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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품격 있는 배우로 돌아오라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분명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이 한 발언의 일부를 아무 생각 없이 따라한 행동의 파장이 이렇게 클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3일 개인 인스타그램 라이브 진행 중 주변에서 들려오는 성적 농담을 웃으며 입 밖으로 꺼내고 그 발언의 수위까지 평가한 대학로 신인배우 3인 조창희·이주빈·김예찬의 얘기다. 알고 보니 행인이 큰 소리로 한 말은 성적 농담을 넘어 패륜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개막 일주일을 앞두고 논란을 빚은 세 배우는 3일 후 제작사 노네임씨어터컴퍼니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필 사과문을 게재했다. 자신들의 잘못을 정확히 알고 사과와 함께 반성의 뜻을 밝혔지만 쉽게 용서될 문제는 아니었다. 특히 이들의 사과문과 함께 내놓은 프로듀서와 연출의 입장문이 오해를 야기해 비난의 범위가 확대됐다.

세 배우의 하차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공연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아 하차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공연 책임자들은 이들을 안고 가야만 하는 솔직한 입장과 경솔했던 배우들의 부족함을 잘 가르치겠다는 약속만 밝혔어도 작품을 사랑하는 관객들은 납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해영 프로듀서와 김태형 연출은 입장문에서 세 배우의 잘못이 정확한 문제의식 결여와 경솔함에서 온 실수라고 지적하며 평상시 태도와 인성이 바름을 강조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세 배우가 하차할 만큼의 잘못을 하진 않았다는 뉘앙스였기에 김 연출에 대한 실망스러움으로까지 번졌다.

개막이 코앞에 닥친 시점에 예상치 못한 사건을 접한 작은 제작사의 아마추어 같은 대응이었다. 피드백을 안 하느니만 못한 꼴이 된 노네임씨어터컴퍼니는 배우들이 잘못하지 않은 부분까지 함께 거론되는 상황에 대해 해명하려는 마음이 앞서 조급하게 대응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결국 정확한 사실 파악을 위해 다음날 디지털과학수사연구소에 해당 영상에 대한 음성 분석을 의뢰했다. 이는 세 배우 중 한명이 패륜적 발언을 한 게 아니고 이들이 현장에서 문제의 내용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확인함으로써 이들에게 씌워진 패륜아 프레임을 벗기고 싶었던 한 프로듀서와 김 연출의 의지였다.

노네임씨어터컴퍼니는 지난 26일 조창희·이주빈·김예찬의 조기 하차를 공식 발표했다. 이제 와서 이 같은 후속조치를 하는 이유는 남은 공연의 분위기 전환도 있겠지만 세 배우의 멘탈을 위해서기도 하다.

제작사 관계자는 “패륜아 오명이 씻긴 것과 별개로 이 배우들에겐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무서운 상황이고 공연의 후기가 좋을수록 원망이 이들한테 쏠리더라”며 “우리의 결정이 배우들한테 행복한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됐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에 서면 용서받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신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다른 배우들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언젠가 이대영 중앙대 예술대학원 공연영상학과 교수가 배우들의 언행일치를 강조하며 “품격이 없어지면 사회 독이 된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배우는 거의 성직자다. 보는 눈이 있으니 정말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배우를 꿈꾼다면 10~20년 전부터 자기의 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극장과 소극장을 오가며 몇 년째 활발히 활동 중인 한 배우는 최근 말과 행동으로 논란이 된 일부 배우들에 대해 “배우로서의 무게감을 아직 안 느껴봐서 모르는 것”이라며 “느끼기 전에 그런 행동을 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경험하고 느끼고 깨쳐나가면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그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실수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언행을 수시로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때론 선배들의 얘기도 들어가며 태도나 마인드를 다지고 또 다져야 된다.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따내 이제 막 시작한 신인배우 세 사람은 언제 다시 캐스팅이 돼 무대에 오를지 모른다. 실력과 다양한 매력으로 팬덤을 형성하기도 전에 성 관련 부적절한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르는 것 자체가 이들에겐 벌이다.

함께 공연을 준비한 많은 사람들과 소중한 작품에 큰 피해를 끼친 죄책감, 그런 상황에서 패륜아 오명을 벗기기 위해 비난을 감수한 제작사 대표와 연출에 대한 죄송함도 반성의 깊이를 더할 것이다.

커튼콜에서 직접 느낀 관객의 싸늘한 시선은 한동안 상처로 남을 수 있다. 무대에 대한 열정과 깨달음의 크기에 따라 그 상처가 값진 경험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겠지만 반드시 노력해야 한다.

세 배우는 이미 공연계에 발은 들여놨다. 관객의 박수를 받기까지 이 과정을 충분히 겪으면서 잘 버티고, 느낀 만큼 바뀔 필요가 있다. 이번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 어떻게 달라질지 지켜보는 눈이 많다. 반드시 증명해 보이길 기대한다.

박은희 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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