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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어느 해커의 죽음


[김익현기자] 로렌스 레식 교수가 쓴 '자유문화'란 책을 감명깊게 읽은 적 있다. 2000년대 초반 냅스터 재판 때 변호사로 활동했던 레식은 저작권 독점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레식 교수는 2001년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reative Commons)란 단체 결성을 주도한 뒤 저작권 공유 운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CC란 약어로 불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는 이용 허락 규약을 잘 지키는 범위 내에서 저작권을 공유하자는 운동이다.

RSS 창시자 중 한 명인 애런 스워츠 자살 관련 기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CC운동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쯤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자. 기자는 스워츠 자살 관련 얘기를 처음 처음 접했을 땐 다소 시큰둥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어린 해커가 철 없는 짓을 했다가 결국 자살까지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신에 소개된 기사를 찬찬히 읽으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특히 스워츠가 14세 때 레식 교수와 함께 CC운동에도 참여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데 적잖은 역할을 한(것으로 추정되는) MIT 학술시스템 해킹 사건이 단순히 공명심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 때문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것처럼 스워츠는 MIT의 과학학술지 제공서비스인 JSTOR을 해킹하면서 곤경에 처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0년 9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이 시스템에서 400만 건에 이르는 논문을 무단 다운로드 했다. 2011년 들어 학교 측이 JSTOR 접속을 차단하자 스워츠는 MIT 교내 네트워크에 몰래 노트북을 직접 연결하는 방식으로 자료에 접근했다. 하지만 MIT 기술지원팀 관계자들에게 발각돼 결국 캠퍼스 경찰에게 체포됐다. 스워츠는 유죄가 확정될 경우 400만 달러 가량의 벌금에 5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상황이었다.

기자는 스워츠가 MIT의 과학학술지 제공 서비스를 해킹한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른다. 정황상 공공재로 풀려야 할 많은 학술논문들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한 것이란 추정만 할 따름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스워츠가 썼던 방법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해킹을 통해 문제 제기하려고 했던 대의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가뜩이나 잘 읽히지도 않는 학술논문을, 폐쇄적인 시스템 하에서 '그들 만의 읽을 거리'로 만드는 관행은 분명 문제가 적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정도 범죄(?)에 대해 최대 50년에 이르는 중죄를 선고하도록 돼 있는 법률 시스템 역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레식 교수 역시 "아무런 상업적 활동도 하지 않은 피고에게 최대 50년 감옥형을 기소하는 법률시스템은 부정의하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물론 비극적 죽음 때문에 스워츠를 과대 평가하는 듯한 느낌이 없는 건 아니다. RSS 창안이나 소셜 뉴스 사이트 레딧 창업 작업은 스워츠 혼자 일궈낸 성과는 아니기 때문이다. RSS만 하더라도 데이브 와이너를 비롯한 많은 인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적어도 웹의 기본 정신인 개방과 공유란 관점에서 볼 때 스워츠가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창안한 RSS는 블로그 시대의 개방적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낸 중요한 도구로 큰 역할을 했다. 스워츠는 지난 해 초엔 SOPA 반대 운동에도 적극 앞장을 섰다.

더구나 그는 MIT 시스템에서 학술 자료를 '무단' 다운받은 뒤 400만 달러 벌금과 50년 가까운 징역형을 구형받을 위기에 내몰렸다. 상업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분명 정상적인 법률 시스템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 사는 26세 해커의 죽음에 내 마음이 많이 불편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이런 감상적인 느낌 때문이었을까?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윌리 로먼이 자꾸만 떠올랐다. 로먼이 사회의 폭력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처럼, 스워츠 역시 법률시스템의 무차별 폭력에 굴복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요즘 읽고 있는 <레미제라블> 속 한 구절도 자꾸만 가슴을 때렸다.

"사회는 스스로 만들어낸 암흑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마음속에 그늘이 가득차 있으면 거기에서 죄가 범해진다. 죄인은 죄를 범한 자가 아니라, 그늘을 만든 자다." (1권 31쪽)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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