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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잊힐 권리'와 '알 권리'


기자들이 취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알 권리’다. 때론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취재 경쟁을 벌이는 건 (원론적으로는) 독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몸부림이다.

흔히 민주주의는 '공중의 숙의(public deliberation)'에서 출발한다고들 한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가 민주주의의 원조로 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제대로 된 숙의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뭘까? 바로 지식을 갖춘 공중(informed public)이다. 공중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갖고 논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같은 간접 민주주의시대엔 투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풍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중의 알권리는 민주주의로 가는 첫 걸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중의 알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적어도 교과서에선)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불리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과잉맥락화 시대, 새롭게 부각되는 '잊힐 권리'

그런데 최근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란 전혀 상반된 가치가 이슈로 떠올랐다. 유럽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 판결 때문이다. ECJ는 최근 스페인 한 남성이 자신과 관련된 기사를 구글 검색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청하는 재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사실상 '잊힐 권리'를 보장해준 판결이다.

물론 ECJ 판결이 독자들의 알 권리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ECJ는 이번 판결에서 스페인 남성의 ‘기사 삭제 요청’은 기각했다. 대신 그 기사가 구글 검색을 통해 쉽게 노출되는 것을 막도록 했다.

ECJ는 또 옛날 같았으면 전혀 연결되지 않았을 사건들이 구글 검색 때문에 광범위하게 연결되는 부작용이 있다는 취지의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판결 취지에도 불구하고 ‘잊힐 권리’는 어쩔 수 없이 ‘알 권리’와 상충될 수밖에 없다. ‘프라이버시 보호’란 개인 인권 보호 차원의 가치와, ‘공적 논의를 위한 정보 제공’이란 또 다른 가치가 정면 출동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단 얘기다.

두 가지 사례를 놓고 한번 따져보자.

얼마 전 모 연예인의 젊은 시절 사생활이 갑자기 이슈가 된 적 있다. 그 연예인 아들의 또 다른 스캔들 연관검색어로 거론된 때문이다. 그 연예인은 본의 아니게 30년 전 스캔들이 전국민에게 까발겨져 버렸다. 첨단 기술의 ‘과잉맥락화’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이다. 이런 경우 ‘잊힐 권리’가 필요하겠단 생각도 든다.

반대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몇 년 전 편집국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5년 쯤 전 기사에 붙어 있는 사진을 좀 빼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우수 기업인 상을 받은 기사였기 때문이다. 전화 건 사람도 사진을 빼야 하는 뚜렷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사진을 삭제할 경우 기사 자체가 훼손된다”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전화를 끊은 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검색을 해봤다. 그 무렵 불미스러운 일로 또 다시 기사화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연히 불미스런 기사에는 사진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예전 상받을 때 보도된 기사가 같이 검색되면서 얼굴이 노출돼 버린 것이었다.

그 분 사정은 참 딱했다. 하지만 수상자 인터뷰에서 사진을 빼버리면 기사 자체가 제대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건 공적 기록 훼손이나 다름 없다.

물론 유럽 법원 역시 기사 삭제는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프라이버시 침해 소지가 있는 글을 구글 검색 목록에서 지우라는 판결이었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알쏭달쏭하긴 마찬가지다.

위에 인용한 기업인 사례에선 어떤 기사를 검색 차단해줘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쏭달쏭한 문제다.

◆또 다른 여론 통제 우려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잊힐 권리’와 관련해 생각해봐야 할 이슈는 또 있다. 독자들이야 여전히 불만이 많겠지만, 지난 20년 사이에 우리 언론의 보도 행태는 꽤 많이 발전했다. 특히 각종 사건 사고 기사 보도 관행은 많이 개선됐다.

내 얘기가 의심스러운 분은 네이버 아카이브나 도서관 같은 곳에서 1980년대 이전 기사를 한번 찾아보시라. 별 것 아닌 사건 사고 기사에서 실명 뿐 아니라 주소까지 그대로 노출돼 있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기준을 그대로 들이대면 전부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에 걸릴만한 기사들이다. 이럴 경우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반대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권력이나 재력 있는 사람들이 과거 기록을 감추려고 하는 경우다. 어차피 검색에서만 빠질 뿐 원 자료는 그대로 남아 있지 않냐고? 그건 현대 사회에서 검색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검색 기술이 발달하면서 예전 같으면 전혀 관계가 없었을 사안들이 연관검색어로 같이 뜨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난 이런 현상을 ‘과잉맥락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분명 ‘과잉맥락화’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에 대해서는 합당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거질 ‘알 권리 훼손’ 문제도 외면할 수 없다. 어제 오늘 이 문제를 곰곰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답을 찾지 못하겠다. “잊힐 권리를 보장하더라도 또 다른 여론 통제가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 외에는.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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