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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삼성-CJ, 호암 입장에서 생각하라


인간이라는 짐승은 제 자식을 낳고서야 겨우 어미 아비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끝내 그 마음을 다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게 우리네 가련한 인생일지도 모른다. 삶은 구조적으로 불효의 덫이다.

오는 19일은 호암 이병철 회장의 25주기다. 그가 한국 경제에 남긴 커다란 족적을 감안할 때 호암 25주기는 단순히 한 집안의 제삿날이 아니다. 한국의 산업과 경제를 고민하는 모든 주체들이 한 번쯤 그의 생애를 되새겨봄직하다. 가뜩이나 경기가 어렵다. 기업가 정신을 고양하고 새 길을 찾아야 할 때다.

안타깝게도 이 뜻 깊은 날을 망치려드는 쪽은 호암의 자손들이다.

호암의 첫째 아들인 이맹희 CJ 전 회장과 셋째 아들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상속 재산을 놓고 소송을 진행 중인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워낙 큰 재산이다 보니 형제간에 갈등이 생기는 걸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선친의 제삿날마저 싸움의 계기로 활용하려는 깊은 적개심과 집요한 분노다. 기왕에 싸움이 벌어졌더라도 선친이 돌아가신 날만큼은 휴전을 하고 화해의 길을 찾아보려는 게 짐승 아닌 인간의 최소한의 도리다.

그런데도 호암의 자손들은 그 위패 앞에서 몸싸움이라도 할 태세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선영 내부의 한옥(이병철 회장 생전 살던 집) 이용 문제와 그 집에 들어가기 위해 정문을 통과하는 문제를 놓고 삼성과 CJ가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당일 몸싸움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굳이 어느 쪽 잘잘못을 따질 계제는 아니다. 삼성과 CJ는 서로 부닥쳐 소란을 일으킨 두 손바닥의 상대편 한 쪽이기 때문이다.

먼저 '칼'을 빼든 건 조카 쪽이었다. 소송을 통해 삼촌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냉혹하고 비정한 일이다. 삼촌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일 뿐이어서 그런 조카를 품지 못했다. 할아버지 제삿날마저 고인이 살던 집에 조카가 발을 못 들이게 했다.

조카는 특히 그런 삼촌을 불인(不仁)으로 몰아갔다. 집안일이어서 조용히 해결할 문제였는데도 언론을 통해 동네방네 떠벌렸다. 삼촌은 물론 할어버지한테도 침을 뱉은 꼴이다. 소송에 여론을 환기시켜려고 할아버지 제삿날까지 이용한다는 의구심도 사게 됐다.

‘기업 왕국’의 오너인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속인(俗人)의 좁은 시각으로 판단하는 게 섣부를 수도 있다. 모든 왕국에서 ‘왕자의 난’은 툭하면 벌어졌던 일이기도 하다. 왕국 사이의 전쟁 또한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왕국을 거느리게 되면 그때부터 개인은 더 이상 온전한 의미의 개인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호암의 마음이다.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는 특별한 지혜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는 한국 산업의 현대화를 위한 주춧돌을 놓은 탁월한 기업인이기에 앞서 3남5녀의 자식을 둔 아비였다. 아비 된 자라면 누구나 안다.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겠나. 그게 아비의 마음이다. 불효의 덫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는 그래서 동기간 우애다. 호암에게도 그럴 것이다.

동기간에 불화하고 어찌 호암의 영정을 마주할 수 있겠는가. 삼성과 CJ는 서로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안경알 너머 호암의 슬픈 눈빛을 보는 게 먼저다. 추모식의 주인공은 그 자리에 참여한 자손과 관계자가 아니다. 호암이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은 자신의 처지가 아니라 호암의 입장에서 생각해야한다.

그게 아비와 할아비에 대한 예의고, 삼성과 CJ의 모든 임직원에 대한 도리다. 소비자들한테 존경받는 기업인의 모습이기도 할 터다.

호암이 원하는 추모식은 누가 생각해도 뻔한 것이다.

이균성 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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