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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SNS 파워, 부작용도 성찰하자


하워드 라인골드란 학자가 있다. 1980년대 중반 '웰(WELL)'이란 인터넷 공동체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가상공동체(Virtual Community)'란 책을 써낸 인물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3년 출간된 '가상 공동체'는 인터넷 초기 문화를 공부할 때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라인골드가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첫 저작을 내놓은 지 10년 뒤인 2003년이었다. 필리핀 피플파워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모바일 혁명을 분석 대상으로 한 '참여군중(Smart Mobs)'을 출간한 때문이다. '똑똑한 군중'을 '참여군중'으로 번역한 출판사의 재치까지 보태진 덕에 하워드 라인골드는 2000년대 초반 시대 정신을 잘 잡아낸 대표적인 학자로 꼽혔다.

◆하워드 라인골드가 10년 전 던진 질문

'참여군중'에서 라인골드는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인류 전체가 P2P 언론에 참여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란 질문이었다.

2003년 라인골드가 처음 저 질문을 던질 때만 해도 눈 밝은 연구자의 한 발 앞선 통찰 정도쯤으로 받아들여졌다. 'P2P 저널리즘'이란 생소한 개념이 금방 실현될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이용해 시위 소식을 빠르게 전달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10년 사이에 저널리즘 지형도는 확 달라져 버렸다. 이젠 재난 소식은 의레 기자 대신 시민들이 먼저 전해준다. 그러다보니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기치를 내거는 자체가 촌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아침에 태양이 뜬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틀릴 수 없는 당위 명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전 국민을 충격 속에 몰아넣은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 사고 때도 SNS의 위력은 대단했다. 사고 사실을 첫 보도한 것은 때 마침 그 비행기를 탑승했던 삼성의 부사장이었다. 사고기를 탑승하려다가 막판에 다른 비행기를 탄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고 관련 소식을 올렸다.

여기까진 서막에 불과했다. CNN이 단독 공개한 사고 장면 동영상 역시 때마침 인근 지역에 있던 프레드 헤이에스란 행인이 찍었다. 헤이에스가 찍은 영상은 기자들이 평생 한 번 할까 말까한 초대형 특종이었다.

이번 사고는 현장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재빨리 올려준 트윗이나 영상을 통해 세상에 먼저 알려지게 됐다. 전통 언론 입장에선 '최초 보도'와 '독점 영상'을 모두 일반인들에게 빼앗긴 셈이다.

이런 시대 변화는 저널리즘 발전 측면에서도 분명 축복이다. 정보 생산과 유통의 민주화가 실현됐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스트리트 저널리즘'은 축복 못지 않게 재앙이 되기도 한다. 때론 미확인 소문들이 무차별 확산되면서 쓸데 없는 불안감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는 뉴스'보다는 '공분을 자아내는 뉴스'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실시간 저널리즘의 부작용이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IT 전문 매체 테크크런치의 이유 있는 문제 제기

IT 전문 매체인 테크크런치가 '우리는 왜 끊임 없이 비극을 리트윗할까(Why Do We Endlessly Retweet Tragedy?)'란 기사에서 이런 부분을 잘 지적했다.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이번 아시아나 사고 때도 한 때 SNS 상에 '항공기가 굴렀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고 소식을 누구도 확인해주기 전에 올라온 이 트윗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고 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항공기가 굴렀을 경우'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보스턴 테러 사건 때도 헛소문이 판을 쳤다. 엉뚱한 사람이 죽었다는 트윗부터, 현상금 냄새를 풍기는 트윗 같은 것들이 난무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혼란케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트윗들은 리트윗되면서 확산되는 속도고 일반 트윗들에 비해 훨씬 빠르기 때문에 일단 한번 퍼지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사람들이 '비극적이거나 위험한 뉴스'를 더 빨리 전달하는 건 본능이다. 원시 시대부터 체득된 생존 본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SNS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는 이런 본능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문의 확산 속도나 범위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상황이 다르다. 클릭 한 번으로 곧바로 지구 반대편까지 전달할 수 있게 됐다. 그런만큼 불안을 부추기는 뉴스를 '리트윗'할 때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난 주말 우리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한 실시간 저널리즘의 위력을 톡톡히 경험했다. 대부분은 불특정 다수의 알권리를 잘 충족해주는 훌륭한 소식들이었다. 현장에서 직접 소식을 전한 분들의 정제된 트윗 덕에 불안감을 많이 해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축복 뒤에 도사리고 있을 지도 모를 부작용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SNS 저널리즘의 위력을 찬양하는 기사들이 쏟아지는 이 때 굳이 '초를 치는' 칼럼을 쓴 건 그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은 많은 분들이 '노파심'이라고 핀잔을 줄 지 모르겠다. 그 핀잔 기꺼이 받을 각오가 돼 있다. 다만 이 글이 비극적인 뉴스나 소식을 '즉각' 리트윗하려는 욕구가 생길 때 한번만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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