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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축구장 잔디 보호 작전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기 전만 해도 '축구 인프라'는 축구계에서 큰 화두였다. 축구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들이 당시만 해도 열악했던 것이다. 시설분야는 더욱 열악했다. 누구나 상상하는 푸른 잔디 구장도 2000년대 이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축구장에서의 잔디는 경기의 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잔디의 상태가 좋지 않아 곳곳이 패여 있으면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다, 선수들의 부상도 우려된다. 그래서 FIFA에서는 양질의 천연잔디구장을 권고하고 있다. 축구장의 잔디는 땅을 잘 덮을 수 있는 지면 피복성이 좋아야 하고, 격렬한 경기 시 훼손에 잘 견딜 수 있는 내마모력, 훼손 후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재생력과 탄력성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오랜 기간 녹색 빛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축구장의 잔디는 경기 내용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컨디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잔디의 질은 축구 경기에서 중요한 요소다.

◆잔디의 종류, 난지형과 한지형

잔디는 난지형 잔디와 한지형 잔디로 나뉜다. 난지형 잔디는 섭씨 25~30도(℃)에서 잘 자라고, 뿌리가 길고 탄탄하기 때문에 잔디를 낮게 깍아도 잘 견딘다. 또한 고온에 잘 견디고 건조 기후에도 강하다. 하지만 저온에 약해 잎의 색깔이 누렇게 변하고, 동사할 위험이 있다. 대부분의 한국형 잔디가 이에 속한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잔디, 산기슭에서 볼 수 있는 금잔디, 서해안에서 볼 수 있는 갯잔디 등이 있다.

한지형 잔디는 난지형보다 낮은 15~20℃에서 잘 자라고, 저온에도 잘 견딘다. 잎의 녹색이 진하고 생육 기간이 비교적 길다. 하지만 여름과 같이 기온이 올라가면 생장이 멈추거나 쇠퇴해 색깔이 누렇게 변하는 하고현상(夏枯現象, summer depression)이 발생할 수 있다. 한지형 잔디의 종류로는 주로 축구장에서 쓰이는 켄터키 블루그래스(Kentucky blue grass), 골프장에서 볼 수 있는 그리핑 벤트 그래스(Creeping bent grass) 등이 있다.

우리나라 축구장에는 한지형 잔디가 많이 깔려 있다. 여름에는 고온과 수분 부족, 질병 때문에 생육이 둔화되는 현상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때만 제외하면 한겨울에도 녹색을 유지할 수 있는 강한 내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도 켄터키 블루그래스가 깔려 있다. 켄터키 블루그래스는 초기 뗏장(흙이 붙어 있는 상태로 뿌리째 떠낸 잔디의 조각) 형성이 느리기는 하지만, 내마모력과 회복력이 좋아 주초종으로 선정됐다.

◆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잔디

축구장의 잔디는 깎는 시기도 매우 중요하다. 경기 시작보다 너무 일찍 깎으면 그 새 잔디가 너무 길게 자랄 수도 있어 경기 내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지형 잔디는 보통 15~40mm의 높이를 유지하지만, 계절에 따라 봄, 가을에는 그보다 조금 낮은 15~30mm, 여름에는 30~40mm로 조정해서 관리한다. 잔디는 전체 잎의 1/3 이상이 제거되지 않도록 유지하고, 생장을 고려해 2~3일 간격으로 잔디를 깎아주는 것이 좋다.

잔디는 생체 중의 약 75~80%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관수(灌水, 농사를 짓는 데에 필요한 물을 논밭에 댐)가 중요하다. 관수는 잎이 마르기 직전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 시기를 위조증상이라고 하는데, 이를 적절히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잔디밭을 걸어 보는 것이다. 만약 잔디밭을 걸었을 때,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면 위조 직전이라고 볼 수 있다.

관수하는 시간은 해가 뜨기 전 이른 아침이 가장 좋다. 증발로 인한 수분의 유실을 막을 수 있고, 잎 표면이 물에 젖어 있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 봄 잔디의 녹색 잎이 나오는 시기에는 충분히 관수해야 생육에 지장이 없다. 가뭄이 계속될 때는 잔디밭의 이용을 제한하기도 한다. 잔디의 잎이 말라 부스러지기 쉬워 관수를 해도 물을 통과하는 투수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축구는 수중전! 배수성도 중요

축구장의 중요한 요소 중 또 다른 하나는 배수시설이다. 태풍급 강우량이 아닌 이상 경기는 취소되지 않고, 시작된 경기는 가급적 중단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축구는 수중전이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중 관람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많은 변수를 최소화하고 경기력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축구장의 배수성이 좋아야 한다. 또한 잔디의 생육을 위해서도 배수성은 매우 중요하다. 배수성이 좋지 않아 뿌리가 물을 오랜 시간 머금고 있으면, 뿌리가 썩어 생육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축구장 가장자리를 약간 높게 만들어 물이 흘러내리도록 했다. 하지만 물이 흐르면 공도 저절로 구르기 때문에 보다 과학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경우, 배수성을 높이기 위해 다층구조지반으로 설계됐다. 맨 위는 식재층으로 잔디가 뿌리내릴 수 있게 가는 모래가 30cm 깔려 있다. 그 밑으로는 차례로 중간층인 굵은 모래 5cm, 배수층인 가는 자갈 10cm가 깔려 있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입자가 굵다. 가는 모래는 표면적이 크기 때문에 많은 양의 물을 흡수할 수 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입자가 크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속도가 빨라지는 구조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축구장은 양적, 질적으로 많은 발전을 했다. 더불어 축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오랜 시간 비싼 돈을 들여 축구장을 건설한 만큼, 관리도 철저히 해서 선수에게는 좋은 경기장을, 축구 팬에게는 재밌고 좋은 경기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2014년 FIFA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은 우리나라와 12시간의 시차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1시, 5시, 7시에 시작되는 경기가 대부분이다. 축구 팬에게는 피곤한 한 달이 될 것 같다. 기분 좋은 피곤함으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는 한 달이 되길 기대해 본다.

글 김세경 과학칼럼니스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 참고자료1. 서울월드컵경기장 설계의 기본 개념(서울시설공단 홈페이지 제공)2. 과학동아 2002년 1월호 '축구장에 숨어있는 첨단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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