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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릴레이 인터뷰]박성동 쎄트렉아이 사장
 
2007년 01월 15일 오후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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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코너입니다. 지난한해 릴레이인터뷰 코너를 애독해주신 독자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아이디스 김영달 사장의 창업성공기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김 사장이 추천한 119번째 릴레이인터뷰 주인공은 인공위성이라는 독특한 분야에서 성공반열에 오른 쎄트렉아이 박성동 사장입니다.

"자체 개발한 인공위성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수출에 성공한 기업가입니다.국산 소형 인공위성을 수출하는 유일무이한 벤처기업가입니다."

박 사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은 김영달 사장은 박 사장의 고교, 대학 1년후배입니다. 두 사람은 과기대 KAIST를 나란히 졸업한 선후배 사이입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기업을 일궈 성공기업가로 성장한 두 사람은 절친한 선후배이자, 사업의 동반자라고 합니다.

쎄트릭아이 박성동(40) 사장이 어떤 기술을 갖고있기에 국내 독보적인 기업인지, 그의 창업과 사업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벤처산업계에서 가장 무모한 사업아이템은 과연 무엇일까?

실제 수많은 기업가들이 기술적으로 극복하기 힘든 아이템이나 시장과 동떨어진 사업품목에 매달리다 쓰러진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삼성전자,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이 주무대인 종목에 뛰어들었다가 '규모의 경제'에 몰려 몰락하는 경우 또한 무모한 아이템을 선택한 필연의 결과다.

기술, 시장, 경쟁사 등 여러 요소가 최악인 무모한 아이템은 수많은 패자들을 양산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모험가들에 의해 수없이 시도됐다고, 무수히 사라지고 있다.

최근 벤처 아이템중 '무모함의 극치'로 평가받는 인공위성 시장에 뛰어들어 성공반열에 오른 토종 벤처기업이 등장, 세계 항공우주산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8년전, 열혈청년 엔지니어들이 국산기술로 인공위성을 개발, 해외 10여개 나라에 위성을 팔아 수백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 과연 가능할까?

대전 대덕밸리내에 위치한 쎄트렉아이가 벤처산업계의 상식을 깨고 세계 소형 인공위성역사를 새롭게 쓰고있다.

이 회사의 사업아이템과 성장사, 최근의 비즈니스모델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같은 무모한 아이템으로 어떻게 살아남을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떨쳐버릴수 없다.

박성동 사장은 필자가 만난 수많은 CEO중에서 '무모한 사업아이템'으로 치면 단연 으뜸인 기업가다.

대충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그렇게 시장진입장벽이 높은줄 몰랐고, 그때그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 보니, 8년간 살아남을수 있었고, 그 덕에 이제는 세계 소형 인공위성시장을 주도하는 메이저 플레이어로 자리잡았다는 설명이다.

참으로 기막힌 자기겸손이다. 하지만 설명 행간에는 두번다시 절대 하지않을 거란 회한과 스스로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하는 안도의 한숨들이 뒤섞여있다.

놀라운 사실은 무모한 아이템에 무모하게 도전한지 8년차에 접어든 지금,박 사장은 이제는 세계 시장을 주도할만한 기술력과 영업력, 향후 사업포트폴리오에 대한 해답을 찾은 듯 자신감이 넘쳐났다.

박성동은 창업 8년차의 엔지니어출신 CEO답지않게 탄탄한 경영수완을 자랑한다. 인공위성사업이란게 프로젝트하나에 100억원대가 넘는 큰 규모인 탓에 한두해만 수주실적이 없으면 속칭 '손가락을 빨며' 굶어야한다. 그만큼 안정적인 현금유동성을 갖고가기가 참으로 힘든 분야중 하나다.

게다가 고객이라야 중동지역, 동남아 개도국 10여개국 남짓이 고작이다. 즉 전세계적으로 물건 팔데가 빤하다. 그만큼 시장구도는 치열하기 이를데없다. 다른 품목처럼,글로벌 선두기업을 피해 중저가 시장으로 방향을 트는 등의 여지도 없다.

신제품을 내놓고 새롭게 시장을 만드는 개념도 없다. 그저 프로젝트 하나 수주하면 대략 2,3년간 위성하나만 개발해야하는 형태인 탓에 '수주' 자체가 생존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박 사장은 나름의 독특한 생존노하우를 바탕으로 세계 무대를 누비며 세계 인공위성시장의 '뉴프론티어'로 급부상하고 있다.

