만, 실제는 성호전자 CFO역할을 수행한 것.

박환우는 곧바로 합류하라는 친구의 요청을 뿌리치고, 은행에 다니면서 친구를 도와 성호전자를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이때부터 사업가로써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는 기업을 경영할 것이라고 판단,필요한 경험을 풍부하게 쌓는다. 1994년 노조위원장을 2년간 맡은 것도 계획된 수순이었다. “얽히고 상충된 조직전체의 중재자역할을 해보고 싶었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조정해서 한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게 바로 경영이라 생각했죠.”

중소기업지원 금융업무에 나선 것도,기획팀장을 하면서 신용보증기금,수출입공사 등 관련 기관 단체 실무자와 탄탄한 인맥을 쌓은 것도 훗날을 염두에 둔 준비된 수순이었다. 노조위원장을 지내면서 쌓은 금융노련 인맥은 전 금융권을 커버할 정도로 방대하다.

그 와중에 박현남 회장의 ‘SOS’는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박환우는 때를 기다린다.2001년 성호전자의 코스닥등록업무 역시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그의 성호전자 지원업무는 13년간 이어진다.

성호전자,어떤 회사인가
설립일73년
자본금87억원
직원수 170명 주해성호전자(232명) 위해한성성호전자(183명)
사업분야필름콘덴서,전원공급장치(PSU)
경영목표 세계적 전자부품업체로 발돋음
매출액 720억원(중국 법인 120억원 포함)


◆ 중학 동기동창의 ‘아름다운 경영’

“이제는 자네가 직접 나서서 도와줘야할 것같네. 중국 제 2공장도 설립해야 하고.전체 관리를 맡아주게.친구라 모시는게 절대 아니네. 15년간 지켜본후 결정한 일이니,제발 맡아주게.”

2002년 가을, 박 회장이 또다시 간곡하게 요청했다. 13년간 바깥에서 업무지원을 하면서 두 사람의 신뢰는 공동창업자에 버금갈 정도로 탄탄했다.

오랜 시간 봐오면서 최적의 전문경영인으로 결론내린 터에, 회사가 커지면서 조직관리측면에서 조금씩 힘이 부치는 것을 느낀 박 회장은 결국 2002년 최후 담판에 나선 것.

창업주 박현남 회장과 박 사장은 중학교 동기동창. 박 회장은 97년 진영전자에 입사,일본투자자금이 빠져나갈 때 회사를 인수한다. 주인이었던 재일동포는 젊은 박 회장의 패기넘치는 모습에 반해 회사를 선뜻 넘겼다.

이후 박 회장은 회사를 키우는 과정에서 박환우 사장에게 자문을 구하곤 했고, 그런 인연은 13년간 이어졌다. 결국 박 회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2002년, 성호전자에 합류한 것.

박환우는 2년간 해외투자심사역을 맡을 당시, 중소기업 CEO들이 양적성장과정에서 해외법인, 국내 법인 모두를 혼자서 맡다가 무너지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던 터라, 자신이 기여할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2002년 10월, 박환우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중소벤처기업 전문경영인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부사장(CFO)으로 취임한다. 입사할 당시 성호전자는 직원수 100여명에 매출 170억원규모의 전형적인 중소기업규모였다.

합류 1년만에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내며 전문경영인으로써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의 첫 작업은 시스템을 갖추는 일. “중소기업이다 보니, 인적자원이 매우 취약했습니다.사고방식 자체에 큰 변화를 줘야 했습니다.”

입사 1년만에 모든 단기자금을 장기로 전환했다. 환리스크나 선물환거래에 따른 자금적 리스크 등 모든 자금운영상의 위험요소를 모조리 제거했다. 해외공장운영에 대해서는 박 사장은 특유의 ‘안전제일주의’ 기조를 유지한다.

“중국시장은 단순하게 싼 인건비만 보고 들어가면 무조건 망합니다. 마케팅과 기술개발부분은 한국에 그대로 둬야 합니다. 다들고 나갔다간 망하기 십상입니다.” 영입된지 1년만에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전격 승진한다.

박 사장은 기업성장에 있어 핵심적인 경영노하우는 ‘관리’라고 진단한다. “창업후 무조건 기술은 있어야겠죠. 두번째는 돈과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마케팅이죠. 하지만 기업성장의 핵심적인 열쇠는 경영관리입니다. 마지막은 결국 관리의 싸움입니다.”

2002년말 전원공급장치인 PSU사업에 신규 착수했다. 2004년에는 기존 브라운관등 디스플레이용 컨덴서 중심에서 LCD와 PDP용 제품생산에도 본격 나선다. 2006년말, 중국 산동성 위해에 현지공장을 설립, 필름컨덴서,PSU 현지생산에 착수한다.

합류당시 170억원규모에 이르던 매출규모는 2003년 282억원, 2004년 309억원, 2005년에는 379억원, 지난해는 국내 470억원, 중국법인 100억원 등 총 570억원규모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올해는 중국법인 120억원을 포함,720억원 규모의 매출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성호전자의 주 고객은 삼성전자, LG전자, 휴맥스 등 글로벌 기업들 일색. 그는 입사 1년만에 샐러리의 꿈, CEO의 자리에 오르며 빠르게 뿌리를 내린다.

