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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구글과 '해품달'


'해품달' 마지막회는 양명군의 반란 장면으로 시작했다. 양명군이 반란을 주도한 줄 알았는 데, 알고 보니 왕과 짰다는 설정. 여기까진 충분히 그럴듯 했다. 극적 반전이라고 하기엔 너무 뻔했지만, 충분히 가능한 드라마적 설정이었다.

하지만 전투 장면을 보면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를 웃긴 건 왕의 호위 무사인 운검이었다. 내내 왕 옆에 서 있던 그가 느닷없이 반란군들 가운데로 뛰어들어 마구 베기 시작한 때문이다. (물론 양명대군의 죽음도 웃겼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

웃어넘기면 될 한 장면에 과잉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눈 앞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왕'의 곁을 떠나버리는 호위 무사의 모습을 도저히 맘 편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본분을 망각하고 날 뛰는 철부지를 보는 듯해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어제부터 소셜 공간에서 화제가 됐던 글 한편이 떠올랐다. 구글 전직 엔지니어가 쓴 '내가 구글을 떠난 이유'란 글이다. 구글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로 옮긴 제임스 휘태커는 이 글을 통해 '광고 회사로 전락해버린' 구글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혁신 정신을 잃은 구글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 떠나게 됐다고 털어놨다. 업무시간의 20%는 자유 프로젝트에 투여할 수 있도록 했던 '20% 정책' 같은 혁신 전략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크롬이나 G메일 같은 것들은 '20% 정책' 덕분에 태어난 구글의 히트 상품이다.

특히 휘태커는 지난 해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한 창업자 래리 페이지를 거세게 비난했다. 한 때 혁신 정신의 산실로 통했던 구글을 광고회사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페이스북과 경쟁하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페이스북을 자꾸 의식하다보니 허접쓰레기 같은 제품을 내놓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광고를 많이 유치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휘태커는 지적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고도 했다. 휘태커는 "구글은 여전히 페이스북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광고를 보여주지만, 페이스북은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있다"는 비판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쯤 되면 '해(혁신의지)'를 품은 '달(광고 수입)'이라고 해도 크게 그르진 않을 터였다.

물론 덩치 커진 구글이 예전 같은 혁신 정신을 계속 간직하긴 힘들 것이다. 이젠 자그마한 벤처가 아니라 초대형 기업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빌 게이츠가 했던 말처럼, '차고 어디선가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계속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을 키운 '혁신'이란 유전자를 외면하기 시작하는 순간, 기업은 고인 물처럼 변하게 마련이다. 휘태커의 비판에 강하게 공감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기자는 '내가 구글을 떠난 이유'란 글을 읽고, '해품달' 마지막 회를 보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눈 앞에 보이는 경쟁 상대 때문에 더 큰 것을 잃어버리는 모습이 통하는 듯 해서다.

물론 경쟁 상대를 물리치는 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하루 하루 닥치는 급한 일 역시 외면해선 안 된다. 자칫하면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본분을 지키는 일이다. 호위 무사에게 더 중요한 일이 왕을 지키는 것이듯, 기업들에겐 당장 눈에 띄는 수익 못지 않게 '기업정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눈 앞의 적을 물리치며 '폼 잡는' 운검보다는, 소동이 벌어지는 내내 지근 거리에서 묵묵하게 왕을 보좌하는 운검을 보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해품달'을 보면서 '내가 구글을 떠난 이유'란 글을 떠올린 이유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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