박 사장은 아주 차분한 스타일이다. 엔지니어출신이지만, 각종 MBA및 경영자과정, 그리고 스스로 경영관련한 책들을 섭렵한 탓에 해박한 경영노하우를 갖고있다.

그는 베푸는 경영자다. 직원들에 대한 대우, 복지에 대한 투자는 매우 관대하다. 그는회사를 시스템과 프로세스로 돌아가게할만큼 완숙한 경영수완을 자랑한다.

개발, 영업 등 사업부별로는 중간매니저에 일임한다. 자신은 굵직굵직한 해외 프로젝트수주에 간여하고, 대부분 차세대 사업아이템을 발굴하는 데 집중한다.

적정한 업무분담을 시키지 못하고 이것저것 모든 것에 다 얽매여 정작 중요하고 부가가치있는 일에는 손을 못대는 '몸이 바쁜' 여느 CEO들과는 사뭇 다르다.

여유로운 비즈니스모델 발굴을 위한 해외 서적, 저널지 등을 탐독하며 새로운 트렌드읽기에 많은 투자를 하는 그의 모습은 쎄트렉아이의 탄탄한 미래를 보는듯 하다.

쎄트렉아이는 99년말 설립된 우주항공 전문 벤처기업. KAIST 우주연구센터에서 우리별 1,2,3호 위성을 개발 제작했던 주역들이 나와 설립한 국내 유일의 인공위성개발회사다. 전 직원의 30%수준인 20명이 박사급일 정도로 뛰어난 맨파워를 자랑한다.

소형지구관측 위성 제작에 필요한 모든 솔루션을 개발, 생산한다. 위성본체와 탑재장치, 지상국 관련 기술 및 설비를 제작한다. 올해 역시 220억원대의 매출을 낙관한다.

지난해 말레이지아에 190억원규모의 위성 '라작샛'을 수출한데이어 최근 중동, 유럽등 수개국에 200억원대가 넘는 프로젝트를 수주, 인공위성제작에 한창이다.

최근에는 위성관련 첨단기술을 활용, 방사선감지기, 군용위성, 로봇 등 무기체계에 소요되는 각종 최첨단 제품개발에 성공, 방위산업시장에도 뛰어들었다.

◆ 거리로 내몰린 연구원

"여러분들이 과기대, KAIST에서 공짜로 편하게 공부를 할수 있는 것은 다 국민세금덕분입니다. 나중에 반드시 사회에 환원해야 합니다."

유학생모집 설명회에 나선 국내 소형위성 1인자 최순달 교수의 일장훈시를 듣던 박성동은 칠판에 적어놓은 'Devotion(헌신)'이란 단어에 뛰는 가슴을 억누를수 없었다.

그자리에서 유학을 결심한다. 98년 과기대 4학년이던 박성동은 4명의 동료와 함께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3년간의 영국 유학생활은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그는 써리(surrey)대학에서 소형위성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인 스위팅교수에게 지도를 받는다.

그가 훗날 소형위성 전문가로 발돋음할수 있었던 것도 이때의 수학(修學)이 결정적이었다. 박사과정중이던 박성동은 92년 여름 귀국,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소형위성 연구에 승부를 건다.

그는 국내 최초 지구관측 위성인 우리별 1,2,3호를 개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1호 개발시는 통신분야를, 2호때는 본체팀장을, 그리고 97년부터는 연구개발실장을 맡아 사실상 우리별위성 연구를 진두지휘한다.

3호 개발때는 50여명의 연구원을 통솔하는 프로젝트매니저로 나선다. 한창 물이 오른 99년, 박성동은 뜻하지 않는 정책변화로 인생최대의 시련기를 맞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는 뜻밖에도 박성동으로 하여금 빠르게 사업가의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99년 중순, 과기부는 당시 인공위성연구센터와 항공우주연구원에 대한 위성중복연구 비난여론이 높아지자, 두 기관의 통폐합을 전격 결정한다.

인공위성연구센터는 문을 닫게될 상황을 맞은 것. 연구원들은 결사 반대했다. 결국 핵심 멤버들은 통합대신 창업을 통한 '홀로서기'를 선택한다.

99년 12월, 7명이 사직서를 쓰고, 쎄트렉아이를 설립, 사업에 뛰어든다. 그야말로 무모한 결정이었다. 나머지 핵심인력중 상당수는 병역특례가 걸려있어, 사표를 던질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소형위성을 만들어 팔겠다는 무모한 사업이 시작된다.

