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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모바일 빅브라더 신민으로 살기


지금 세계 IT판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모바일 클라우드(Mobile Cloud)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그 의미는 무서우리만치 복잡하다. 또 총성은 없되, 그 양상은 제국주의 전쟁 못잖게 치열하다.

이 전쟁은 영토를 빼앗기 위한 나라 사이의 싸움이 아니라, 편리를 대가로 인간의 정신을 독점하기 위한 기업간 혈투다.

조지 오웰이 말한 ‘빅 브라더(Big Brother)’는 허튼 소리가 아니다. 이 전쟁 과정에서 재편될 세계는 그것에 버금갈 것이다. 현실의 빅 브라더는 소설 ‘1984년’에서만큼 가혹한 통치자는 아닐지언정 인간 정신과 생활은 그 무엇보다, 아직 정확히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빅 브라더에 더 의존적일 것이다.

현실의 빅 브라더는 그러나 모바일 클라우드를 통해 일의 효율과 작업의 편의 그리고 온갖 오락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크게 비난받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찬양할 것이다. 그러하니 돈 있고 기술 있는 기업이 이 ‘멋진 제국’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모바일 클라우드 제국의 신민(臣民)

도구는 원래 선악(善惡)의 개념을 초월한 객관적 존재다. 거기에 선악의 개념을 부여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대표적인 게 원자 기술이다. 인간의 의지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그것은 전혀 다르게 작용했다.

IT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특히 모바일 클라우드에서의 그 폭발력은 지금까지 IT가 보여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빅 브라더가 보기에 모바일과 클라우드의 두 개념은 제국(帝國)을 건설하기 위한 IT의 정수(精髓)다. IT 기술의 최고 정수인 두 개념이 완벽하게 결함함으로써 모바일 클라우드 제국을 위한 물적 토대가 구축됐다.

PC 시대까지만 해도 IT는 일의 효율과 오락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필요에 따라 IT를 활용하는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모바일은 그러나 인간에게 그럴 여유를 주지 않는다. 모바일은 잠 잘 때마저도 인간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의 확장된 신체다. 모바일은 손과 눈과 귀처럼 인간과 분리되지 않은, 세계를 이해하는 감각기관이 됐다.

클라우드는 복잡한 인터넷 망에 연결된 대규모의 데이터 저장장소를 가리킨다. 인터넷 망과 데이터를 저장하는 서버 컴퓨터의 구성이 보통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구름에 빗대 클라우드라고 한다.

감각기관으로서 인간의 확장된 신체인 모바일이 클라우드에 접속될 때 인간의 정신은 모바일 클라우드와 일치하게 된다.

인간 정신은 별 게 아니다. 과거 자신의 기억의 총체일 뿐이다. 인간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기억을 오로지 자신의 뇌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문만큼이나 그것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모바일 클라우드는 인간마다의 이런 고유한 기억을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치환한 뒤 인간의 두뇌를 대신해 구름 속 컴퓨터에 저장한다. 원래 빈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은 이제 모바일 클라우드에 의해 완전하게 과학적으로 관리된다. 인간의 기억을 운용하는 주체는 개인 자신에서 제국으로 바뀐다.

클라우드에 더 많은 기억을 저장할수록 과거는 더 온전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사람은 더 많은 기억을 기꺼이 제공한다. 기술이 발전해 그 기억을 저장하는데 드는 비용은 더 내려가고 이런 관행에는 가속이 붙는다.

개인은 그의 과거를 잊었지만 클라우드 제국은 그 어느 것도 잊지 않는다. 신(神)이 그러하듯 제국은 자신보다 더 개인을 잘 아는 존재다. 나약한 개인은 그런 절대의 존재를 거부할 수 없고 기꺼이 신민이 된다.

일의 효율과 작업의 편의 그리고 오락을 포기할 수 없는 한 이 제국의 신민이 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뜻이다. 빅 브라더는 신민이 되라고 겉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그 밑으로 기어들어갈 뿐이다.

그래서 빅 브라더는 ‘1984년’처럼 폭압적이지 않게 보이는 것이며, 많은 인간이 신을 추앙하듯 존경받는 절대자와 같다.

나라는 영토 내에서 강제적 국가 권력으로 백성을 통치하지만, 빅 브라더는 자발적으로 찾아든 신민을 포용해줄 뿐이다.

과거 제국간 전쟁이 ‘땅 따먹기’라면, ‘모바일 클라우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IT 기업간 전쟁은 ‘인간의 기억 따먹기’이다. 이 전쟁에 나선 기업들이 그럴 의도가 있건 없건 결과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최근 논란이 된 아이폰의 개인 위치정보 저장 문제나 오랫동안 구글이 불러일으킨 정보수집 논란은 이 과정서 불거진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디지털로 치환된 인간의 과거(즉, 기억)는 땅보다 가치 있는 부의 원천이고, 이들 기업은 십일조를 걷듯이 편리와 효율과 즐거움을 대가로 기억을 헌납하게 만든다.

