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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비행기 사고 서바이벌 가이드


하지만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을 운명에만 맡길 수는 없다. 실제로 비행기 사고의 생존률은 의외로 높다. 작년 7월 일어났던 아시아나 214편 사고에서도 승무원과 승객이 적절히 대처한 결과 인명 손실을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었다. 비행기가 착륙 도중 활주로에 충돌해 부서지고 화재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총 307명 중 3명만이 사망했다. 그렇다면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해야 불운한 사람에 끼지 않을 수 있을까. 가능한 생존 확률을 높이는 대처 방법을 알아보자.

흔히 비행기의 뒷자리에 앉는 게 생존률이 높다고 한다. 2007년 미국의 파퓰러 메카닉스는 1971년 이래 미국에서 일어난 20건의 비행기 추락 사건을 조사했다. 이들은 비행기의 좌석을 네 구역으로 나눈 뒤 각 구역의 생존률을 구했다. 그러나 20건 중 11건의 사고에서 뒷좌석에 앉은 승객의 생존률이 확실히 높았다. 11건 중에서 특히 7건의 사고에서는 가장 뒤에 앉은 승객이 가장 유리했다. 이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뒤쪽에 앉을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속설이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실험 결과도 있다. 대담하게도 아예 실제 비행기를 추락시켜서 위치에 따라 충격을 얼마나 받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자동차의 안정성을 검증하기 위해 하는 충돌 실험과 같다. 다만 비행기 추락 실험은 규모가 자동차에 비할 바 없이 크기 때문에 실제 사례가 많지 않다. 1984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와 연방항공청(FAA)가 보잉720기를 추락시킨 적이 있고, 2012년에 다시 NASA가 미국의 디스커버리 채널과 함께 보잉727기를 추락시킨 사례가 있다.

두 번째 추락 실험은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져 대중에게 공개됐다. 그 결과는 앞선 파퓰러 메카닉스의 조사 내용과 흔히 알려진 속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디스커버리 채널은 다큐멘터리에서 비행기가 충돌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먼저 비행기의 앞바퀴가 부러지면서 동체가 충격을 받아 조종사와 가장 앞쪽 승객이 탄 부분이 통째로 뜯겨 나간다.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니 가장 앞쪽의 더미(충돌실험용 인형)가 받는 힘은 12G(중력, Gravity)에 달했다. 날개 부근에 탄 더미는 8G, 꼬리 쪽에 탄 더미는 가장 적은 6G의 힘을 받았다. 뒤쪽에 승객이 탔다면 걸어서 비행기를 탈출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이건 비행기가 앞부분부터 부딪쳤을 때 이야기다. 지난 번 아시아나 214편 사건처럼 뒤쪽부터 부딪쳤다면 오히려 앞쪽이 안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행기가 앞쪽부터 부딪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뒤쪽이 좀 더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는 게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비행 자료를 기록해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블랙박스가 있는 곳이 바로 비행기의 꼬리다. 블랙박스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만큼 꼬리가 충격을 덜 받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무리 충격을 적게 받는다고 해도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면 소용이 없다. 아시아나214편 사고에서도 승객이 비행기 밖으로 튕겨 나가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 충돌 시에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면 안전띠를 매고 '브레이스 포지션'(Brace Position)을 취해야 한다. 브레이스 포지션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머리를 감싸고 팔을 앞좌석 등받이에 붙이는 자세다. 앞에 좌석이 없는 경우에는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감싼 뒤 머리를 무릎에 대면 된다.

보잉727 추락 실험에서는 이 브레이스 포지션이 실제로 유용한지도 알아봤다. 더미 두 개를 비슷한 위치에 앉힌 뒤 하나는 브레이스 포지션으로, 다른 하나는 곧게 앉아 있는 자세로 두고 비행기를 추락시켰다. 조사 결과 브레이스 포지션을 하고 있던 더미는 종아리에 압박을 받아 뒤로 밀리면서 의자 아래쪽에 발목이 부딪쳤다. 발목 골절을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반면, 곧게 앉아 있던 더미는 앞좌석 등받이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뇌진탕을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상체는 급격히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허리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또한, 허공에 날아다니는 파편이 얼굴과 가슴 부위를 때렸다. 더미 실험을 담당한 신디 비르 미국 웨인주립대 바이오공학과 교수는 "브레이스 포지션이 머리를 보호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세"라며 "사고가 날 경우 브레이스 포지션으로 충격에 대비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추락한 비행기가 멈췄을 때 다행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면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연기가 나고 있다면 몸을 숙이고 움직여야 한다. 전원 90초 이내에 탈출해야 하는데, 이른바 '90초 규칙'이다. 추락한 뒤 화재가 발생하고 90초가 지나면 불이 서서히 타다가 산소가 공급되면서 선실 안이 일순간 화염에 휩싸이는 '플래시오버' 현상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모든 새 여객기는 승인을 받기 전에 90초 탈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비상구가 50%만 열린 상황에서 모든 승객이 90초 안에 탈출할 수 있는지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2008년 에어버스의 A380기 시험 때도 870명의 승객이 78초 만에 전원 탈출했다. 물론 실제로는 탈출이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보잉727 추락 실험에서도 비행기의 배선이 튀어나오면서 길을 막아 승객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솔직히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승객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좌석을 마음대로 골라 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앞부터 부딪칠지 뒤부터 부딪칠지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결국 응급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받은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모범 교본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탈 때 비상구의 위치를 확인해 두고, 산소마스크와 구명조끼의 사용법을 숙지하며, 사고가 예상될 경우 브레이스 포지션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몇 가지 쓸모 있는 행동 지침은 있다. 일단 직항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고는 대부분 이착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직항을 이용하면 사고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단단한 물건은 충격을 받았을 때 흉기로 돌변할 수 있으니 가급적 몸에 지니지 말자. 짐칸에도 떨어지면 위험할 정도로 무거운 짐을 올려놓지 말자. 그리고 비행 중에도 항상 안전벨트를 차는 게 좋다.

또한, 술은 많이 마시지 말자. 사고가 났을 때 재빨리 대피하려면 맑은 정신으로 있어야 한다. 게다가 기압이 낮은 공중에서는 평소보다 알코올의 영향을 더 받는다. 비행기 밖으로 빠져나온 뒤에는 폭발에 대비해 최대한 빨리 멀어져야 한다. 새어 나온 연료가 완전히 증발할 때까지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구조를 받으려면 비행기 잔해 근처에서 너무 멀어지면 안 된다.

앞으로 비행기를 타야 할 일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벌벌 떨기보다는 생존 지침을 철저히 숙지한 뒤 확률과 맞서 보자.

글 : 고호관 과학칼럼니스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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