박성동은 센터의 흡수통합에 대비, 후배들 취업지원 등의 정리작업이 끝나는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의대에 재진학, 의사의 꿈을 다시 펼치리라 마음먹는다. 그의 운명은 99년말 쎄트렉아이가 설립되면서 격동의 세월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박성동, 그는 누구인가?
67년 대구생.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86학번)졸. 영국 써리대 위성통신공학 석사출신. 소형 인공위성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영국 써리대학 스위팅교수로부터 수학(修學). KIAST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우리별 1,2,3호 위성개발 주도. 우주개발진흥실무위원회 위원.
취 미조깅
감명깊게 읽은 책Only The Pananoid Survive(Andrew Grove),한계를 넘어서(앨리골드랫)
존경하는 CEO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 고 이병철 삼성그룹회장
친한 IT맨아이디스 김영달 사장, 아이쓰리시스템 정한 사장
10년후 모습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 필연적인 자리, CEO

"7개월간 매출하나 없으니…실장님 말고는 영업할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창업멤버들이 생존을 위해 더 이상 연구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발용역을 줘 생존기반을 마련해주겠다던 연구센터의 약속은 물거품이 됐고, 첫 위성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은 누구도 기약할수 없는 '꿈'이었다.

2000년 여름, 박성동은 동료, 후배들의 등쌀에 떼밀려 어쩔수 없이 쎄트렉아이 대표를 맡는다. 국내외 위성전문가를 가장 폭넓게 알고있는 그가 물건을 팔수 있는 적임자라고 이구동성으로 몰아부쳤기 때문.



의대진학을 결심했던 박성동은 "딱 5년만 하고, 그후엔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할수 있도록 놓아달라"는 약속을 받아낸후 사장자리를 수락한다. 모든게 막막했다. 당장 팔 제품이 있을리 만무했다.

통상 위성하나 개발하는데 3년이상이 소요되는 데, 누가 갓 설립된 회사로부터 위성을 구매하겠는가? 이때부터 박성동의 기업가적 잠재력이 서서히 발휘되기 시작한다.

한치 앞이 안보이는 안개속,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매출을 만들어낼지 엄두가 나지 않는 막연한 상황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전세계 지인들에게 e메일을 발송했다.

지인들이란 8년간 소형위성연구에 몸담으며 각종 학회, 세미나 컨퍼런스 등에 참석하며 안면을 익힌 세계 각국의 위성전문가들.

놀랍게도 그의 e메일은 탈출구가 없는 암흑천지에서 한줄기 빛을 만들어낸다. 그해 가을, 전혀 예상치 못한 일감이 들어온 것. 싱가포르의 대학에서 3만달러짜리 위성개발관련 교육용역을 의뢰해온 것. 잘아는 싱가포르 지인이 연결시켜준 것.

당시 싱가포르는 소형위성을 개발한다는 계획아래 대학교수 및 연구원 50명에 대한 2주간의 위성교육을 쎄트렉아이에 맡기기로 전격 결정했다. 그의 벤처입문기는 이렇게 위성교육 사업을 통해 시작된다.

◆ 타고난 감각,박성동의 놀라운 영업력

"2년간 200억원짜리? 충분히 할수 있어."

2006년 4월,중동에서 비즈니스미팅을 마치고 귀국길 비행기에 오른 박성동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알고지내던 호주의 모대학 교수가 중동으로 한번 날라오라는 전갈을 받고 큰 기대없이 중동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였다.

조국의 인공위성 발사 프로젝트 사업책임자로 부임한 그 교수의 제안덕에 박 사장은 2006년 4월, 무려 200억원규모의 위성제작 프로젝트를 수주하는데 성공한다. 영업은 이렇듯 박 사장의 글로벌인맥을 통해 시작된다.

2001년 4월, 말레이지아로부터 날라든 한통의 전화에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인공위성 탑재장치, 지상국 등에 대한 공동개발사로 쎄트렉아이가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은 것.

말레이지아 정부가 전액 출자한 위성개발회사의 CEO는 다름아닌 97년부터 알고지낸 그의 지인. 두 사람은 97년 박 사장이 개인적인 도움을 주면서 알게됐다.

그는 이렇게 2001년 4월부터 연말까지 총 50억원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는데 성공한다. 이 때부터 회사는 대학 동아리같은 분위기를 뒤로하고 기업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해외에서의 그의 유명세는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특히 박성동이 속해있던 위성연구센터는 98,99년, 세계 위성전문가들의 지대한 주목을 끌었다.

