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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레 미제라블과 콘텐츠 경쟁력


빅토르 위고의 원작은 분량부터 읽는 사람을 압도한다. 한국어 번역판은 500쪽 가까이 되는 책 다섯권으로 구성돼 있다. 스토리 역시 굉장히 방대하다. 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벌어진 각종 사건들을 꼼꼼하게 담아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장발장 이야기는 전체 스토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1권 시작하자마자 장발장에게 큰 영향을 끼친 미리엘 신부 관련 묘사가 100쪽 정도 이어진다. 2권 첫머리엔 워털루 전쟁 묘사가 또 100쪽 가량 된다. 팡틴의 딸 코제트를 데리고 수도원으로 피신하는 장면에서도 예의 지리한 묘사가 이어진다. 당시 수도원이 어떻게 운영되고,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꼼꼼하게 설명한다. 이런 지리한 묘사를 따라가다보면, 사회에 불만을 갖고 살던 장발장이 점차 이타적인 인간으로 변신하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된다.

스토리만 찾는 독자들에겐 이런 묘사가 지겨울 수도 있다. 하지만 꼼꼼하게 읽어보면, 전체 스토리에 좀 더 깊이 빠져드는 데 꼭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반면 영화에선 이런 묘사들을 제대로 담아내기 힘들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미리엘 신부나 워털루 전쟁에 관한 묘사는 장발장이나 주변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모티브 역할을 한다. 장발장이 잠깐 수도원에 몸을 숨기는 에피소드 역시 그의 변화에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하지만 영화에선 이 모든 것들이 거의 나오지 않거나 잠깐 스쳐 지나갈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보다 보면, 군데 군데 이야기를 빠뜨린 듯한 아쉬움을 곱씹게 된다.

소설을 읽은 뒤 다시 영화를 되새겨봤다. 아쉬움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방대한 묘사는 영화에선 재현할 방법이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레 미제라블'은 스토리만 떼어내도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세상에 불만을 갖고 있던 장발장이 이타적인 인간으로 바뀌어가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빅토르 위고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 이상이다.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 정신을 그려내려는 야심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언뜻 지리해보이는 방대한 묘사들이 이 작품에서 꼭 필요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요즘 콘텐츠 사업이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실제로 언론, 출판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작품 자체로 인기를 끌기 보다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거론된 뒤 느닷없이 관심을 끄는 경우가 더 많다. 굳이 따지자면 최근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이 불티나게 팔린 것도 영화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 '레 미제라블'에는 또 다른 맛과 멋이 있다. 영화가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는 활자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진정한 콘텐츠 경쟁력은 그 두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된다.

당장 두드러지진 않지만, 씹을수록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에도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건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럴 때에야 진정한 콘텐츠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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