◆누가 이런 제국을 건설하는가

조지 오웰이 이미 62년 전에 ‘1984년’을 통해 예언했듯 ‘모바일 클라우드 제국’은 인간 내부에 존재해온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의 예측보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더디게 발전했을 뿐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칩 저장 용량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은 오웰의 상상이 허황된 공상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게끔 기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또 그 상상을 현실의 범주로 끌어내린 것은 ‘혁신의 대가(大家)’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다.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애플보다 더 큰 보폭으로 뛰고 있는 곳이 구글이고, PC 시대에 ‘SW 제국’을 만들었던 마이크로소프트(MS)는 한 발 늦게 이들을 추격하는 양상이다. 다른 IT 기업들도 ‘모바일 클라우드 전쟁’에 발을 들여놓은 형국이지만, 이 싸움의 근본 지형은 이들 3개 기업의 ‘삼국지(三國志)’다.

애플은 ‘모바일 클라우드 제국’을 현실적으로 처음 기안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이 제국을 위한 결정적 요소를 직접 보유하고 있다. 제국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인간의 감각기관의 연장인 △모바일 기기와, 제국을 전반적으로 통제할 기반 프로그램인 △운영체제(OS), 그리고 인간의 과거 기억을 저장하고 원할 때 되돌려주기 위한 △데이터 센터와 이에 필요한 서비스가 그것이다. 애플은 그 세 분야에서 각각 아이폰과 아이패드, iOS, 대규모 데이터 센터와 이를 기반으로 곧 공개할 예정인 아이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갖고 있다.

기기에 필요한 부품과 하드웨어 생산 등을 외부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국을 통제하는 데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다. 애플은 독자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모든 요소를 갖췄기 때문에 제국의 응집력이 매우 탄탄하다.

구글은 위 3요소 가운데 OS와 서비스에 역량을 집중한다. 기기는 다른 기업과 연합군을 형성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그 목표가 모바일 클라우드 제국이라는 점에서는 애플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특히 OS와 서비스 분야에서는 애플에 뒤진다고 볼 수도 없다. OS 분야에서는 이미 구글 안드로이드가 애플 iOS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2015년에는 안드로이드 점유율이 iOS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45.4%로 예상되고 있다. 기기분야에서 욕심을 내지 않고 삼전전자, LG전자, HTC 등 다른 기업과 제휴하며 세력을 키우는 전략이 제대로 적중한 셈이다.

인간의 기억을 저장하고 되돌려 주는 서비스 분야의 경우 원래 구글의 핵심 역량이라고 봐야 한다. 검색으로 출발해 구글이 확장한 모든 서비스는 인간의 과거 기억과 관련된 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글은 이 두 결정적인 요소에 기기 조력자를 결합시킴으로서 제국의 크기를 급격히 키우고 있다.

지금의 추세를 급격하게 바꿀 만한 결정적 계기가 없는 한, 구글이 앞으로 애플에 비해 응집력은 좀 떨어지겠지만 규모 면에서는 세계 최대 ‘모바일 클라우드 제국’을 만들 것이라고 봐도 크게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MS는 이런 흐름에 대한 식견이 부족했던 데다 알고 난 뒤에도 구글보다 민첩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MS의 저력을 무시하지 않는다. 모바일 OS 분야에서 2015년에 20%대의 점유율을 가질 것이라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이런 예상은 iOS의 점유율을 뛰어넘는 수치다. MS 또한 구글과 비슷하게 기기 분야는 조력군의 도움을 받는 전략인데 아직까지 큰 성과는 없다. 다만 세계 최대 기기 업체인 노키아를 MS 제국으로 편입시킨 것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다.

결국 애플이 불러온 모바일 혁명은 세계 IT 시장을 ‘3개의 모바일 클라우드 제국’으로 재편하는 단초가 됐고, 지금 이 세 제국 간에 인간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저장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 전쟁에 군수물자를 제공하는 인텔, IBM 등 IT 기업들은 엄청난 특수를 누리고 있으며, 전쟁의 파트너로 참여한 IT 기업들 또한 제국 간의 세력 대결 양상에 따라 이해가 엇갈린다.

리서치인모션(RIM)처럼 독자 노선을 걷는 기업들은 제국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변방에서나마 작은 영역을 챙길 것이다.

우리는 그 중 어느 제국의 신민으로 살며, 과거의 기억, 즉 정신을 저당 잡히고, 기술적 편리를 획득했다며 좋아할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조지 오웰이 알았던 것을 우리는 몰랐거나, 알았다 해도 무시했으며, 앞으로도 무시하며 살 가능성이 크다.

/로스앤젤레스(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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