성호전자는 지금도 박 회장은 중국 법인을 전담하고, 박 사장은 전체 재무 및 전략, 한국법인을 맡는 투톱체제를 유지한다. 박 회장은 “이 친구를 영입한게 가장 큰 성공이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로 깊은 신뢰감을 과시한다.

박 사장 역시 자신이 창업주에게 받은 지분의 일부를 영업전문가를 스카우트하는데 선뜻 내놓을 정도로 사심없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중학 동기동창의 아름다운 ‘동거경영’ 덕에 성호전자는 제 2의 도약기를 맞으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 전문경영인, 그만의 노하우

성호전자 창업주가 어떤 이유로 입사 1년만에 그를 CEO로 전격 발탁했을까? 재무전문가 박환우는 뛰어난 조직장악력으로 입사 1년만에 크고작은 갈등요소를 말끔히 해소하는 탁월한 조직관리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뛰어난 대인관계와 탁월한 비즈니스협상력 역시 그의 장기다. CEO로서 그가 꼽는 첫번째 가치는 ‘고객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스스로 먼저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배려해주는게 핵심이란다. 고객사인 대기업 임원진이나 중국법인 임원, 한국 법인 직원 모두, 그에겐 고객이다.

“사장이 모든 것을 혼자할수 없습니다. 결국 CEO의 역할은 직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해야한다는 점입니다. 그럴려면 직원들의 마음을 얻어, 그들이 따라야 합니다. 결국 소신껏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성취감을 줘야합니다.”

“이제는 직원들에게 무조건 희생하라고 강요할수 없습니다. 더이상 속지 않습니다. 경영진부터 투명하고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직원들은 절대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늘 ‘자기분야 전문가가 돼라’고 주문한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자기스스로 상품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능력있는 사람은 절대 불안하지 않습니다.”

샐러리맨의 꿈,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를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박 사장이 꼽는 첫번째 키워드는 뜻을 키우는 ‘야망론’이다. “사원때도 사장처럼 생각하고 행동할수 있어야 합니다. 적당히 편하게 지내자는 생각이 가장 나쁩니다. 월급받고 경영수업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직장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하찮은 일에서도 그 일이 주는 메시지와 교훈을 얻을수 있어야한다는 것. “예를 들면 은행시절 잘나가는 명문대출신 직원들은 지원업무가 주인 서무팀에 발령나면 곧바로 사표를 던집니다.물먹었다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나중에 사장이 되면 필요한 일이니, 배워두자고 생각하면 늘 즐겁고,창조적으로 일할수 있는 거죠.”

조직관리 노하우의 핵심은 ‘경청’이란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고,이해를 해주는게 매우 중요합니다.경영진이라고 일방적으로 말하면 안됩니다.직원들의 말을 잘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해결됩니다.”

무엇보다 CEO의 가장 강력한 설득기법은 ‘솔선수범’이란다.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고,존경도 하지 않는다는 것.재무전문가인 그가 제안하는 재무관리 노하우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의 리스크관리 핵심은 ‘우산론’이다.

“재무적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서는 햇빛이 내리쬘 때 우산(자금)을 챙겨놔야 합니다. 즉 우산은 비올 때 (은행에)얻으러 가는게 아니라, 햇빛이 쨍쨍할 때 얻으러 가야 합니다.” 회사가 어려울 때는 아무리 돈빌려 달라고 해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회사가 잘나갈 때 한도내에서 최대한 자금적 여유분을 챙겨놔야 한다는 것. “대부분 중소기업들은 잘나갈때는 전혀 관심이 없다가 자금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은행을 찾죠.그 땐 이미 늦습니다. 실무자가 부담돼 도와줄수가 없죠.”

그의 재무적 힘은 항상 여유있을 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어려울때를 대비하는 ‘우산론’이 핵심이다. CEO 박환우의 꿈은 성호전자를 세계적 종합부품회사로 키우는 것이다.

“기업은 사회적으로 책임이 큽니다.작지만 강한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보는게 꿈입니다.늘 변하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는 그런 작고 강한 성호전자로 키우고 싶습니다.”

은행 노조위원장 자리를 거쳐 40대 후반의 나이에 중소기업 CEO자리에 오른 박환우 사장. 그는 규모의 경제에 접어든 중소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문경영인체제가 유일한 대안임을 보범답안처럼 보여주는 검증된 최고경영자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 사장은 개인적으로 동원시스템즈 서두칠 사장을 가장 존경한다고 합니다.회사가 어려울 때 솔선수범하는 자세는 모든 CEO들이 본받아야할 대목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인카드도 안쓰고 성직자처럼 자신을 절제하는 모습과 끊임없이 배우는 학습열정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CEO의 모법답안같다고 평가했습니다.

/김광일 객원칼럼니스트(GCM 대표이사) goldpar@gcm.co.kr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IT 시사 문화 연예 스포츠 게임 칼럼
    • 아이뉴스24의 뉴스를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브랜드웹툰홈바로가기
    카드뉴스 더보기 >

    SPONSORED

    칼럼/연재
    프리미엄/정보

     

    아이뉴스24 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