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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2천번의 실패, 30톤의 맥주


[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4년간 2천번의 실패를 거듭했고, 30톤의 맥주를 버렸다"고 했다. 주류회사의 신제품 개발 부서 얘기는 아니다. LG전자가 세계 첫 '캡슐형 수제맥주기' 홈브루를 출시하면서 누누히 강조한 대목이다. LG전자 블로그에는 "차라리 우주선을 만드는 게 낫겠다"는 어느 연구원의 불평도 실려 있지만 그럴리가. 우주선은 정말 만들기 어렵다. 그저 홈브루 개발에 많은 난관이 따랐다 정도로 이해해두자.

IT·가전 업체 입장에서 홈브루의 맥주 맛을 좌우할 맥즙 자체 개발과 발효 매커니즘 개발이 쉬울 리는 없다. 그래도 해냈다. LG전자는 옛날 '금성' 시절의 백조 세탁기로 상징되는 국내 50년 가전사의 산 증인이다. 세계 최고 수준 프리미엄 가전 디자인과 기술력이 LG전자의 강력한 주무기다. 홈브루는 그런 LG전자에게도 사실 난감한 문제다.

지난달 초 정도면 LG전자 홈브루의 시음행사를 위한 제도적 준비는 끝난다. LG전자는 이달 초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주세법 우회 임시허가를 얻었다. 현행 주세법상 주류업체가 아니면 술을 판촉에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홈브루를 이용한 매장 내 시음행사 등 판촉 행위가 없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다는 게 한동안 LG전자의 고민이었다. 지금은 국세청을 통한 주세 신고 절차 정도만 남아 있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홈브루는 이미 출시 3개월이 지났지만 별다른 반향이 없는 상황이다. 일선 매장 판매직원들이 정작 곧 이어질 시음행사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서울시내 한 LG베스트샵 판매직원은 "맥주가 발효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무슨 말이냐면 홈브루로 맥주 패키지 하나를 발효시키려면 2~3주가 걸린다. 홈브루 기기 한 대가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맥주량은 5천cc 정도인데 소주잔 100개 분량이다. 당일 손님이 많이 몰려 맥주가 떨어질 경우, 홈브루 다음 시음까지 2~3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손님들이 여러 컵을 맛볼 경우 맥주는 더 빨리 떨어진다.

또 다른 매장 판매직원은 "가격표는 가급적 가려놓고 싶다"고 말했다. 홈브루 일시불 가격은 439만원이다. 할부 아니면 선뜻 지르기 어려운 가격이다. 아마도 렌탈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할 것 같은데 매월 10만원이다. 여기에 맥주 패키지 하나 가격이 4만원이다. 2번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홈브루 이용에 매월 18만원이 든다.

맥주 마니아라면 LG 디오스 김치냉장고를 사서 매월 500cc 캔맥주 90개씩 보관하는 편이 경제적일 수도 있다. 프리미엄 가전에 관심을 쏟는 얼리어답터 중 오직 수제맥주만을 고집하는 맥주 마니아가 있다면 한번 고민해볼 수 있을 가격이다.

LG전자는 누가 뭐래도 한국의 IT 산업을 상징하는 기업이다. 수많은 전자부품과 디바이스, 차세대 디스플레이, ICT 인프라와 서비스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으로 국내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지만, 시장의 변화와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감각은 의외로 글로벌 경쟁자들에 비해 둔한 구석이 있다.

2010년 LG전자는 그때까지의 모바일 세상을 완전히 뒤집은 애플 아이폰의 출현에 배짱 좋게도 피처폰을 맞대응 카드로 내놓았다. 당시 아이돌 톱스타 소녀시대를 앞세운 '맥스폰'이다. 그때도 기술력이 수식어였다. 현존 '최고속' CPU, '초고화질' 디스플레이, '최고화소' 카메라의 결과는 모바일 사업부의 끝없는 추락이다.

최고의 기술력이 제조업의 전부이던 시대는 지났다. 그 점을 여지 없이 증명한 이가 스마트폰의 아버지 스티브 잡스다. LG전자는 최근 스마트폰 사업에서 V50 시리즈의 반등의 기회를 마련했다. '듀얼스크린'의 뛰어난 실용성과 공격적 마케팅이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결과다. 멋진 선택이다. 그런데도 홈브루를 보면 아직까지도 과거 제조업 공급자 특유의 기술 중심 사고방식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 점만큼은 못내 아쉽다.

LG전자와 LG그룹 주력 계열사들은 글로벌 경쟁 압박에 연일 악전고투 중이다. 모쪼록 홈브루가 시음행사를 포함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시장의 호평을 이끌어내길 바란다. 아울러 스마트폰과 가전 등 주력 사업 마케팅에도 의미 있는 성찰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조석근 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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