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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처음부터 끝까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DLF 사태


[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혹자는 '누가 그런 상품에 투자하라고 했나'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투자 손실은 금융시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 누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난 10월 1일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실태조사 중간 결과 발표 자리에서 작심한 듯 이같이 말했다.

금융소비자와 금융회사 간 힘의 차의가 현격한 만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DLF 검사 결과 공개를 요구하는 투자자들 [사진=아이뉴스24 DB]
DLF 검사 결과 공개를 요구하는 투자자들 [사진=아이뉴스24 DB]

일련의 과정을 복기해보겠다. 그간 은행 등은 원금 손실이 100%까지 가능한 DLF를, 리스크를 감내할 능력이 없는 투자자들에게 판매해왔다. 전문 PB로부터 자산관리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도 투자자 성향을 '공격투자형'으로 임의 분류했으며, 심지어 치매와 난청을 앓고 있는 고령의 환자에게도 DLF를 판매했다.

주된 판매처가 '은행'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은행은 유치원생부터 고령의 노인까지, 직업이 있든 없든 모든 이들이 찾는 금융기관이다. 은행을 찾는 절대 다수가 금융에 대해 일천한 지식을 갖고 있는 만큼, 전문 기관인 은행은 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성실하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금융감독원의 수장 격이 이번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것도 이 같은 이유일 테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시원하게 지적했지만, 이번 DLF 사태 해결 과정을 보면 정작 금감원도 불균형을 구축하는 데 일조하는 것 아닌가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게 최종 검사결과 미공개다. 지난 10월 금감원은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를 통해 DLF 상품의 제조·설계·판매 전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이 투자자 보호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중시해 리스크 관리 소홀, 내부통제 미흡, 불완전판매 등의 문제점이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중간 조사 결과를 통해 발표한 불완전 판매 비율은 20%였다. 다만 이 수치는 서류상 문제가 있는 경우에 대한 것이고, 추가 조사 결과에 따라 불완전 판매 비율이 올라갈 수 있다고 여지를 달아 놨다. 당시 브리핑에서도 금감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중간 조사 결과인 만큼, 추가 검사가 진행돼야 한다"라고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끝내 최종 검사를 공개하지 않았다. 불완전판매 비율이 50%를 넘었다는 것, 내부통제 부실이 심각했다는 것 정도만 전해질 뿐이다. '사실상 중간 조사 결과에 모든 게 나왔다' '두 번이나 검사 결과를 공개한 적은 없었다' 등 여러 가지 추측은 있었지만 누구도 명확한 이유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원 부원장의 말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누구나 DLF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 사후 예방 차원에서 최종 검사 결과는 공개될 필요가 있지만, 끝내 불발되면서 운동장의 불균형은 심화됐다.

석연치 않은 구석은 또 있다. 금감원은 지난 달 DLF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6가지 대표 사례에 대해 40~80% 배상 권고를 내렸다. 금감원이 불완전 판매로 확정지은 사례는 전체 분조위 신청 건수 중 25건이다.

나머지 185건은 은행이 사실관계를 파악한 후 금감원이 제시한 가중사유와 가감사유를 가지고 가감조정해 최종 배상비율을 산정한다. 그 결과를 가지고 자율조정을 거치거나, 부당하다고 느껴질 경우 다시 분쟁조정을 신청하라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문제는 가감사유와 가중사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금감원이 발표한 가중사유는 ▲고령자 등 금융취약계층에게 설명을 소홀히 한 경우 ▲모니터링콜에서 '부적합 판매'로 판명됐음에도 재설명하지 않은 경우 등이며, 감경 사유로는 ▲금융투자상품 거래 경험이 많은 경우 ▲거래금액이 큰 경우 등이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투자자는 은행과 입장차이를 좁히며 자율조정을 해나가야 하지만, 투자자는 자신의 배상비율을 예상할 가이드라인조차 명확치 않다. 배상 과정에서도 기울어진 운동장이 나타난 것이다.

불신이 커질 만큼 커진 상황에서, 은행이 제시할 배상비율을 흔쾌히 받아들일 투자자는 많지 않을 테다. 다수의 투자자들은 다시 금감원 분조위로 들어갈 개연성이 크다. 추가 행정 소요는 덤이다.

다행스럽게도 금감원은 최근 투자자 면담을 통해 '깜깜이' 배상이 되지 않도록 몇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부터 투자자의 입장을 좀 더 고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금융소비자가 가진 힘은 금융회사에 비하면 초라하다. 애초에 '금융시장'은 평평한 운동장이 될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균형을 맞추려 노력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 노력의 주체는 정부가 돼야 한다.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해도 국가가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진다면, 신뢰를 먹고사는 금융 산업이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다가오는 새해엔 금융권에 '비극'이 아닌, 좋은 소식만 들렸으면 한다.

서상혁 기자 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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