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기자수첩] 어느 택시기사의 유서와 의원님들의 밥그릇


[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서울시내 법인택시 225개 회사 가동률은 60%, 현재 월~목 사이 시내(강남)를 나가봐라. 새벽 1시가 넘어가면 '빈차' 등을 킨 택시들이 줄을 서 있다. 택시도 물론 반성할 부분이 있다. 승차거부에 불친절, 공감하는 부분이다. 왜 그럴까. 장시간 근무에도 제대로 보수를 못 받아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민주택시노동조합이 공개한 고 최우기씨의 유서 일부분이다. 택시들과 얽힌 '안 좋은' 추억들이 새삼 떠올랐다. 저녁 모임이나 회식이 늦게 끝나던 날이다. 대중교통이 끊긴 광화문, 강남역, 홍대입구에서 거의 2시간을 택시를 잡느라 헤매곤 했다. 막차가 끊긴 구로역에서 '인천', '수원'을 부르짖던 기사들은 인당 2만원 합승으로, 말 그대로 총알처럼 심야 도로를 내달리곤 했다.

그 기사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법인택시, 그러니까 택시회사들은 대부분 사납금제로 운영된다. 택시기사는 서울의 경우 매일 13만5천원을 회사에 납입해야 한다. 의무적이다. 13만5천원을 벌려면 기본요금 3천원짜리 승객 45명을 태워야 한다. 그 이상을 벌어야 택시기사 수중에 돈이 남는다.

그나마 개인택시 사정은 좀 낫다지만 엄격한 허가제로 운영된다.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다 보니 개인택시 면허 구입에만 억대의 돈이 들어간다. 그 와중에 택시기사 가동률이 60%라고 한다. 택시기사에게도, 택시회사에게도 이번 겨울은 너무 혹독한 것 같다.

최우기씨를 죽음으로 내몬 결정적 계기는 카풀 서비스 시행이다. 출퇴근 시간대 일반인의 영업성 운행은 아마도 택시기사와 회사들의 매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카카오가 카풀 서비스를 무기한 잠정 연기했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이 택시업계로 더 큰 쓰나미가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자율주행'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무인 서비스들이다.

자율주행차 레벨3의 상용화 시점이 불과 1년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레벨3는 고속도로처럼 주행환경이 안정적인 곳에서 전면 자율주행이 가능한 단계다. 레벨4 이상에선 시내도로처럼 고도의 판단력이 필요한 복잡한 환경에서의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구글 같은 선도주자들의 경우 도심 내에서까지 전면적인 자율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현격한 기술적 진보를 이뤘다. 조만간 기사들이 필요 없어진다는 얘기다.

국내 운수사업 규모는 지난해 기준 142조2천억원이다. 37만개 회사, 110만명이 종사하고 있다. 사람을 나르고 화물을 운반하면서도 생활과 가까운 업종이 이처럼 거대하다. 자율주행 차량들이 거리를 누비게 될 경우 최우기씨의 비극은 이번엔 시내버스와 관광버스에서, 마을버스 업계에서 나올지 모른다. 컨테이너를 나르는 대형 트럭과 유조차, 폐자재를 나르는 덤프트럭도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화물을 실어나르는 크고 작은 용달차와 탑차들, 아파트 단지를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택배차들도 무인화 바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게 4차 산업혁명의 우울한 그늘이다. 기술혁명에 힘입어 새롭게 성장하는 산업들이 나타나지만 쇠퇴하는 산업들도 나타난다.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밥그릇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사람들도 있다. 성장하는 산업과 쇠퇴하는 산업의 전면 충돌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흔히 하는 말로 '상생'을 도모할 것인가가 정치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자리잡을 것이다.

12월 임시국회가 곧 열린다고 한다. 선거제도 개편이 가장 큰 현안이라고들 한다. 각 정당과 소속 국회의원들의 밥그릇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생소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그 핵심 현안이며 그 논쟁의 귀결점은 의원수를 얼마나 늘리느냐, 지역구 의원을 얼마나 줄이느냐라고 한다. 여론조사 기관들도 바빠졌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하는지, 의원수 늘리기에 찬성하는지 조사 대상 응답자들에게 부지런히 묻는다.

110만 운수업 종사자들과 그 자녀들, 또는 부모들에게, 그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세계적 기술경쟁의 최전선에서 종사하는 정보통신 또는 IT 업계에도 물어보자. 의원수를 늘리는데 찬성하는지, 지역구를 줄여야 하는지 아니면 유지해야 하는지 말이다. 우리 정치권의 연말 풍경이 이처럼 한가하다.

조석근기자 mysun@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기자수첩] 어느 택시기사의 유서와 의원님들의 밥그릇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