영국이 소형위성 기술을 이전한 10개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게 독자적으로 위성을 제작하는데 성공했기 때문. 게다가 박 사장 주도로 개발한 우리별 3호위성의 경우 대형 상용위성의 기술방식을 세계 처음으로 적용해 주목을 끌었다.

이 일을 계기로 박성동은 각종 국제 행사 및 회의에 초청돼 3호위성을 소개하며 많은 명함을 돌릴수 있었다. 쎄트렉아이의 영업력은 그렇게 박 사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밑천삼아 하나둘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사업초창기, 고민은 늘 수익모델. 그는 기막힌 수익모델을 찾아낸다. 그것도 폭발적인 매출을 만들어내는 아이템이다. 그의 천부적인 사업감각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생각해낸 '팔 물건'은 바로 지구관측 인공위성 공동개발 프로그램. 인공위성을 발사하고자하는 나라에 "개발을 도와줄테니 개발비를 대라"는 식의 제안이었던 것.

고객들에게 인공위성을 개발할수 있는 희망과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컨셉. 개발비만 부담하면 개발해주고, 개발 결과물의 소유권은 모두 고객이 갖도록 했다.

그의 '봉이 김선달'같은 수익모델은 놀랍게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독자적으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싶은 개도국들에겐 안성마춤이었다. 그의 이런 파격적인 세일즈기법은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했다.

쎄트렉아이는 초창기부터 지구관측 소형위성 개발에 필요한 이른바 '빅3 핵심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즉 위성본체는 물론 지구관측에 필요한 디지털카메라 및 통신시스템, 충격유지시스템, 중앙처리장치(CPU) 등을 갖춘 탑재장치, 그리고 위성신호를 지상과 교신하는 지상국 등 3가지 분야의 기술을 몽땅 확보하고 있었던 것.

물론 세가지 기술 각각은 대단한게 아니었다. 용역을 맡기면 금방이라도 해줄수 있는 회사가 전세계에 널려있기 때문. 하지만 3가지 기술을 한 회사가 모두 갖고있는 경우는 쎄트렉아이가 세계에서 유일했다.

박 사장의 '위성 공동개발'상품이 팔릴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세계 유일한 '빅3'기술보유 회사라는 점 때문이었다.

"위성을 발사하고 싶은 국가입장에서는 한 회사에서 3가지 기술을 한꺼번에 이전받고 싶어하죠. 개발기간이나 가격,통제력 등 한 회사를 통해 하면 여러모로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개도국에게 독자 위성을 만들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계속 도와주다 보면 지속적으로 수요가 생겨날수 있다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공동개발 기간 1,2년간은 실탄(운영자금)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누이좋고 매부좋은 컨셉이었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으로 그만이 해낼수 있는 놀라운 접근법이었다. 그는 이를 통해 안개속을 헤치며 CEO로서의 뛰어난 능력은 발휘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인공위성은 매우 복합해, 실전 제작경험없이는 설계도면이 있어도 개발할수 없을만큼 기술진입장벽이 매우 높다는 점도 그가 과감히 승부수를 던질수 있었던 '히든카드'였다.

즉 아무리 기술을 이전해줘도 독자적으로 인공위성을 개발, 발사하기 힘들다는 경험을 통한 우월적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1년에 30~40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3년이 지나자 쎄트렉아이의 실적은 갈수록 화려해졌다.

쎄트렉아이,어떤 회사인가
설립일99년 12월
자본금6.6억원
직원수 80명
사업내용소형지구관측위성 턴키 솔루션(위성본체,탑재장치,지상국)
비전 2015년까지 소형지구관측위성 솔루션분야 세계 1위기업으로 등극
매출 220억원(2007년기준)


◆ 박성동의 질주본능

"방위사업청 발주 위성수신지상국사업자 선정결과, 우리 회사가 선정됐습니다."

2006년 10월, 박성동 사장은 가슴의 응어리가 내려가는 속시원한 감격의 순간을 맛본다.

회사는 설립당시 과기부는 물론 위성관련 국책연구소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다. 정부정책에 반발, 뛰쳐나가 설립한 회사였기 때문. 어쩔수 없이 국내 시장은 아예 포기하고, 해외시장에만 매달릴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국내 방위산업 공공시장에서 삼성, LG 등 대기업을 제치고 당당히 150억원짜리 국방프로젝트 주사업자로 처음 선정된 것은 감격스런 결과였다.

"벤처기업이 국방관련 방위산업시장에서 대기업을 제치고 주사업자로 선정된 것은 아마 처음일 겁니다. 대기업들이 밑으로 들어오라는 요청과 협박이 수도 없었죠."

대기업을 제치고 수주할수 있었던 것은 지상국 관련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국내에서 쎄트렉아이가 유일하기 때문.

박 사장은 2004년부터 주위의 시선이 다르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 출범당시만해도 찬밥이었지만, 최근들어 정부의 우주항공산업 육성정책에는 늘 쎄트렉아이가 성공사례로 인용되고 있는 것.

국산 위성기술을 해외에 수출할수 있고, 그 성공사례가 수출 1호기업 쎄트렉아이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만큼 쎄트렉아이의 기술력은 독보적이다. 쎄트렉아이는 사업첫해인 2000년 18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데이어 2001년, 100억원, 2002년 15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2003년 봄, 40억원을 투자해 대전 대덕밸리내 자체 사옥을 설립한다.

이어 말레이지아 위성시스템수주를 비롯해 UAE공군, 아리랑 1호 지상국설치, 싱가포르및 터어키의 소형위성 탑재체, 태국, 대만 위성용부품 수출을 비롯 중동, 프랑스 등 10여개국에 잇따라 시스템 및 탑재체 등을 수출하는데 성공한다.

해외 수출실적이 잇따르자, 국내에서의 주문도 이어졌다. 통신해양기상위성 통신용중계기, 아리랑 3호, 5호 체계 및 탑재체개발 등을 잇따라 수주하는데 성공한다.

지난해는 수주금액만 400억원을 달성했고, 올해도 220억원대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에는 무기체계에 들어가는 군용위성 및 로봇 등 방위산업관련 사업들이 서서히 성과를 내면서 포트폴리오구축 성과를 내고있다.

내년에는 미뤄왔던 기업공개에도 나선다. 이유는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기업인지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세계 우주항공산업에서 쎄트렉아이의 위치는 매출액기준 50위 정도. 박 사장은 2015년 지구관측 소형위성에 관한한 세계 1위 기업으로 발돋음한다는 다부진 청사진을 세워넣고 있다.

◆박성동의 경영, 그리고 성공론

2005년 1월, 박 사장은 KTB로부터 액면가의 20배에 30억원을 투자받기로 전격 결정한다. 투자받을 생각이 전혀없었지만, 2004년 영업실적이 부진하면서 통장잔고가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

더욱이 전력투구했던 국내 영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최대고비를 맞는다. 넘쳐나던 현금사정은 2004년부터 급변했다. 2004년말, 박 사장은 처음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차입경영에 나선다.

문제가 뭘까? 2004년 12월말, 박 사장은 왜 최악의 상황에 까지 왔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수 없었다. 긴 장고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세가지였다.

2,3년후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고, 특히 마케팅을 등한시하고, 내부 관리자에 대한 교육, 업무프로세스등에서 엄청난 문제점이 있었음을 그는 깨달았다.

"돈이 넘치던 2003년, 엄청난 자만심에 빠져있었던게 문제였습니다."

그는 2004년, 직원교육에 전력투구한다. 현 시스템으로는 곧 있을 200억원대 초대형 프로젝트를 도저히 소화할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

그는 기업경영에 필요한 요소들을 세번의 크나큰 계기를 통해 터득한다. 영국 유학은 그가 위성엔지니어로서 삶을 살게한 결정적 계기였고, 94년, 미 록히드마틴사에서의 5주간 교육은 그가 위성전문가로 발돋음하는 데 있어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2003년 미 스탠포드대학에서의 짧은 MBA공부 역시 그에게 기업가정신이 무엇인지를 강하게 각인시키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박성동의 성공론이 궁금하다. 첫번째는 '정직'이다. "정직하지 못하면 절대 성공할수 없습니다. 한순간 모면할수 있지만, 반드시 진실은 드러나게 돼있죠."

두번째 성공론의 주제는 '고민을 잘해야한다'는 것.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고민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한탄과 원망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인정하고, 충만한 마음에서 고민할줄 알아야 합니다."

쎄트렉아이 박성동 사장은 회사를 창업 8년만에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위성개발전문기업으로 키운 진정한 모험기업가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성동 사장은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대전 대덕단지에서만 20년쌔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올 여름 그동안 5년만 사업하고 의대에 진학, 의사돼 사회봉사활동을 하겠다던 생각을 바꿔 CEO로 끝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다고 하네요. 나중에 돈을 벌어 의사를 채용해 봉사하는 방법을 찾는게 빠를 것같아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가 나중에 펼칠 봉사활동이 어떤 것이 될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김광일 객원칼럼니스트(GCM 대표이사) goldpar@gc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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